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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비목은 증언한다

전쟁에 참여하고 죽은 분들을 위한 DMZ 추모공원을 세우자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53]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동족상잔의 비극을 이 땅에 가져 온 6.25 남북 전쟁이 일어난 지 74년이 되었다. 그 전쟁이 끝나지 않고 휴전 상태에서 남북의 허리가 잘려 서로 여전히 총을 겨누고 있는지도 70년이 넘었다.

 

6.25 전쟁의 총성과 포화가 멈춘 지 12년이 된 1965년 가을밤, 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하고 초급 육군장교가 된 청년은 북한 땅이 내려다보이는 휴전선 GP에서 근무하면서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눈 밑의 골짜기와 저 앞 산등성이는 전쟁 막바지에 가장 처절한 전투가 벌어진 곳. 서로가 고지를 뺏느라 남북 양측의 청년들이 비 오듯 쏟아지는 총탄 속을 뚫고 산비탈을 기어오르던 곳이 아닌가?

 

 

여기저기 터지는 포탄에 바위가 깨져 흙이 되고 그 흙 속에 젊은이들의 피가 흐르고 배어들었던 곳이었는데 밤이 되니 교교한 달빛 속에 저 아래 흐르는 냇물 옆에 작은 노루 한 마리가 물을 마시러 나왔구나. 노루는 여전히 남북의 군사들이 경계근무를 하며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데도 여기서 죽어간 그 많은 영령의 비명과 눈물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물만 마시고 있구나. 그 옆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무심히 피어있고 벌나비눈 그 꽃동산에서 인간들의 슬픈 욕망과 고통과 비탄을 비웃듯이 평화롭게 날아다니고 있구나. 밤하늘에는 청춘의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스러져 간 젊은이들의 슬픈 눈망울이 가득 차 있는 듯하구나.

 

 

낮에 병사들과 함께 군사분계선을 따라 금성천변의 능선 자락을 순찰하였는데 거기에 다 썩어가는 나무 푯대 하나가 나뒹굴고 있었지. 그 옆에는 작은 돌무더기가 있었고. 12년 전 전쟁 막바지 때 옆의 전우가 갑자기 쓰러지자 차마 그냥 두고 나올 수가 없어서 야전삽으로 대충 땅을 파고 주위의 흙을 끌어 올려 덮어주고는 푯대 하나를 꽂아놓았던 것 같구나. 그 전우의 이름도 새기지 못했는데, 무덤 밑의 전우는 이미 흙이 되어버렸구나.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비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해마다 6월이 되어 이 땅을 지키다 숨진 영령들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그 노래 ‘비목’의 노랫말은 이렇게 해서 태어났다. 그때 그 아픔을 노랫말로 써낸 분이 국립국악원장을 지낸 국악인 한명희 씨다. 군대를 나온 뒤 방송국에 들어가 피디를 하면서도 마음에 새겨진 그 비탄과 아픔은 없어지지를 않아 한 편의 시로 살아남았고 그것이 장일남 씨의 곡을 받아 불멸의 노래로 태어난 것이다. 이름하여 ‘비목’이다.​

 

이 노래만큼 우리 민족의 심금을 울린 노래가 또 있을까? 이 노래를 듣고 부를 때마다 민족의 비극, 젊은이들의 한숨과 눈물, 그 유족들의 아픔, 아직도 계속되는 분단과 대치의 암울한 현실이 우리들을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도록 하고 눈가를 축축하게 한다. 우리 마음속의 거문고 줄이 저절로 울려 슬픈 소리를 내며 우는 것 같다.

 

 

한명희 님은 작사가도 작곡가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노랫말을 토해 냈을까? 대학 초년생이던 1960년 당시 서울음대 학장이며 작곡가였던 현제명 선생이 돌아가셔서 영결식이 거행될 때 누군가가 고인의 작품인 <고향생각>이란 노래를 조가(弔歌)로 부르자 장중이 울음바다로 변했다는데, 그때 충격과 감동이 그에게 평생 멋진 노랫말을 하나 만들어 놓겠다는 결심으로 맺어졌다고 한다.

 

우리들이 영원히 기억할 노래는 그 순간의 감동이 불을 당긴 것이다. 한명희 님이 가졌던 그때 감동의 기억은 서울시립대학 교수, 국립국악원장을 거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과 부원장을 거치는 긴 세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악인으로서 빛나는 활동을 하면서도 더 진해져서, 전쟁의 참화를 다시 겪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작업에 평생 심혈을 기울이도록 했다.

