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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갑의 애국가를 찾아서

‘계관시인 윤치호’, 무궁화가 작사

[김연갑의 애국가를 찾아서 10]

[우리문화신문=김연갑 아리랑학교 교장]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보전하세

 

<애국가>의 후렴은 1897년부터 불린 <무궁화가>에서 쓰인 것이다. 그래서 <무궁화가>를 작사한 이가 <애국가> 작사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논리에서 윤치호가 <무궁화가>를 작사했음이 확인 되어야 한다. 이는 최근 영문판<독립신문>의 발굴에서 확인 되었다.

 

189788일에는 독립협회 <통상회>가 열렸다. 여기에서 서재필과 윤치호는 회원들에게 독립협회 활성화를 위해 토론회의 조직체 결성을 제안했다. 그리고 그 규칙을 제정하기 위해 위원 3인을 선출했는데 윤치호 등이 선출되었고, 윤치호가 독립협회를 시민들의 참여를 확장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이는 각종 기념행사에서 강연과 통역은 물론, 기념가를 지어 사용하는 활동이 확인이 된다. 바로 1897813일 오후 3, 조선 개국 505회 경절회(慶節會) 행사 참여다. <독립관>에서 개최된 이 행사에 대해서 먼저 당시 독립신문을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행사 4일 후 17일자의 보도이다.


 

일젼에 독립관에셔 긔원졀 츅샤 일에 죠흔 연셜이 만히 잇시되 다 긔록 할 슈 업셔 대강 긔록하노라. 한셩 판윤 리채연씨가 연셜 하되 무론 엇던 나라던지 신민이 신민의 직무를 아니 하거드면 졍부에셔 졍부 직무 하기가 어려온지라 그런고로 의졍 대신 이하로 각기 직무를 거드면 그 나라 일이 져졀노 잘 되 법이라.(줄임) 아편셜라씨의 영어 연셜은 후일에 번역 하야 낼터이요. 윤치호씨의 연셜은 긔원졀을 죠션 인민이 경츅하는 일이라. 나라마다 경츅이 잇는 긔원졀이 조선이 경츅졀이라.(줄임)

 

젼국 인민이 당쵸에 긔원졀이 무엇인지 모르니 엇지 한심치 아니 리요. 죠션 인민이 이럿케 된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른 나라 모양으로 자긔 나라 샤긔와 자긔 나라에 유명 인사들의 뎍들과 자긔 나라 디위를 공부 아니 하고 다 쳥국 것을 한즉, 자긔 나라 일은 도모지 모르고 죠션 인사들의 문벌이나 공부 하며 무단 협잡 하면 돈 벌 것이나 알고 자긔 나라에 영광 되고 쟈랑스런 것은 하나도 모로고 다 못된 학문들만 잇시니 국가에 셜령 아무 죠흔 일이 잇드라도 국민들이 그걸 엇지 경츅 하는 걸로 알 것이오. 윤씨의 말이 죠션 인민들이 죠션이 자긔의 나라인줄로 알게 하는 학문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더라.( 독립신문 1897817일자 논설)


 

기사에서 윤치호는 교사 아펜젤라와 의사 서재필에 이어 긔원졀을 죠션 인민이 경츅하는 일이라라고 시작하는 연설을 했다. 국민들이 조선이 개국한 날인 기원절을 모르는 것은 중국 역사를 공부하여 과거시험을 보는 모순임을 역설하고, 이제 우리 역사를 공부하는 시대를 맞자는 권고였다. 개화의식과 반청자주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이 행사는 국가적 행사였다. 바로 노래가 의례적으로 불린 행사였다.

 

대죠션국 오백오회 긔원졀 츅사를 팔월 십삼일 오후 셰시에 독립관에셔 국긔를 놉히 달고 그 아래 화쵸로 단쟝 하엿서 졍부 대쇼 관인과 여러 학도와 인민이 만히 모혓시며 각국 공령사와 신사와 부인들이 각기 례복을 가쵸 입고 뎨뎨히 안졋는지라. 그 츅수가 일졀를 보니 쳐음에 학당 학원들이 츅슈가를 불너 오천 여년 우리 왕실 만셰 무궁 도으쇼셔 찬송 하니 외국부인이 악긔로 률에 쫒아 병챵 하더라.

