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과 국가유산진흥원(원장 이귀영)은 국비지원 발굴조사를 진행 중인 ‘경주 망성리 384번지 유적’의 기와 가마터에서 ‘황룡(皇龍)’ 글자가 새겨진 기와를 발견했다. ‘황룡 글씨 기와’가 출토된 기와 가마터는 황룡사지에서 남서쪽으로 7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대부분의 가마는 소성실과 아궁이 일부만 남아있으나, 좁은 면적(512㎡)에 가마 13기(基)가 중첩되어 분포해 있다. 가마 안에서 다량의 기와 조각과 기와를 겹겹이 쌓은 흔적이 남아있어 당시 기와를 대량 생산하던 곳으로 판단된다.
이번에 출토된 ‘황룡(皇龍) 글씨 기와’는 길이 17㎝, 너비 15㎝ 정도의 작은 암키와 조각이다. 세로선 사이에 예서(隸書)*풍의 ‘황룡’ 글자가 좌서양각(左書陽刻)***되어 있다. 이 글자 형태는 황룡사 남문터 동편 건물터와 강당터 북동편지구 출토품,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품 등과 동일하다.
* 예서(隸書): 중국 진(秦)의 공식 서체인 전서(篆書)의 자획을 간략화하고 글꼴을 반듯하게 만들어 일상적으로 쓰기 편하게 한 서체로 한(漢) 대 유행한 서체.
** 좌서양각(左書陽刻): 오른쪽과 왼쪽이 바뀌어 있는 글씨가 돋을새김 되게 표현되어 있으며, 글씨가 음각된 두드림판으로 찍어 만듦.



그동안 “황룡” 글씨 기와는 황룡사터 등에서 여러 형태가 출토된 적이 있으나, 이번처럼 기와 공급지인 가마터에서 출토된 것은 처음이다. 이는 해당 기와가 고려시대 경주 황룡사에 실제로 공급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 발굴조사로 문자기와 말고도, 주변 가마 내부에서 대형 일휘문(日輝文)*** 암막새(길이 38.7×너비 9.1㎝), 수막새(직경 20㎝), 대형 암ㆍ수키와(길이 45.5~46.5㎝)도 함께 출토되었다. 이와 같은 대형 기와들은 황룡사터에서도 출토된 적이 있다.
*** 일휘문(日輝文): 귀목문(鬼目文)이라고도 부르며, 중앙부에 원형 돌기와 주변의 원권을 두른 형태의 무늬. 일휘문 막새는 11세기 중기 출현하여 13세기 중기까지 유행함.
황룡 글씨 기와는 글자 주변에 테두리가 없이 무늬와 글씨만 있는 형태이며, 10세기 후기부터 13세기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함께 출토된 일휘문 막새류도 고려 중기 이후 유행하던 양식이다. 이는 《고려사》 예종 원년(1106년) 황룡사 중건 기록****과도 일치하여, 이 가마터가 고려시대 황룡사의 수리와 보수에 쓰인 기와의 주요 생산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 《고려사》 세가 권제12(『高麗史』 世家 卷第十二), 1106년 황룡사 수리 뒤 상서 김한충을 보내 낙성식(落成式: 건축물의 완공을 축하하는 의식)을 거행했다는 중건(重建: 절이나 왕궁을 보수하거나 고쳐 지음) 기록이 확인됨(1012년, 1095년에는 불에 탄 황룡사탑을 수리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음).




망성리 일대 가마터는 통일신라시대에도 궁궐, 황룡사, 사천왕사 등에 기와를 공급했던 곳으로 추정됐다. 이번 유적은 고려시대까지 그 명맥이 이어져 왔음을 보여주며, 당시 기와 공급 체계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편, 국가유산진흥원은 2010년부터 복권기금 지원으로 국가유산청의 국비지원 발굴조사를 전담하여 수행하고 있다. 국비지원 발굴조사는 특정 면적 이하의 건축행위에 앞서 매장유산 조사를 할 경우 국가가 경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금까지 5,500여 건 이상의 발굴조사를 진행하며, 국비지원 발굴조사 전문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가유산진흥원에서는 오는 6월 18일(수) 낮 2시, 망성리 유적에서 현장 설명회를 열고 이번 유물 출토 성과를 일반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발굴조사와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국가유산진흥원 매장유산국비발굴단(054-760-8410)으로 문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