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겨울이면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한 설악산이다. 그 설악산 가운데서도 속초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진 깊숙한 곳 공룡능선과 마등령 근처 산비탈에 자리잡은 오세암은 5살 먹은 동자승이 관세음보살의 도움으로 살아남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절설같은 이야기로 그 이름이 정해진 암자이다. 오세암의 전설에 따르면 설정스님이 부모를 잃은 어린조카를 이곳 암자에 데려와 키우던 중 추운 겨울 눈이 오기 전에 월동준비를 위하여 마을로 시주를 받으러 내려갔는데, 어린 5살 조카를 데리고 갈 수 없어 암자에 며칠 먹거리만 남겨두고 내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폭설이 내려 봄이 될 때 까지 암자로 돌아올 수가 없게 되었다. 겨울동안 스님은 폭설에 설악산만 바라보며 속이 타들어갔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스님은 겨우내 관세음보살을 부르면서 동자의 생존을 기원하면서도, 아무도 보살펴줄 사람이 없는 암자에서는 어쩔 수가 없을 것이라는 현실 앞에 어린 동자가 굻어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날이 풀려 산에 오를 수 있게 되자 부지런히 계곡과 산길을 돌아서 암자로 올라갔다. 그런데 죽었을 것으로만 생각했던 동자가 암자에서 방문을 열고 나와서 스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여름은 연꽃의 계절이다. 봄이 되어 새싹이 피어난 연줄기에서 여름이면 화사한 꽃으로 피어나는 연꽃은 빨갛고 하얀꽃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해주고 주변에는 은은한 향기를 풍겨주면서 꽃의 가운데에는 노란 연방을 품고 씨앗을 여물게 하여 후세를 남긴다. 연꽃의 원산지는 이집트로 알려져 있으며, 고대로부터 교류로 인도에 전해졌는데, 그 자라는 바탕이 진흙 흙탕물 속에서 자라나 아름답게 피어나는 모습이 불교에서 혼탁한 중생계에서 보살행과 같아서 불교의 상징꽃이 되었다. 이곳 부여는 백제시대의 마지막 도읍으로 궁궐이 있었다고 하는데, 대략 그 위치가 궁남지의 북쪽일 것이라고 하지만 아직 그 위치도 규모도 알수가 없다. 하지만 전하는 바에 따라 궁의 남쪽인 이곳에 다시 큰 못을 조성하고 주변 논에는 많은 연꽃을 심어서 가꾸고 있다. 궁남지(포룡지)의 가운데에는 포룡정을 세웠는데, 그 의미는 백제의 30대 왕인 무왕의 어머니가 이곳에 살고 있던 용의 아들을 낳았다는 전설같은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곧 무왕은 용의 아들이지 한낫 과부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산에서 마를 깨는 마동으로 자랐지만, 성장한 뒤에는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김홍도는 조선 후기에 태어나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모습들을 다양하게 그린 천재화가였다. 그는 현재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서 태어난 화원으로 산수화, 풍속화, 화조화, 불화 등 자신이 살면서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매우 독창적으로 그렸다. 특기 당시 일반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그대로 그린 풍속화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잘 알 수 있으면서도 매우 정겹게 그려서 후대에 남겼다. 김홍도의 집안은 그림과는 무관한 양반가로 아버지는 수문장을 지냈다. 그런데 어린시절 김홍도는 근처에 사는 당대 최고 도화원 화가인 강세황을 만나게 된 것이 그림공부를 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강세황은 당시 정조의 신임이 매우 두터웠는데, 김홍도에게 왕세손 시절 정조의 어진을 그릴 수 있도록 추천해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어진을 그린 공로로 김홍도는 1773년 장원서의 별제로 임명되었고, 1774년 왕실 소유의 채소재배를 관장하는 사포서에서 종6품의 관직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규장각도를 그려서 바쳤고, 1781년(정조5년) 다시 영조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리하여 김홍도는 도화서의 별제로 임명받았다. 김홍도는 정조의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안동 봉정사는 가장 오래된 한국의 전통건축물 극락전이 있다. 