 

둘 째 회쟝 안경슈씨가 연셜 하고 셋 째 한셩 판윤 리채연씨가 학부대신 리완용씨를 대신 하야 국민의 당연히 할 직무를 연셜 하고,

 

넷째 배재학당 학원들이 무궁화 노래를 불으니, 우리나라 우리님군 황텬이 도으샤 님군과 백셩이 한 가지로 만만셰를 길거야 태평 독립하여 보셰 하니 외국 부인이 악긔로 률에 병챵 하더라다.

 

다섯 째 미국 교사 아편셜라씨가 영어로 죠션에 거류 외국 인사들을 대하 야 각기 당연히 할 직무를 연셜 하며, 여셧 째 졔손씨가 죠션 관민들을 대하야 진보 할것을 연셜 하고, 일곱 째 배재학당 학원들이 나라 사랑하는 노래를 불으니 외국 부인이 악긔로 률에 쫒아 병챵 하더라.

 

여섯 째 젼 협판 윤치호씨가 긔원졀일 문졔를 연셜 한 후에 탁지 대신 심샹훈씨가 졔손씨와 외국 교사 아편셜라씨의 연셜 한 것을 감사하다고 말하더라. 그 다음에 다과례를 하고 이 날이 져믄고로 다 헤여져 도라 가더라.(독립신문, 1897817일자 <잡보>)


 

이 잡보란 기사에서 윤치호가 전 외무협판 윤치호로 관직이 확인 되고 축수가무궁화 노래나라사랑하는 노래가 불렸음을 아려주었다. 이 중 무궁화노래의 가사 일절이 적시 되었는데 우리나라 우리님군 황텬이 도으샤 님군과 백셩이 한 가지로 만만셰를 길거야 태평 독립 하여 보셰이다. 이 노래의 곡명을 처음 무궁화 노래라고 했다. 매우 의미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노래의 작사자에 대해서는 부연되지 않았다.

 

윤치호도 1897813일자 일기에 노래 곡명을 국화’(National Flower)로 기록하였을 뿐 작사자가 누구인지 기록하지 않았다. 다만 식순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13th. Friday. Cloudy>

1. Song Praise By the students of Pachai.

2. Address By President, An Kyongsu.

3. Address Duties as Citizens of the Commonwealth.By Yi Chai Yon.

4. Song National FlowerPaichai Students.

5. Address Obligations of Foreign Residents By Reverend Appenzeller.

6. Address Korean Advancement By Dr. Jaisohn.

7. Song Korea By Paichai Students.

8. Address The Day We Celebrate by T.H.Y.

9. Refreshments.

 

<대조선개국 505회 기원절 기념식 식순>

1 ‘축수가’-배재학당 학원들

반주-외국 부인

오백여년 우리왕실 만세 무궁 도으쇼셔

2 개회사-독립협회 회장 안경수

3 축사-한성판윤 이채연(학부대신 이완용 대독)

4 ‘National Flower’/‘무궁화노래-배재학당 학원들(Paichai Students)

반주-외국 부인

우리나라 우리님금 황쳔이 도으샤/ 님군과 백셩이 한가지로

만만세를 즐거하야/ 태평 독립 하여 보세

5 연설-‘재조선 외국인에 대하여’-미국교사 아펜젤라

6 연설-의사 제숀(Dr. Jaisohn/서재필)

7 ‘Korea’/‘나라사랑하는 노래’-배재학당 학원들

반주-외국 부인

8 연설-개국505회 개국기원절의 역사성’-전 협판 윤치호

9 폐회사-탁지부 대신 심상훈

10 다과회-폐회

국기 계양, 정부대신·외국공·영사·학생·일반 관중 참가

 

깃발을 게양하고 무대를 꽃으로 장식한 독립관(獨立館)에 정부대신외국공사와 영사학생 그리고 일반 관중들이 참석한 가운데 오후 세시에 식이 진행되어 전 외부협판 윤치호 등 3명이 연설을 했고, 관청 소유의 재산 수입, 탁지부 대신이 참석하여 의식을 주관했음에서 국가적인 행사임을 밝혔다.

