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합천하면 먼저 떠오르는 절, 해인사가 있지만 예전에는 그에 못지 않은 많은 절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오늘은 영암사터를 찾아본다. 합천 영암사는 절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황매산의 신령스러운 영험한 바위가 있고, 그 바위 아래 절을 지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가꾸어오던 절은 언제인지 모르게 퇴락하였고, 지금은 절안에 돌로된 기단과 석축과 삼층석탑과 귀한 모습의 쌍사자석등 등 돌로된 유물들만 남겨놓은 채 사라지고 말았다.
영암사의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고 있어 그 창건 연대도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 국사로 추앙 받던 한 스님의 탑비의 탁본으로 적연국사라는 스님이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 적연국사가 고려 현종 5년(1014) 83살로 입적하여 영암사 서본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현재 영암사에는 당시에 적연국사의 비를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귀부만 남고, 비신조차 남아있지 않지만, 적연국사의 부도가 영암사에서 1.5km 지점의 산 중턱에 현존하고 있어 비문의 내용을 그나마 알수 있다.
영암사터는 영암(영험스러운 바위)인 황매산 바위산 아래 자리잡고 있는데, 지형이 평탄치 못하여 금당을 세운 곳에도 높이가 3m 이상의 석축 기단을 다듬은 돌로 쌓아 올려 만든 대지 위에 금당을 지었다. 금당 아래 마련한 넓은 마당 또한 그 마당의 경계는 큰 장대석(길이가 긴 다듬은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서 쌓아 올렸다. 영암사는 평지가 아닌 산지에 세운 절인 까닭에 건물을 짓는 것보다는 대지를 마련하는데 오히려 정성이 더 많이 들어간 절로 보인다.
건물은 사라졌지만, 현재 남아있는 영암사 석축과 기단과 삼층석탑과 쌍사자석등은 현존하는 한국의 그 어떤 절 석조물에도 뒤지지 않는 정성과 미학적으로 빼어난 형상을 갖추고 있다. 특히 금당 앞에 세워진 쌍사자석등은 그 모습도 거의 온전하며, 조형감각과 비례감이 가장 훌륭한 석조물임에 틀림없다. 국내 쌍사자석등 가운데 이와 가장 흡사한 석등으로는 보은 법주사의 쌍사자석등이 있다.
영암사터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석조물은 쌍사자석등의 바로 뒤에 세워진 영암사 금당 기단의 면석에 새겨진 상서로운 동물상들이다. 이 동물들은 매우 입체적인 모습이면서 생동감있는 동적인 모습으로, 금당의 주변을 주시하고 있다. 마치 부처님 주변에 잡된 기운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주변을 경계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도록 의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 때 번성했던 영암사터, 귀하게 다듬어 쌓은 석축들과 석탑과 석등 등 귀한 선조들의 유물을 돌아보면서, 황매산의 신령스러운 기운이 다시금 발산하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