이 극락전은 부석사 무량수전이나 수덕사 대웅전에 견주어 그 규모는 작은데, 1972년 해체수리를 통하여 나타난 묵서에 따르면 원래 건립시기는 정확히 밝히지 않아서 알수 없지만 1363년(고려 공민왕 12년) 지붕을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원래 이보다 오래전에 지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따라 국내 건축학자들의 견해는 최초 건립시기를 1200년대 초로 추정한다. 이처럼 봉정사의 극락전의 건립연대가 밝혀지기 전에는 부석사 무량수전이 가장 오래된 건물로 알고 있다가 한국 전통건축의 최고 오래된 건축물이 봉정사 극락전으로 그 순서가 뒤바뀌게 되었다. 참고로 수덕사 대웅전은 1308년 건립, 부석사 무량수전은 1376년이다. 봉정사 극락전은 건물의 규모는 작고 그 장식도 소박하지만, 건립 연대가 오래되어 한국 전통건축의 옛날 기법이 많이 남아있다. 오늘 보는 괘불은 한국건축의 가장 오래된 안동 봉정사에 모셔진 괘불이다. 이 괘불은 1710년 봉정사의 166명의 신도들이 시주하여 만들어졌는데, 그 높이가 8.0m 폭이 6.0m에 이른다. 괘불의 구성은 석가모니부처님이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대구 동화사는 많은 고찰들이 자리한 경상북도 명산 팔공산에서 가장 큰 사찰로 그 역사 또한 1,5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동화사(桐華寺)란 이름은 오동나무 꽃은 추운 겨울에도 상서롭게 피어난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으로, 옛부터 봉황은 오동나무 열매만을 먹고 산다고 하며, 오동나무가 있는 곳은 바로 봉황이 사는 곳을 뜻하였는데, 오동나무가 잘 자라는 이곳이야 말로 봉황이 늘 머무는 명당임을 뜻한다. 극락조로 불리우는 봉황이 살고 았는 곳은 그야말로 천하 명당터이기에 이곳에 부처님을 모시고 절을 지음으로 수행자는 깨달음을 얻고, 병고에 시달리는 중생은 무병장수의 행복을 얻는 곳이 되기를 염원하고 지은 절이 바로 동화사이다. 1,500년 오랜 역사도 자랑스럽지만, 최근(50년 이내 일이므로)에 동화사에는 대대적인 불사가 이루어졌다. 그것은 현재 한국이 처해있는 가장 시급하고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민족적 염원을 담아서 동화사의 앞산 언덕을 활용하여 통일기원 약사대불과 통일기원대전을 완성한 것이다. 동화사 약사대불은 1992년 노태우대통령과 당시에 대구 경북지역민들의 뜻을 받들어 동화사가 주관하여 세운 대역사로, 화강석으로 조성한 대불의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2026년은 프랑스와 한국이 정식 외교를 맺은지 140돌이 된다. 처음 양국이 통상수교조약을 맺기 전에는 프랑스 포경선이 신안 앞바다에 좌초되어 구조한 선원들을 청나라 북경에 있던 프랑스 영사관을 통하여 인도해줌으로 좋은 인연이었다. 하지만 얼마되지 않아 조선에서의 천주교인 탄압으로 인하여 프랑스 선교사들과 조선의 천주교인들이 참살당하는 일이 있은 뒤에는 프랑스가 해군함대를 보내와 강화도 초지진과 광성보 등에서 함포사격과 육박전이 벌어지는 결사적인 항전도 있었다. 이때 조선군은 무기의 위력 차이에 무참하게 쓰러져갔다. 강화도 광성보에 가면 그 당시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위령비가 있다. 1866년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침략을 감행 한 뒤, 조선은 청나라의 중재로 조선-프랑스 통상수교조약을 체결하여 정식으로 국교를 맺었으며, 이후 천주교를 믿는다고 탄압받는 일은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조선이 흥선대원군과 민비의 대립으로 스스로 힘을 키우기 보다는 외세에 의지하여 이리 저리 휩쓸렸다. 그리고 결국은 일본에 나라를 잃고 말았다. 그렇게 되자 그동안 서구 국가들과 맺었던 조약들은 자연히 그 힘을 잃었고, 오직 일본에 시달리는 신세가 되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오늘 보는 석탑은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동 가운데 중정에 서있는 경천사 10층석탑이다. 경천사는 현재는 갈 수 없는 북한지역 황해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에 있던 절로, 이탑은 고려 후기 원나라의 석조장인들이 원나라의 건축양식으로 고려땅에 세운 석탑이다. 이 석탑은 한국내 다른 탑들과는 모양도 다르고 석재의 재료도 다르다. 한국내 석탑들은 대부분 화강암 석재를 구하여 자르고 다듬어서 세웠지만, 경천사석탑은 중국에서 생산되는 대리석을 정밀한 목조건축양식으로 세부장식까지 재현한 석조탑이다. 이탑의 높이는 13.5m로 현대식 건축물로도 4층 높이에 해당하는 대단한 규모로, 재료인 대리석을 중국에서 가지고 오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고, 이를 세밀한 목조건축양식으로 다듬는 일도, 다듬은 석재들을 층층이 쌓아 올리는 일도 참으로 엄청난 일이었을 것이다. 