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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모슬림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까닭

괴레메(Göreme)라는 지명, ‘볼 수 없는 곳’이라는 뜻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30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카이세리에서 괴레메까지 거리는 71km이다. 우리가 탄 버스는 매우 안락하고 내부 시설이 좋은 관광버스였다. 남자 차장이 있었는데, 승객들에게 마실 차를 가져다주는 무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정말이지, 터키 사람들은 어디서나 친절하다. 괴레메는 카파도키아 지방을 관광할 때에 꼭 거치는 중심 도시이다. 나는 인터넷을 검색하여 다음과 같은 정보를 알아내었다.

 

 

카파도키아(Cappadocia)는 예전의 소아시아의 중앙에 있는 지역 이름으로서 오늘날 터키의 카파도캬(Kapadokya)에 해당한다. 아나톨리아 고원 한가운데에 자리한 카파도키아는 실크 로드가 통과하는 길목으로 대상 행렬이 근대까지 이어졌다. 카파도키아는 매우 넓어서 동서로 최대 400㎞, 남북으로 최대 250㎞에 달하는데,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300만 년 전 에르스시예스 산(3917m)에서 대규모 화산이 폭발할 때 마그마 분출로 만들어진 용암 바위 주위로 화산 분진이 내려앉아 응회암으로 굳어졌는데, 응회암은 화성암에 견주어 경도가 약하기 때문에 쉽게 풍화되어 깎여 나가고 카파도키아 지역 특유의 버섯 모양의 바위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지역에는 유난히 동굴이 많은데 동로마 사람들이 아랍의 간섭과 박해를 받게 되자 9세기경에 황량한 건조 지대인 이곳으로 도망쳐 와서 굴을 파고 숨어 살게 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괴레메(Göreme)라는 지명은 ‘볼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인데, 숨어 사는 사람들을 볼 수 없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11세기에 오스만 투르크에게 들킨 뒤에 이슬람의 지배를 받자 카파도키아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15세기 무렵부터는 거의 잊힌 지역이 되었다가 20세기가 되어서 지하 도시가 200여 개나 발견되었다.

 

1963년에 농부가 자꾸만 닭들이 사라지는 것을 궁금하게 여겨 추적하다가 발견한 가장 큰 지하 도시가 유명한 데린쿠유인데, 지하 8층까지 내려가고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그러나 데린쿠유는 괴레메에서 38km나 떨어져 있어서 아쉽게도 우리의 순례길 여정에서는 빠져 있다. 현재 괴레메는 인구 5,000명 정도의 작은 도시이지만 근처에 관광 명소가 몰려 있어서 카파도키아 관광객은 반드시 들리는 곳이다.

 

벨기에의 작가 피에르 쿨리포드가 카파도키아를 여행한 뒤 커다란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 개구쟁이 스머프(Les Schtroumpf)라고 한다. 미국 루카스 감독의 영화 스타워즈의 한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이 아니다. 터키 정부에서 허락을 해주지 않아서 쵤영을 못 했다는 것이다. 달에 착륙한 미국의 우주인 닐 암스트롱은 카파도키아를 보고서 “진작 여기에 와 봤더라면 굳이 달에 갈 필요가 없었을 텐데”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우리는 1시간쯤 버스를 탄 뒤에 괴레메에서 내렸다. 사방을 둘러보니 촛불이나 버섯 모양의 바위들이 곳곳에 서 있었다. 신기했다. 전혀 다른 행성에 온 느낌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여기에서 이틀 자고 앙카라로 떠나야 하는데 우리가 지나온 카이세리도 카파도키아에 속한다니, 카파도키아를 제대로 보려면 1주일은 걸릴 것 같다.

 

 

병산이 구글 지도에서 한국 음식점을 찾아냈다. 식당 주인은 한국 사람이 아니고 친절한 터키 사람이었다. 김치찌개를 먹고 싶었는데, 여기는 이슬람 국가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는 차림에 없고 대신 김치가 반찬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김치다운 김치를 먹으니 식사 뒤 뒷맛이 개운했다. 외국 여행을 하는 사람은 공감하겠지만 나는 어떤 음식을 먹어도 김치를 먹어야 식사가 끝나는 느낌이 든다. 김치 없이 식사를 끝내면 뭔가 빠진 느낌이다.

