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구루시마 미치후사는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였다.

“소장 구루시마가 굴욕을 안고 돌아왔나이다. 용서해 주옵소서.”

요도도노는 눈망울 가득 애처로움을 담아냈다.

“다리에서 피가 많이 흐르고 있어요. 어서 치료를 서둘러야 해요.”

“소장의 몸속에 피가 모두 마를지언정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반드시 해낼 것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아내와 아들이 등장하자 구루시마에게 명령했다.

“오늘은 물러가서 치료를 받아라. 출정은 예정대로 추진한다.”

요도도노는 아들 히로이마루의 손을 잡으면서 재차 강조했다.

“히로이마루가 아직 5살에 불과합니다. 만일 태합께서 조선으로 무리하게 출병 하였다가 어떤 변고라도 발생 된다면 우리 모자는 어찌 되는 겁니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다이로(일본어: 五大老) 제도를 두지 않았소. 다 섯 명의 다이로들이 당신과 히로이마루를 지켜줄 것이요. 안심하구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의 가문을 지키기 위하여 설립한 합의제도로 고다이로는 다음과 같다.

간토(関東, 현 도쿄도)지역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가(加賀, 현 이시카와 현)지역의 마에다 도시이에,

기비(吉備, 현 오카야마 현) 지역의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秀家)

기비 서쪽 지역, 아키(安芸, 현 히로시마 현, 야마구치 현 지역)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

지쿠젠(筑前, 현 후쿠오카 현 서쪽) 지역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

요도도노의 안색이 붉게 상기되었다.

“고다이로는 당신이 존재하고 있을 때 가치가 있을 뿐 이예요. 만일 당신에게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들은 과연 이 어린 히로이마루에게 충성을 다할까요? 그들은 아귀처럼 우리에게 달려들 거예요. 잊었나요? 당신 역시 혼노지에서 오다 노부나가가 죽자 어떻게 행동 했나요? 그때를 기억해 보세요!”

모골이 송연해 졌다. 일본 전국 시대의 영웅이며 자신의 주군이던 오다 노부나가. 그는 신뢰하던 부하의 배신으로 혼노지에서 죽음을 맞았으며 그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권을 쟁취하기에 이르지 않았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반박할 말을 잃고 말았다. 만일 자신이 일본의 제이인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오늘의 충성 맹약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지혜로운 부인 요도도노와 가문을 승계 할 유일한 적통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위해 자신의 충동적 감정을 번복해야 한다는 것이 못내 아쉬워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잠자리가 몹시 뒤숭숭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리 오너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히로이마루, 즉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손짓하여 불렀다. 다섯 살의 아이가 아버지의 품안으로 달려와 안겼다. 그 어린 살결의 촉감이 이제 노인이라 할 수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