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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사랑했지만 나라를 망친 공민왕과 노국공주

《칠백 년을 함께한 사랑 – 공민왕과 노국공주》, 권기경ㆍ고정순, 한솔수북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3)

아름답고 똑똑하고 용감한 그 여인한테

공민왕은 첫눈에 푹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여인은 다름 아닌 원나라의 보탑실리 공주.

안타깝게도 공민왕은 고려를 침략한 철천지원수,

원나라의 공주를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과연 이들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요?

 

공민왕과 노국공주.

이들은 부부였다. 그것도 금슬이 아주 좋은 부부. 둘의 사랑은 무척 강력해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았다. 둘의 사랑이 없었다면 고려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공민왕이 오랫동안 선정을 베풀고 조선의 탄생은 영영 없었을 수도 있다.

 

이 책,  권기경ㆍ고정순의 《칠백 년을 함께한 사랑 – 공민왕과 노국공주》는 우리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도 가슴 아픈 이야기인 두 사람의 사랑을 다정한 문체로 들려준다. ‘역사스페셜 작가들이 쓴 이야기 한국사’답게 정보와 재미를 둘 다 잡은 책이다.

 

 

둘은 공민왕이 원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던 때에 혼인했다. 충숙왕의 둘째 왕자, 공민왕은 십 년이 넘게 연경에 볼모로 잡혀 있던 차에 원수의 나라인 몽골 공주와 혼인하고 싶지 않았지만, 원 황실의 부마가 되면 고려의 왕이 될 수 있었기에 혼인 제안을 받아들였다.

 

언제나 운명이 그렇듯, 보탑실리는 우연히 격구 시합 때 자신이 첫눈에 반한 공주였다. 자신이 혼인할 몽골 공주가 보탑실리라는 것을 안 그는 진심으로 기뻤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나라를 빼앗기고 인질로 잡혀 있던 왕자, 그리고 나라를 빼앗은 적국의 공주, 냉정히 말하면 원수지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보탑실리는 원나라 편에 서지 않았다. 남편 공민왕의 편에서 개혁을 지지하고 정치적 동반자가 되었다. 원나라 기황후가 꾸민 흥왕사의 난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공민왕을 보탑실리의 기지로 지켜낸 적도 있었다. 둘은 서로에게 더는 없으면 안 되는 존재,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p.28)

공민왕은 마음을 굳게 먹고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내가 원나라와 싸우면 왕후는 누구 편을 들겠소?”

보탑실리의 낯빛이 금세 굳어졌다. 공민왕은 숨을 죽이고 보탑실리의 대답을 기다렸다.

“저는 칭기즈칸의 후예입니다.”

공민왕의 심장이 쿵 하고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 여인을 죽일 수밖에 없구나.’

공민왕은 안타까운 마음에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때 공민왕의 귀에 씩씩한 보탑실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고려의 왕후입니다!”

공민왕은 눈을 번쩍 떴다. 보탑실리가 공민왕을 바라보며 싱긋 웃고 있었다.

 

서로 지극히 사랑했지만, 둘의 끝은 좋지 않았다. 노국공주가 아이를 낳다가 그만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공민왕은 점점 피폐해졌다. 삶의 의욕을 잃고 정사는 모두 승려 신돈에게 맡겨둔 채 보탑실리와 나란히 묻힐 쌍둥이 무덤을 조성하고 슬퍼하며 지냈다.

 

 

(P.58)

공민왕은 이제 예전의 공민왕이 아니었다. 원나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씩씩한 기운도, 큰 고려를 세우겠다는 마음가짐도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개경 사람들 사이에선 어느새 공민왕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소문이 자자했고, 그에 따라 고려는 천천히 무너져 가고 있었다. 공민왕과 보탑실리의 끝없는 사랑이, 오히려 고려를 끝 모를 벼랑으로 내몰고 있었던 것이다.

보탑실리의 영혼을 만난 때문인지 공민왕은 참으로 오랜만에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그때 차라리 당신을 만나지 말 것을……”

보탑실리는 깊이 잠들어 있는 공민왕을 쓸쓸하게 바라보았다.

 

둘은 차라리 만나지 말았어야 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그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기에, 공민왕이 삶의 의욕을 잃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뒤에 이어진 고려의 운명을 생각하면 둘의 만남은 오히려 ‘잘못된 만남’이었다. 한 나라의 군주라면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도 털고 일어나야 하건만, 공민왕은 그러지 못했다.

 

역대 조선 임금과 왕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종묘에는 특이하게도 공민왕 사당도 있다. 종묘를 지을 때, 공민왕 영정이 어디선가 날아와 그것을 신기하게 여긴 사람들이 영정이 떨어진 자리에 사당을 지었다.

 

이 영정에는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나란히 앉아있다. 생전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여한을 풀 듯, 사이좋은 모습이다. 높고 아름다운 나라, 고려에서 둘은 무척 행복했을 것이다. 공민왕은 비록 망국을 앞당긴 주인공이 됐지만, 그래도 이제는 마음 편히 쉬고 있지 않을까?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보탑실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