 

 

 

국악인 한명희 님에게 DMZ는 그런 비목이 남아있던 곳이었고 동시에 우리 민족의 아픔의 상징이자 그 아픔을 극복해야 할 공간이었다. 이 DMZ가 비목으로 대변된 민족의 비극을 극복하고 남북이 평화로운 하나로 되어 대한민국 국운 창성의 현장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염원이 계속 살아서 알알이 영글어왔다.

 

새들의 낙원 DMZ에 녹음이 짙어지면

날짐승들 편편 날아 장기자랑 펼치는데

고향소식 전갈하는 산까치에 산제비들

호국원혼 달래주는 쑥국새에 두견새라

머루랑 다래 익는 벽산이 온통 법석일세

                                           ... 3편 「상좌다툼」

 

애당초 부질없는 짓들이랑 하지 말자고

금단의 줄 철조망은 미리 말을 했지요

하지만 몽매한 저 자들이 알 리 있나요

산하의 한 허리가 두 동강 난 후에야

피 묻은 후회만이 허공에 나부낌을

                                       ... 9편 「녹슨 철조망」

 

 

한명희 소위가 휴전선 DMZ에서 그러한 귀한 경험을 함으로써 민족의 가슴에 불을 당긴 지도 내년이면 60년이다. 한명희 님은 그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가슴 속에 담고 키워온 감동과 감상과 염원을 14편의 시로 다시 거르고 응축해서 토해 내었다. 전쟁 이후 아무도 훼방하지 않은 순수한 자연, 금단의 땅이 된 DMZ가 여전히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를 하나하나 짚어보았다.

 

그러한 마음 하나하나 장면 하나하나를 회상할 때마다 원로 미술가인 이동표 님이 얽히고 꼬인 수많은 감성을 추려서 펜으로 붓으로 그려내었다. 전쟁의 아픔을 상징하는 어두운색이 배경이 되었다가 새로운 생명의 색이 나타난다. 과거의 아픈 기억과 상념들이 없어지지 않는 가운데 나무꾼이 내려오던 곳, 궁노루가 물가를 찾던 곳, 녹슨 철조망이 되살아나고 땅에 묻힌 백골들이 자신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치기도 한다. DMZ의 흙 한 줌 나무 하나에 그런 아픔과 염원이 담겨있는 것이다.

 

 

그 땅이 이제는 세계인들에게도 교훈의 장이 되고 있다. 우리들은 그 아픔을 이기고 당당히 세계 속으로 일어서 떨쳐나갔다. 그러기에 이런 우리만의 경험을 우리만이 아니라 세계인들이 보라고 영어와 일본어와 중국어로 번역해서 같이 실었다. 국제 시화집인 것이다.

 

6.25 전쟁, 우리 땅에서 벌어진 동족끼리의 전장(戰場)에서 60년을 넘게 이어져 오며 세계에 그 아픔을 전하는 불멸의 노래인 「비목(碑木)」, 그 속에 담긴 민족의 아픔과 극복의 연작시집 이름은 이랬다.

 

 

6.25전쟁에서 조국을 지키다 산화한 국군 용사의 유해가 73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왔으나 숨진 형의 유해라도 찾고 싶어 평생을 기다린 동생은 4년 전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사연이 최근 전해졌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2000년 강원 화천군 상서면 일대에서 수습된 6.25전쟁 전사자 유해 신원이 ‘저격능선 전투’에서 전사한 김동식 육군 이등중사(현재 병장 계급)라고 확인했다.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1951년 5월 19살 나이로 입대해 국군 2사단 17연대 소속으로 DMZ일대의 치열한 전투에 다수 참전하다가 1952년 10월 27일 ‘저격능선 전투’에서 20살의 나이로 전사했다.

 

그 유해가 2000년 9월 확인됐고 고인 유해를 발굴했지만, 신원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데 2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 철책선에는 그런 많은 유골이 지금도 묻혀 있을 것이다. 우리의 DMZ의 아픔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런 유골들을 찾아내어 신원을 확인해 주어야 함은 물론, 이 DMZ에, 전쟁에 참여하고 죽은 분들을 위한 번듯한 추모공원이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비목 노래를 작사한 한명희 선생의 마지막 소원이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