이 탑은 본래 북한지역의 경천사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1909년 일본 군내대신 다나카 미쓰야키가 무슨 수를 썼는지 구입하여 해체하여 일본으로 반출하였다가 심각한 나라 안팎의 저항에 결국 반환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깨지고 또 다시 일본과 조선을 오가며 쌓아 올리면서 깨어지는 등 본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한국의 선불교는 신라후기에 본격적으로 도입하였다. 교종인 교학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수많은 경전들(금강경, 화엄경, 법화경 등)을 배우고 익혀 차츰차츰 부처님의 제자로서 이론적 불교학을 배우고, 계율을 따르고 수행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부처님 처럼 깨달음에 가까와지고 나아가 세상을 밝히는 수행자가 되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선종인 선불교는 깨달음을 얻어 이미 부처님에 버금가는 경지에 오른 선사스승의 지도를 받으며 화두(깨달음을 얻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만을 골똘이 탐구하여 스승과 같은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종파로, 인도에서 당나라로 들어 온 달마대사에서 시작하여 6조 혜능대사로 부터 크게 융성한 불교 종파다. 진리를 깨치면 잡다한 학문이나 이론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선불교는 교학불교와는 매우 다르다. 당나라의 초조 달마로 부터 6조 혜능까지는 스승은 좌선수행을 통하여 경지에 오른 수많은 제자들 가운데서 오직 가장 뛰어난 제자 한사람에게만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선사로 인가를 하였기에 같은시대에 깨달음을 얻은 선사는 2인이상이 될 수 없었으나, 6조 혜능대사 이후로는 깨달음을 인가받을 만한 제자라면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강화도 북동쪽 돌출한 곳에 있는 연미정(燕尾亭)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한국 전통정자다. 연미정은 한강과 임진강으로 오르내리는 배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요충지로, 상업적으로 뿐 아니라, 군사적 요충지로 '월곶진'이라는 작은 돈대(작은 성곽)의 안쪽에 있어, 일반적인 한국의 정자와는 달리 한강 입구에서 수도 서울을 지키는 최전방 물길의 초소였다. 그러나 남북이 갈라진 뒤로 건너편이 바로 북한인지라, 옛날 번성하던 때 하루면 수백척이 오르내리던 배는 볼 수가 없고, 혹시나 북한측으로 부터 무엇인가 떠내려오지 않을까 감시하는 국군 해병대 초소가 세워져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 지금은 조용히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지만, 얼마전까지는 남북이 험악한 상황이 되었을 때는 북쪽의 대형 스피커에서 기괴한 소음이 하루종일 들려와 주민들이 소음 노이로제를 호소하며 해결책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연미정 정자에서 북쪽을 건너다보면 제비꼬리처럼 보인다고 하여 이름을 연미정이라고 붙였다는 유래를 생각하며 무심한 듯 조용히 흐르는 한강과 임진강물을 살펴 보았다. 그리고 언젠가 또 다시 이곳이 한강을 거슬러 올라 서울로 오르내리는 물길이 열리고, 또 임진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마음 속 어두운 방마다 빛깔 고운 연등 하나 켜지듯 온 누리에 가득한 자비의 등이 켜지길 빕니다 낮은 곳으로 임하신 부처님 발걸음 따라 오늘 전 인류의 가슴 속에 향기로운 연꽃 한 송이 활짝 피어나소서! ---------------------------------------------------------------------------------------- Buddhist Era 2570: The Day a Compassionate Lotus Blooms Photography and Text by Choi Woo-sung As if a beautifully colored lantern is litIn every dark room of the heart,I pray that the lamp of compassionMay shine fully across the whole world. Following the footsteps of the BuddhaWho descended to the lowest places,May a fragrant lotus flowerBloom fully inside the hearts of all h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