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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에베레스트 사나이 한국의 등반가 고상돈을 찾아서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한국의 관광명소의 제일로 손꼽히는 제주도는 섬 한가운데 한라산이 우뚝 솟아있다. 이 한라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자동차길 중간지점에 해발 1,100고지가 있는데 여기에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한국인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산악인 고상돈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고상돈은 1948년 제주에서 태어나 청주로 이사하여 성장하였다. 그는 1965년 청주에서 충북산악회에 가입하여 등산을 시작하여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정상 등반을 위해  나라 밖 원정 등반 준비를 해나갔다.  이렇게 쌓아온 경험으로 한국일보 후원, 대한산악연맹의 주관으로 19명 원정대의 일원으로 출발하여, 1977년 9월 15일 한국인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해발 8,848m의 에베레스트 정상은 베이스켐프에서 출발하여 7시간 20분 동안의 죽음을 각오한 도전이었다.

 

당시 에베레스트산 정상은 세계의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오르고자 하는 최고의 목표였지만 높을 뿐 아니라, 산소가 희박하여 숨조차 쉴 수 없고, 거센 바람과 눈사태 등 험란한 여정과 변덕스러운 날씨로 좌절하는 경우가 허다하였으며, 도전하다가 오르지 못하고 조난당하여 죽는 사람이 많았다. 한마디로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도전이라는 말을 하지 못할 도전이었다.

 

이 당시 등정 기록에 따르면, 원정대는 장비가 열악하여 1차 공격조였던 박상렬 부대장이 28개 산소통을 다 쓰면서도 100m 앞에서 실패하고 철수한 상황이었으나, 에베레스트 산 기슭에서 프랑스 원정대가 버리고간 새 산소통 12개를 주워 2차 공격대원으로 고상돈이 활용함으로써 정상 정복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상돈 대원은 베이스켐프에서 7시간 이상의 사투를 이겨내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1시간 가량 머물면서 1976년 동계훈련중 설악산에서 눈사태로 죽은 최수남, 송준송, 전재운 동료들의 사진을 에베레스트 정상의 만년설에 묻고 이들의 염원까지도 이루어 주었다.

 

당시 한국의 실정은 산악인이 많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산악장비들도 열악하고, 등반을 위한 후원자를 구할 수 없어 에베레스트 정상을 도전하는 것은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생각하던 때로 도전 자체만으로도 꿈같은 시절이었다. 이런 열악한 등반여건 속에서도 불굴의 열정을 간직한 산악인들이 어렵게 원정대를 조직하여 난고의 고행을 이겨내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태극기를 꽂은 것이다.

 

이는 등반팀으로는 14번째이고 세계 국가 가운데서 8번째 등정이며, 기후상 몬순(계절풍)기간에는 3번째다.  이후 한국은 등산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등반 강국이 되었고, 이후 수많은 한국의 등반가들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으며, 엄홍길 같은 등반가는 히말라야 8,000m 이상의 모든 산을 오르는 등 세계적인 산악인이 되었다.

 

고상돈은 1977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뒤 또 다른 험한 산인 알래스카 산맥의 디날리산(일명 매킨리봉) 정상을 등반한 뒤 내려오는 도중 눈속으로 추락하여 세상을 뜨고 말았다.  1979년 5월 29일 이었다. 산이 좋아 산을 찾아 산악인의 염원을 이룬 그의 명복을 빌며, 한라산 1,100고지를 넘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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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