 

식당을 나와 우리는 여행 가방을 끌고서 숙소를 찾아갔다.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 경사길을 올라가고 버섯 모양의 커다란 바위를 지나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병산이 미리 알려주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숙소는 동굴이었다. 바위산에 사람 키보다 조금 높게 동굴을 파서 거실과 작은 화장실을 만들었다. 형광등이나 LED등이 아니고 정겨운 백열등이 실내를 은은히 비추어 주었다. 바위 계단으로 올라가는 2층에는 식당이 있었다. 곳곳의 작은 빈터에는 화초를 심었고 마당에는 포도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운치가 있는 아름다운 동굴 숙소였다.

 

 

 

저녁에 자기 전에 평소에 궁금했던 질문, 왜 무슬림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지 인터넷을 검색하여 알아보았다. 무슬림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근거는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코란 2장 172~173절:

“믿는 자들이여, 알라께서 너희에게 부여한 양식 가운데 좋은 것을 취하고 그분께 감사하고 그분만을 숭배하라. 죽은 고기와 피와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그러나 고의가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먹는 경우는 죄악이 아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질문을 던져 보았다.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구절은 왜 코란에 들어있을까? 미국의 인류학자인 마빈 해리스는 문화유물론이라는 분야를 연구하였는데, 이슬람 문화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를 돼지의 특성으로 설명하였다. 이슬람의 발상지인 중동 지역은 전통적으로 유목을 하는 지역이다. 중동 사람들은 양이나 염소를 기르면서 풀을 찾아 이동하였다.

 

그런데 돼지는 피부가 연약하다고 한다. 발그레한 분홍색을 ‘돼지 핑크’라고 말하는데, 돼지의 피부가 분홍빛인 이유는 털이 성글기 때문에 피부가 비쳐서 그렇다는 것이다. 돼지는 피부가 약한 탓에 진흙탕에서 굴러서 피막을 만들어 강력한 햇빛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한다. 진흙이 없으면 자기가 싼 똥오줌 위에서 구른다. 돼지로서는 약한 피부가 햇빛에 타서 괴로운 것보다는 더러운 것이 나을 것이다.

 

돼지는 햇빛을 피하려고 나무 그늘이 있는 숲이나 지붕이 있는 돼지우리 안에서만 살았다. 이동 생활을 하는 유목민으로서는 돼지를 기르려다가는 생존이 어렵게 되므로 처음부터 돼지를 기르지 않았을 것이다. 돼지는 정착 생활을 하는 농경 민족의 가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왜 종교적인 계율을 만들기까지 해서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했을까? 그것은 돼지고기가 맛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기가 맛있다고 돼지를 기르려다가는 유목생활을 포기해야 한다. 유목을 포기하면 척박한 초원에 기반을 둔 유목 사회를 유지할 수가 없게 된다.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하여 임금의 명령보다 더 강력하고 지속적인 것은 신의 명령이다. 과거에 전통 사회에서 종교는 정치보다도 더 강력하게 인간의 행동을 규제할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는 전통적인 유목 사회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코란에 돼지고기 금지 조항을 넣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환경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소나 양 그리고 염소는 풀을 먹는 초식동물로써 풀을 소화시키기 위해서 위에서 반추한다. 반추동물은 사람이 먹지 못하는 풀만 먹고서도 고기와 젖을 만들어준다. 사람들은 양의 털과 가죽을 이용하고 소의 경우에는 똥까지도 연료로 사용할 수 있으니 반추동물의 활용가치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돼지는 반추하지 못하므로 풀을 제대로 소화할 수가 없으며 곡물을 주로 먹는 잡식동물이다. 초원 지대에서 돼지를 기르는 것은 소나 양을 기르는 것에 견주어 경제성이 떨어지므로 과거 중동 지방에서는 돼지를 사육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