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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조선을 뒤흔든 의문의 살인사건, 그 뒤엔 자유

자유를 향한 위험한 질주와 복수
《구월의 살인》 / 김별아 / 해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삼성국문(三省鞫問)을 받던 범인이 옥중에서 물고를 당했다’

*삼성국문; 의정부, 사헌부, 의금부의 관원들이 함께 패륜을 범한 죄인을 국문하던 일

 

소설의 실마리는, 《조선왕조실록》에 쓰인 여덟 줄이었다. 이 사건은 단 한 번, 효종 1년(1650년) 2월 27일 기사에 등장한다. 주인을 살해한 죄로 삼성국문(三省鞫問)을 받던 범인이 옥사했다는 기록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여종이었던 범인이 자신이 한 남자를 찔러 죽인 것은 자복했으나, 그 남자가 자신의 주인인 것은 한사코 부인한 사실이었다.

 

작가 김별아는 이 대목을 수상히 여겼다. 그래서 《승정원일기》로 눈을 돌려 효종 즉위년(1649년) 11월 6일부터 사건에 관해 언급한 기사 40여 개를 찾아냈다. 조정에서 단순 살인사건을 이토록 여러 차례 다룰 리는 없기에, 그녀는 작가 특유의 ‘촉’을 발휘해 앙상한 사실의 뼈대에 풍부한 상상력을 덧댔다.

 

이 책 《구월의 살인》은 이렇듯 한 줌의 기록에서 탄생한 역사추리소설이다. 사실, 책장이 쉬이 넘어가진 않는다. 형사사건에서 쓰던 전문용어가 워낙 많고, 역사소설 특유의 예스러운 문체가 눈에 익을 때까지 시간이 걸린 탓이다. 그러나, 자욱한 안개 속을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사건의 실체에 성큼 다가서 있다.

 

 

소설은 퇴청하기 위해 사인교에 오르던 형조판서 이시방 앞에 두 그림자가 뛰어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소인들은 여주 사람 김태길의 천첩이  낳은 자식들이온데 청천벽력으로 아비를 잃은 통한을 견딜 수 없어 상복을 입기를 미루고 상경하였습니다. … 백주대낮에 한양 한복판에서 도륙을 당했으니 어찌 이보다 더 참사하리까? … 그런데 범인을 잡아내지 못한 채 이대로 검험(檢驗)을 끝낸다면 망자가 두 눈을 감고 저세상으로 떠날 수 있으오리까?” (p.9-10)

 

그랬다. 두 아들은 아비 김태길이 대낮에 칼에 찔려 죽었음에도 첫 번째 검시와 두 번째 검시가 이루어진 뒤, 마지막 세 번째 검시가 이루어지지 않고 강도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사건이 종결되려 하자 다급한 마음에 뛰어든 것이었다. 오늘날의 법무부장관 격인 형조판서 이시방은 결국 사건을 원점부터 엄밀히 수사할 것을 지시한다.

 

그리하여 형조좌랑 전방유, 이미 미제사건을 여럿 해결한 전력으로 이름을 떨쳤던 그가 전면에 나선다. 그는 그동안 여러 사건을 해결하면서 점차 살아있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대신, 죽은 자가 남긴 말, 시신이 하는 말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이번 사건도 시신에 남긴 상처를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했다.

 

전방유가 시신을 조사하며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동안, 범인 구월이 김태길을 향해 복수의 칼날을 빼든 저간의 사정도 교차하여 펼쳐진다. 사건을 파헤치려는 전방유와 범인 구월, 이 둘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이 엮이듯 얼기설기 교차하며 전체 퍼즐을 완성해간다.

 

사건이 전말은 이러했다. 구월은 여주 지방 토호 김태길의 노비로, 같은 집의 노비였던 석산과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석산은 주인의 집에 함께 기거하는 솔거노비로는 그들의 삶에 자유도, 희망도 없다고 생각했고, 외거노비가 되어 나가 살면서 재산을 모아 면천하는 미래를 꿈꿨다.

 

“안 돼. 행랑채 단칸방에서 누구의 재산인 채로는 안 돼!”

석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슬픈 눈빛에 단호한 표정으로 하루살이의 삶을 멈춰야 한다고 했다.

“자유롭지 않으면 희망 같은 건 없다.”

