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현명 칼럼니스트]
2022년 3월 10일, 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하루였다. 반대로, 2025년 6월 4일은 가장 기쁜 날로 기억될 것이다. 지난 3년 3개월 동안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견디기 힘들었을 때를 지나왔을 것이다. 그 고통의 시간은, 나에게 있어선 정말로 "역사적인" 시간이기도 했다.
2022년 대선을 지켜보며 나는 확신했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면 이 나라는 망할 것이고,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 나라는 살아날 것이라고. 그래서 윤석열의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후 현실은 내 예감이 빗나가지 않았음을 날마다 확인시켜 주었다.
더욱 괴로웠던 건, 나라가 무너져 가는 상황 속에서도 많은 언론과 기득권, 그리고 배운 사람들이 침묵하거나 오히려 옹호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질수록 내 고통은 더 깊어졌다.
그렇게 새해를 맞이한 2024년 1월 1일. 지인 몇 명과 남산에 올라 해돋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올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떤 사자성어가 좋을까?”
해돋이를 본 뒤, 우리는 옥수역 1번 출구 근처의 미타사를 찾았다. 이 절은 신라 진성여왕 2년(888년)에 창건되었고, 고려 예종 10년(1115년)에는 지금의 옥수동으로 이전하여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을 세웠다. 이때 ‘미타사’라는 이름을 하사받은 유서 깊은 비구니 절이다.
이어서 우리는 3번 출구 쪽으로 내려와 기해동정 기념비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 기념비는 세종 1년(1419년), 이종무가 이끄는 제3차 대마도 정벌 출정식을 기념하여 2020년에 세워진 것이다.
‘기해동정(己亥東征)’—기해년에 동쪽의 대마도를 정벌한다는 뜻.

우리는 그 자리에서 외쳤다.
“올해는 갑진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갑진용정(甲辰龍征)**이닷!”
곧, ‘갑진년이 끝나기 전에, 용산을 정벌하자!’는 뜻이었다.
그때는 단지 바람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아미타불이 미래의 해탈과 구원을 의미하듯, 그날 절에서 사자성어를 정한 것도 단순한 우연만은 아니었는지 모른다.
그 뒤로도 나는 희망을 품었다.
몇 달 뒤, 다른 지인들과 식사 자리에서 이런 내기를 걸었다.
“2024년 안에 윤석열 정권이 끝나면 내가 100달러 받고, 아니면 내가 낼게.”
시간이 흘러 11월 말, 지인들은 슬슬 웃으며 말했다.
“이제 100달러는 우리가 받게 생겼네.”
그땐 나도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2024년 12월 3일, 친위쿠데타 시도가 좌절되며 윤석열 대통령이 12.14 국회의 탄핵으로 결국 물러난 것이다. 나는 내기에 이겼고, 그날 새벽 남산에서 외친 갑진용정의 뜻은 현실이 되었다.
그 기세를 몰아, 2025년 1월 1일 새벽에도 우리는 다시 남산에 올랐다.
“올해는 어떤 사자성어가 좋을까?”
올해는 을사년. 그런데 ‘을사’ 하면 떠오르는 게 있으니, 1905년의 을사늑약. 왠지 찜찜한 기억이다.
그래서 발상을 전환했다.
“‘을사’는 ‘으쌰으쌰’로 읽자! 다 함께 힘을 내는 소리처럼 말이야.”

그렇게 탄생한 사자성어는 을사대명(乙巳大明).
‘을사년에 대한민국(大)이 크게 밝아진다(明)’는 뜻이자,
‘대통령(大)은 이재명(明)이 되는 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았다.
한 지인은 웃으며 덧붙였다.
“대운(大)이 김현명(明)에게 찾아오는 해라는 뜻도 되겠네요!”
그 말에 다 함께 웃음꽃이 피었다.
그리고 마침내 2025년 6월 3일, 대선이 치러졌고
다음 날, 6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했다.
그 순간, 우리 모두의 가슴에 을사대명이 실현된 것이다.
이제 나는 바란다.
이재명 대통령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그리고 내 인생의 사자성어가 을사대명인 것처럼,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사자성어도 을사대명,
대한민국 역사의 사자성어도 을사대명이 되기를.
으쌰으쌰! 을사대명!
글쓴이 김현명
성신여자대학교 석좌교수
전 주로스앤젤레스대한민국총영사관 총영사
저서 《이라크 전쟁 30년 재건 3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