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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원스푸드 거리’가 무슨 뜻일까?

한국인을 위한 간판에 영어로 잘난 체하기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5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의 생활 습관을 많이 바꾸어 놓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방식의 변화이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여 먹을 때에 반찬을 자기 젓가락으로 집지 않고 분배용 젓가락으로 자기 접시에 옮긴 후에 자기 젓가락을 사용하여 먹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다른 사람 젓가락과의 접촉을 최대한 억제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그런데, 음식점 주인은 먹다 남은 반찬, 곧 잔반을 어떻게 처리할까? 우리가 옛날에 가난했던 시절에는 잔반을 재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나 개인이나 어느 정도 잘살게 되면서 잔반을 재사용하지 않고 그냥 음식물쓰레기로 버리는 것이 새로운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잔반 재사용에 대해서 법적으로는 어떻게 규정되어 있나 조사해 보았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2009년 7월 4일부터 잔반 재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길 때 15일 영업정지나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위생과 안전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는 세 가지 유형의 식재료에 대해서는 재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1. 조리하지 않아 씻은 뒤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상추, 깻잎 등의 쌈채소와 과일

2. 껍질이 벗겨지지 않은 채 원형이 보존돼있는 메추리알, 완두콩, 바나나 등

3. 뚜껑이 있는 용기에 담겨 덜어 먹을 수 있는 김치류, 소금 등 향신료

 

식당 주인으로서는 비용 절약 차원에서 잔반을 재사용하고 싶은 유혹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생 관념이 높아진 손님은 만일 어느 식당에서 잔반을 재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발길을 끊을 것이다. 준법정신이 강한 손님이라면 그 식당을 관계 당국에 고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내가 살고있는 강원도 평창에서 운전을 하다가 운전석에서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큰 간판을 보았다. ‘ONCE FOOD ZONE’라고 쓰인 간판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래서 나는 차를 근처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려 간판을 사진 찍었다.

 

 

‘ONCE FOOD ZONE’ 이게 무슨 뜻일까?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ONCE FOOD ZONE’을 어떻게 해석할까? 나의 영어 실력이 모자라서 해석을 못 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관여하고 있는 몇 개의 단체 카톡방에 이 영어 단어 3개를 올려서 무슨 뜻인지 알아맞춰 보라고 질문을 던졌다. 아래와 같은 반응들이 올라왔다.

 

“한때는 음식 거리였다?”

“한 군데서 온갖 음식을 모두 먹을 수 있다?”

“옛날 한때 즐겨 먹던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거리?”

“옛날에는 음식 거리?”

 

그런데 총명한 어떤 사람이 영어 단어 ‘ONCE’의 놀라운 비밀을 발견하여 글을 올렸다. ‘ONCE’는 우리가 아는 한 단어(Once)가 아니고 4개의 영어 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합성어라는 것이다. 곧 ‘Once, Nice, Clean, Enjoy’ 네 단어의 앞 글자를 딴 것이 ‘ONCE’인데 로컬 관광 진흥 차원에서 ‘지역마다 특구를 만들었고, 여기에 와서 깨끗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라는 뜻이라고 한다. 와, 그렇게 깊은 뜻이 있다니! 점입가경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자세히 인터넷을 검색하여 보았다. 보건복지부는 온라인 공모 이벤트(2009. 3.10~12 진행)를 통해 ‘남은 음식 재사용 안 하기 운동’의 새 이름을 「ONCE Food 캠페인」으로 정하였다고 한다. ONCE Food는 ‘Once, Nice, Clean, Enjoy Food’의 줄임말로 딱 한 번 사용한 음식이 맛도 좋고, 깨끗하며 누구나 즐기길 원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ONCE라는 합성어를 만들어낸 최초 사람은 정말로 창의성이 뛰어나고 영어를 잘 아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나는 며칠 뒤 장평으로 가서 음식점들을 직접 조사해 보았다. 5집에 1집꼴로 다음과 같은 표시판이 붙어 있었다.

 

 

내가 몇 년 동안 다니던 음식점인데도 이런 표시판이 붙어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모를 것이다. 음식점 주인에게 표시판을 2018 동계올림픽 때 달았는지 물어보니, 그보다 훨씬 오래전이라고 한다. 왜 옆집에는 표시판이 없느냐고 물어보니, 새로 개업한 지가 2년밖에 안 되어서 없을 것이라고 한다. 조사해 보니 오래된 음식점에만 표시판이 있었다. 추측건대 2009년 캠페인을 시작할 때 표시판을 나누어주고 그 이후에는 관리를 안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ONCE FOOD ZONE’을 읽는 사람이 최초 입안자의 의도대로 그렇게 해석할 것인지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한국 사람들이 이처럼 헷갈린다면 미국 사람들은 어떻게 해석할까? 평창에서 미국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고, 아쉬운 대로 미국에서 15년 동안 교수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한국의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가 봉평에 살고 있어서 물어보았다. 그는 “이렇게 쓰면 외국인은 아마도 ‘한때 음식거리였지만, 지금은 아닌 민속촌’ 정도로 해석할 것이다. 누구도 ‘잔반을 다시 안 쓰는...’이라고 해석하지 않을 것이다. 뜻을 몰라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라고 답변하였다.

 

내가 그 교수에게 다시 물었다. 영어로 ‘잔반을 재사용하지 않는 거리’라고 표현하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그는 “굳이 번역한다면 Health Food Street 또는 Wholesome Food Avenue 정도가 아닐까요? Zone은 어딘가 ‘집단’ 또는 ‘구역’과 가까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행정구역, 집단수용소, 경제자유구역처럼 말입니다.”라고 답변하였다.

 

그런데 그 교수가 추가로 나에게 한마디 던졌는데 매우 충격적이었다.

 

“왜 이런 간판이 필요합니까? 잔반을 재사용하지 않는 거리라는 것을 알린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 아닙니까? 미국 사람이 그 간판을 보고서 뜻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다행입니다. 만일 그 뜻을 알았다면, 미국 사람은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이 거리 말고 다른 거리에서는 잔반을 재사용한다는 뜻 아닙니까? 잔반을 재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지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정말로 문제가 커져 버렸다. 간판을 제대로 수정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간판을 거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는 말이다. ‘ONCE FOOD ZONE’이라는 간판을 돈 들여 만들어놓고서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이다. 아니 역효과가 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내가 알고 있는 평창군 문화해설사에게 이 엄청난 발견을 카톡으로 알렸다. 그리고 당신이 이 문제를 한번 해결해 보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다음과 같은 답변이 왔다.

 

“몇 년 전 이 문제를 제기하고자 군청의 담당 계장을 만났습니다. 그의 대답은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진행되는 운동의 하나이기 때문에 군청 차원에서는 달리 조치할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중앙부처인 보건복지부에서 해결해야지 말단 행정기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지극히 공무원적인 답변이다. 잘못을 알았다면, 상부로 건의를 해서 시정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등장한다. 한국에서 한국인들을 위한 운동이고, 한국인들에게 알려 나가는 목적의 간판인데도 한글로 쓰지 않고 굳이 영어로 써야만 하는지 말이다. 잘난 체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간판을 모든 한국인이 잘 이해할 수 있게 쉬운 말로 그것도 한글로 쓰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일제강점기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 주시경 선생은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가 내리나니”라는 말을 했다. 정말 나라를 걱정하는 공직자라면 제발 이런 어이없는 일을 벌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연히 발견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총리실로 민원을 넣어야 하나? 청와대 누리집에 국민청원을 올려야 하나?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의 조언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