 

3)The Independent, ‘무궁화가는 윤치호가 작사

학부협판 윤치호는 이미 503회 때 경절회 행사를 치룬 경험으로 전체적인 운영을 맡아했다. 이는 서재필이 기록한 1897813일자 영문기사 ‘Editorial Notes’(편집자 노트)에 상세하게 기사화 했다. 윤치호의 강연 <우리가 기념하는 날>(The Day We Celebratr)에 이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의 연설은 애국심에 차 있었고, 그의 설명은 매우 학자적이었다. 그는 한국이 민족주의에 대한 교육을 경시한 것에 대하여 후회했다. 사람들이 자기 나라보다 외국에 대하여 더 많이 알고 배우려 하였고, 그 결과 그들은 조국에 대한 사랑과 자기 나라 역사에 대한 자랑을 갖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정서가 진정한 애국심과 부푼 동기로 바뀌는 날이 멀지 않아 온다고 했다.(줄임)

 

배재 청년들이 무궁화노래를 불렀다. 한국의 계관시인 윤치호가 이날 행사를 위해 작사한 것이다. 학생들은 이 시를 스크랜턴 여사가 오르간으로 반주하는 올드 랭 사인곡조에 맞춰 불렀다.

 

윤치호의 강연을 애국적인 강연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어 불린 노래에 대해 언급하였다. “서재필 박사가 The Independent의 발행에 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다음은 그가 설명한 내용이다이라고 기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배재학당 학생들의 찬양이란 노래 합창으로 기념식이 시작····.”

배재 청년들이 ‘National Flower’이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이 노래는 한국의 계 관시인 윤치호가 이 날의 행사를 위해 작사했다.”

학생들은 이 시를 스크랜턴 여사가 오르간으로 연주 한 올드 랭 사인곡조에 맞춰 불렀다.”




이화학당 창설자인 스크랜턴(M. F. Scranton/1832~1909) 부인의 올드랭 사인오르간 반주로 배재학당 생도들이 부른 ‘National Flower’(국화)의 작사자는 ‘Mr T. H. Yun’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작사자 윤치호를 ‘Poet Laureate’, 즉 계관시인(桂冠詩人)이라고 표현했다. 일반적으로 계관시인은 국가 명예직인 () 고문’(Consultant in Poetry to the Library of Congress)으로 국가적 경조사에 기념시를 쓰고 낭송 하는 인물을 말한다.

 

한편 이 표현에서 이 작품이 국가적 경축일을 위해 지은 것으로 독립협회 또는 조정으로부터 위촉을 받아 작사한 작품임을 짐작케 한다. 윤치호는 직접 <무궁화가>를 작사하여 행사 기념가로 발표한 것이다.

 

<무궁화가>의 가사 전 4절을 찬미가에서 옮기면 다음과 같다.

 

Patriotic Hymn No[1]

TUNE: AULD LANG SIGN

승장신손 천만년은
사롱공상 귀천업시 직분만 다하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충군하는 일편단심 북악같이 높고
애국하는 열심의기 동해같이 깊어

천만인 오직 한마음 나라 사랑하여
사농공상귀천없이 직분만 다하세

우리나라 우리님군 황천이 도으사
국민동락 만만세에 태평독립하세

이를 통해 보면 기념가 <무궁화가>찬미가Patriotic Hymn No [1]가 된다. 그러나 작사로부터 1908찬미가발행까지는 곡명에서 변화가 있었. 1899629일자 독립신문에는 "모든 학원이 무궁화노래 하고"라 해서 '무궁화노래'라는 명칭이 확인 되고, 19071030일자 대한매일신보에는 무궁화가, 1908311일자 공립신보에는 애국가로 표기 되었다.

 

그리고 찬미가에서는 ‘Patriotic Hymn’(10)으로 표기되었다. 이 중에 애국가로 표기한 것이 주목된다. 이는 공립신보와 찬미가간의 관계인데, 찬미가초판의 간행년도를 1906년으로 본다면 공립신보 기사보다 앞서 ‘Patriotic Hymn’(10)애국가로 번역하여 애국가로 표기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궁화가>애국가로 명명 된 것은 찬미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