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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방랑시인 김삿갓의 가련기시(可憐妓詩)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51]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可憐行色可憐身 가련행색가련신

可憐門前訪可憐 가련문전방가련

可憐此意傳可憐 가련차의전가련

可憐能知可憐心 가련능지가련심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몸이

가련의 문 앞에 가련을 찾아왔네.

가련한 이 내 뜻을 가련에게 전하면

가련도 능히 가련한 이 마음 알아주겠지.

 

방랑시인 김삿갓이 가련이라는 기생에게 쓴 가련기시(可憐妓詩)라는 시입니다. ‘가련(可憐)’이라는 기생 이름에 빗대기 위하여 연마다 ‘가련(可憐)’을 넣어 시를 지었네요. 역시 김삿갓다운 시입니다. 김삿갓은 함경도를 방랑하다가 함흥에서 가련이라는 기생을 만나 3년간 걸음을 멈추고 아늑한 시간을 보냅니다.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길위에서 떠돌던 김삿갓이 어떻게 한곳에서 3년을 보낼 수 있었을까요? 그만큼 가련이 김삿갓을 휘어잡았나요?

 

그런 점도 있겠지만 김삿갓이 가련을 만나기 전에 두 번이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가련의 얘기를 들으면서 어떤 인연을 느낀 점도 작용하였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금강산 불영암 암자에서 공허스님을 만났을 때입니다. 시로서 김삿갓과 의기투합하여 서로의 시세계를 논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공허는 떠나는 김삿갓에게 함흥에 가거든 가련이라는 기생을 만나보라고 하였답니다.

 

그리하여 북쪽으로 발길을 돌린 김삿갓이 안변 땅을 지나면서는 어느 노파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집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김삿갓을 알아본 노파가 함흥에 가거든 가련을 만나보라고 합니다. 두 번씩이나 가련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김삿갓도 안 만나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련이라는 여인을 만나는 순간, 김삿갓의 가슴에도 파란이 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공허스님과 노파가 가련의 부모였다는군요.

 

이렇게 하여 김삿갓은 가련과 꿈같은 3년의 세월을 보냅니다. 그러나 김삿갓의 방랑벽이 영원히 멈출 수 있겠습니까? 하여 김삿갓의 방랑벽은 시간이 갈수록 가련의 사랑을 뚫고 나와 점점 커집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김삿갓은 이 한 계절 돌고 오겠다며, 붙잡는 가련의 손을 떼내고 다시 방랑의 길을 떠납니다. 김삿갓은 방랑길을 떠날 때 다음과 같은 시를 써줍니다.

 

可憐門前別可憐 가련문전별가련

可憐行客尤可憐 가련행객우가련

可憐莫惜可憐去 가련막석가련거

可憐不忘歸可憐 가련가망귀가련

 

가련과 문 앞에서 이별하려니 가련쿠나

가련이 객을 떠나보내려니 더욱 가련 하구나

가련아! 가련하게 떠남을 슬퍼 말아라

내 가련이를 잊지 않고 가련이를 찾아 돌아오리라.

 

김삿갓은 이별시에서도 역시 각 연에 ‘가련’을 넣고 있군요. 그런데 한 번 떠난 발길이 쉽게 멈춰지겠습니까? 김삿갓이 다시 돌아왔을 때 가련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가련은 김삿갓을 기다리다 결국 병이 나서 세상을 뜬 것 같습니다. 하여 김삿갓은 가련의 무덤을 찾아가 가련의 넋을 위로하며 또 한 수 시를 씁니다.

 

一別從後豈堪忘 일별종후개심망

汝骨爲粉我旨霜 여골위분아지상

鸞鏡影寒春寂寂 난경영한춘적적

風蕭音斷月茫茫 풍소음단월망망

 

​헤어진 후 어찌 잊었을까마는

그대는 백골 나는 백발

거울 속 내 몰골 처량한데 봄마저 쓸쓸하구나

바람 소리 소소하고 그대 음성 들을 길 없는데 달빛만이 망망하구나

 

 

이러한 가련의 이야기가 가련했던지, 작곡가이자 가수인  신중현 선생이 1997년에 ‘가련기시’라는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신중현 선생의 목소리로 ‘가련기시’ 노래를 들으며 제 글을 마치렵니다.

 

▶ 신중현 노래 '가련기시'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