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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기후약자를 돕는 ‘기후정의’ 실천할 때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76]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난 6월 중순부터 시작된 기록적인 몬순 폭우는 파키스탄 국토의 1/3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파키스탄의 전례 없는 대홍수는 기후변화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구온난화가 몬순을 강하고 불규칙하게 만들어 올해 8월 파키스탄에 평년보다 500~700% 많은 비가 내렸다는 것이다. '계절풍'을 의미하는 몬순(monsoon)은 대륙과 해양의 열 차이에 의해 계절풍이 부는 현상이다. 이때 기온이 높아지면 수증기가 많이 발생해 폭우로 이어질 수 있다.

 

 

지구온난화가 일으킨 엄청난 재앙에 대해 파키스탄의 기후변화부 장관은 9월 4일 가디언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오염을 일으킨 부유한 국가들이 홍수 피해를 본 파키스탄에 배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파키스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구 전체 배출량의) 1% 미만이다. 우리의 배출량은 매우 적다. 반면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부자가 되어온 나라들이 있다. 선진국들이 기후재앙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파키스탄의 홍수에 대해서 선진국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러한 주장은 근거가 있을까? 아니면 억지 주장일까? 지구 기온을 상승시키는 원인은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알려져 있다. 이산화탄소는 화석연료를 태울 때 많이 발생하는데, 국민소득이 높은 부자나라일수록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배출하고, 따라서 기후변화에 더 크게 이바지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실증적인 연구가 발표되었다. 2014년 부산대와 중국 난징사범대 국제공동연구팀은 지구 기온이 1도 상승하면 남아시아 지역의 몬순이 5%의 비를 더 내리게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인구가 많을수록, 1인당국민소득이 높은 나라일수록 온실가스 배출량은 많을 것이다. 영국 신문 The Times에서 발표한 2019년 기준으로 국가별 온실가스 배출 총량과 일인당 배출량은 아래 표와 같다.

 

 

<표1>을 보면 중국이 압도적으로 가장 많은 온실가스(주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중국의 배출량은 미국 배출량의 거의 2배나 된다. 그러기에 지구온난화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중국이 져야 할까? 중국은 인구가 많아서 배출총량이 많지만, 국민 1인당 배출량을 계산해보면 중국이 7.1이고 미국이 16.1로서 중국인은 미국 사람보다 1/2보다 적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 배출총량으로 보면 인도가 제3위이지만 일 인당 배출량으로 보면 인도 사람은 미국 사람의 1/8 정도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 그러므로 단순히 배출총량으로 기후변화의 기여도를 계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온실가스는 만들어진 뒤에 대기층에 머무는데, 식물의 광합성으로 흡수되거나 물에 녹아서 탄산염으로 흡수되어 대기층에서 없어질 때까지 많게는 500년이나 걸린다. 2022년 현재 화력발전을 하면서 만들어진 이산화탄소는 2500년까지 대기층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위기의 책임 소재를 밝히는 데는 누적배출량이 더 중요하다.

 

18세기의 산업혁명 이후 온실가스가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1750년~2020년 동안의 누적배출량을 계산해보면 선진국들의 기여도가 압도적으로 크다. 전체 누적배출량의 25%는 미국에서 발생하였고, 유럽국가들은 22%를 차지한다. 2019년에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 중국은 누적배출량으로 계산해보면 12.7%에 불과하다. 그밖에 일본은 4%, 우리나라는 1%, 아프리카 나라들 전체가 3%, 남아메리카 나라들이 3%를 차지한다. 따라서 공정하게 기후변화의 책임 소재를 밝히려면 누적배출량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홍수 피해는 누가 당하는가?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이 피해를 본다. 글머리에서 언급한 파키스탄은 인구가 2억2,500만 명으로서 세계 제5위의 인구대국이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한 사람당 국민소득(2018년 기준)은 1,182달러에 불과해 제161위로서 경제적으로는 최빈국에 속한다. 국민소득이 낮을수록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적을 것인데, 파키스탄의 온실가스 누적배출량은 전체의 0.3%에 불과하다.

 

이처럼 그동안 가난하였기 때문에 지구온난화의 기여도가 낮은 나라에게 선진국들과 똑같이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요구다. 미국과 EU국가들, 그리고 일본과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 대부분 나라가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하였지만 중국만은 예외적으로 탄소중립 달성 연도를 2060년이라고 10년 늦추었다. 그 배경에는 “우리도 서방의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의 경제발전을 이룩한 연후에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라는 나름의 설득력 있는 주장이 담겨있다고 본다.

 

전 세계 인구를 소득계층별로 분석해보면 소득이 높은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보다 훨씬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그림2>를 보면 소득순위 상위 10%에 속하는 부자들이 전체 온실가스의 49%를 배출한다. 전 세계 인구의 50%를 차지하는 저소득층은 전체 온실가스의 10%만을 배출할 뿐이다.

 

 

그런데도 기후위기로 인한 가뭄과 홍수 피해는 부자나라보다는 가난한 나라에 집중된다. 또한 한 나라 안에서는 부자보다 가난한 계층이 더 큰 피해를 보게 된다. 올해 파키스탄 홍수로 1,100명이 숨지고 3,3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재민은 대부분이 저지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지난 8월 8일 수도권에 폭우가 내렸을 때 서울 신림동 반지하방에 살던 세 사람이 침수로 숨진 사건은, 부자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피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희생된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정의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약자를 도와주는 것”이 정의다. 기후변화로 피해를 본 사람들을 기후약자라고 말할 수 있다. ‘기후정의’라는 새로운 용어가 만들어졌는데 그것은 기후약자를 돕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9월 10일 수해가 난 파키스탄 남부 카라치를 방문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인도주의적 재난을 보았지만 이런 규모의 기후 참사는 본 적이 없다.” 이어서 그는 기후위기와 관련해 잘 사는 나라의 책임을 강조했다. “주요 20개국(G20)이 온실가스의 80%를 배출한다. 파키스탄같은 개발도상국이 이런 재난에서 회복할 수 있도록 부유한 나라가 도와줘야 할 도덕적 책임이 있다,”

 

기후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지구 전체로 보면 선진국들이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줄여야 할 것이다. 한 나라 안에서는 부유한 계층이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줄여야 할 것이다. 온실가스를 줄이려면 에너지의 소비를 줄여야 한다. 에너지 소비를 줄인다는 것은 생활수준을 낮추어야만 가능하다.

 

기후정의는 실현 가능할까?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를 보면 기후정의는 공염불(空念佛)에 그칠 것으로 염려된다. 비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