처음 들어본 말, 자유 그리고 희망. 두메산골에 삼간초옥을 짓고 화전을 일구며 살지라도 자유로워야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p.272)

 

그러나 혼인하면 외거노비가 되는 것을 허락하겠다고 말해왔던 김태길은 수 해가 지나도록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분개한 석산은 구월이 아이까지 가진 것을 알자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해 주인과 담판을 지으러 갔고, 그것이 곧장 황천길이 되고 말았다.

 

잔인한 김태길은 도망한 노비를 벌하는 방식으로 석산에게 갖은 고문을 가했다. 그러다 기어코 톱과 작두로 석산의 손과 발을 모두 베어버렸다. 대청 한가운데 의자를 놓고 역적죄를 다스리는 임금처럼 마냥 살인을 즐기는 김태길, 피눈물을 흘리며 귀신의 몰골로 죽어간 석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결박을 당한 채 모조리 지켜봐야 했던 구월. 구월은 그때 석산을 따라 이미 죽었다. 이제 그녀에게 살아야 할 이유는 오직 복수뿐이었다.

 

구월은 김태길의 집에서 도망쳐 5년 동안 떠돌며 무술을 배우고, 효종의 아우 인평대군 사저의 궁노로 들어가 복수를 도와줄 각종 세력을 끌어모았다. 반사회 조직 ‘검계(劍契)’와도 접촉하며 도움을 약속받고, 김태길과 그의 친구 김원위를 술에 취하게 할 기생, 주머니를 훔쳐 으슥한 곳으로 유인할 도둑, 그의 명을 단번에 끊어놓을 수 있는 무기까지 모두 준비했다. 이런 치밀한 함정에, 마침내 그가 걸려든 것이다.

 

워낙 빈틈없이 준비한데다, 효종이 각별히 아끼는 아우 인평대군의 궁노가 대거 연루된 까닭에 진상을 밝히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전방유의 활약으로 마침내 구월이 체포되고, 구월은 모진 고문 속에서도 끝내 혼자 한 일이라고 주장한 채 눈을 감았다.

 

또한, 그녀의 형(形)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구월은 자신의 어미가 신분을 숨긴 공노비였으며, 비록 어미가 김태길의 사노비와 혼인했으나 자신은 천자수모법(노비끼리 혼인했을 때 자식은 어미의 신분을 따른다는 법)에 따라 결단코 공노비라고 주장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원수 김태길의 노비가 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석산이 품었던 자유를 향한 갈망은, 석산을 집어삼키고 구월마저도 산산이 부서트렸다. 당시 조선에서, 자유는 너무나도 위험한 갈망이었다. 그러나 인간에게 자유는 그 모든 것을 감수할 만큼 다디단 것이었기에, 곳곳에서 자유를 향한 위험한 질주가 난무했다.

 

그러나 영원한 부만큼이나 영원한 꿈이 또 하나 있으니, 그것은 자유였다. 태어나면서부터 메고 나온 팔천의 멍에를 벗고자 각각이 발버둥질했다. 자유의 탈로는 좁고 위험했다. 노비에게는 도망치는 게 최선이었다. … 왜란과 호란 때는 숱한 장인들이 도주해 행방불명되었다. 팔천 중에서도 하질로 취급받는 백정은 역모에 가담하는 수밖에 없었다. 목숨과 맞바꿀 만큼 자유는 귀했다. 전부를 가질 수 없다면 절반이나마 원했다. 사노들이 공노의 소생이라고 자수하는 투탁을 통해 공노로 신분을 바꾸는 것도 그런 열망의 소산이었다. (p.256-257)

 

이런 질주를 보여주듯, 소설 전체에 자유를 향한 위험한 본능과 그것을 잔인하게 짓밟은 시대의 폭압이 넘실거린다. 갈망과 억압이 부딪히는 과정에서 무수한 희생자가 쏟아졌지만, 그 피를 딛고 역사는 조금씩 진보해 왔다. 불과 몇백 년 전 노비는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취급받았던 사실을 떠올리면, 오늘날 모든 개인이 자유로운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우받는 것은 얼마나 역사적 ‘쾌거’인가. 역사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진보하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작가의 풍부한 자료조사가 돋보이고, 어려운 용어에는 상당 부분 각주가 달려있어 이해를 돕는다. 독자를 단숨에 빨아들이는 흡입력 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으나, 기록 몇 줄만 남은 살인사건을 소재로 시대적 모순을 그려낸 주제의식은 훌륭하다. 구월과 석산이 한 많은 노비의 생애를 뒤로하고, 오늘날 자유로운 한국에 태어나 자유롭게 사랑하며, 자유로운 일상을 영위하고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