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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땅’과 ‘흙’

<우리말은 서럽다> 20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땅’과 ‘흙’을 가려 쓰지 못하고 헷갈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의 뜻을 가려서 이야기해 보라면 망설일 사람이 적지 않을 듯하다. 뜻은 잘 가려 쓸 수 있으면서 그것을 제대로 풀어 이야기하기 어려운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가르칠 수 있을 만큼 아는 사람들이 이런 우리말을 버리고 남의 말을 뽐내며 즐겨 쓰느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다는 사람들이 가르치지 않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배우겠는가? 공부하고 글 읽어 안다는 사람들은 우리말 ‘땅’과 ‘흙’을 버리고 남의 말 ‘토지’니 ‘영토’니 ‘토양’이니, ‘대지’니 하는 것들을 빌어다 쓰면서 새로운 세상이라도 찾은 듯이 우쭐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똑똑하고 환하게 알고 있던 세상을 내버리고, 알 듯 모를 듯 어름어름한 세상으로 끌려 들어간 것일 뿐이었음을 이제라도 깨달아야 한다.

 

‘땅’은 우리가 뿌리내려 살아가는 터전을 뜻한다. 우리는 땅을 닦고 터를 다듬어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며, 땅을 헤집고 논밭을 일구어 먹거리를 얻어서 살아간다. 삶의 터전인 땅에서 온갖 목숨이 태어나고 자라고 꽃피고 열매 맺는다. 세상 온갖 목숨을 낳고 기르는 어머니가 바로 이 ‘땅’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이런 땅을 ‘하늘’의 짝으로 알고 믿으며 살아왔다. 땅과 하늘이 짝을 이루어 모든 목숨을 살리고 다스리는 것으로 믿고 살았다. 이것은 일본서 끌어들인 ‘육지’니 ‘토지’니 ‘영토’니 ‘토양’이니 하는 말들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그런 세상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땅’을 “강이나 바다와 같이 물이 있는 곳을 제외한 지구의 겉면”이라고 풀이한 것은 좁은 뜻일 뿐이다.

 

그리고 땅은 ‘땅덩이’라는 낱말을 거느리고 있다. ‘땅덩이’는 지금 ‘지구’라는 한자말에 짓밟혀 쪽도 못 쓰지만, ‘스스로 빙글빙글 돌면서 여러 벗들과 더불어 해를 가운데 두고 둥글게 달리고 있는 작은 별’을 뜻한다. 땅은 우리네 삶의 터전이지만, 땅덩이는 누리 안에 떠서 도는 먼지같이 작은 별이라는 말이다.

 

‘흙’은 땅을 이루는 여러 가지 가운데서 알짜배기다. ‘흙’은 물과 모래와 자갈과 돌과 바위와 더불어 땅을 이루는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땅에서 나고 자라고 살아가는 온갖 목숨이라는 것들이 사실은 거의 흙에 힘입어 살아가기 때문에 흙을 땅의 알짜배기라 하는 것이다.

 

땅에서도 물을 머금은 흙이야말로 온갖 푸나무(풀과 나무)와 갖가지 벌레와 짐승과 사람의 목숨을 낳아서 기르는 진짜 어머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흙은 애초부터 흙으로 있던 것이 아니라, 햇빛과 물과 바람이 바위와 돌과 자갈과 모래를 더욱 잘게 부수고 게다가 푸나무와 벌레와 짐승과 사람이 삶의 온갖 찌꺼기를 보태서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땅’이나 ‘흙’과 비슷한 낱말에 ‘뭍’도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뭍’을 “지구 표면에서 바다를 뺀 나머지 부분”과 “섬이 아닌 본토”라는 두 가지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이 두 가지 풀이를 하나로 아울러야 ‘뭍’의 뜻으로 올바르다.

 

땅덩이를 덮고 있는 표면(땅낯바닥, 땅갗)에서 바다를 빼면 나머지는 ‘뭍’이 아니라 ‘뭍과 섬’이다. 그러므로 ‘뭍’은 거기서 다시 ‘섬’을 뺀 나머지라 해야 올바르다. 그러니까 바다가 아닌 땅갗에서도 ‘섬’이 아닌 곳만을 ‘뭍’이라 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섬’은 바다에 빙 둘러싸인 곳이므로, ‘뭍’이란 바다에 빙 둘러싸이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뭍’은 바다와 맞서 짝이 되는 낱말이 아니라 ‘섬’과 맞서 짝이 되는 낱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