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환 한글철학연구소장] 구한 말 ‘한자-한문 폐지론’이 힘을 얻어갈 때, 그에 대한 중요한 반발의 큰 줄기 하나는 글이 도(유교)를 담고 있다는 사상이었다. 따라서 유교 교양을 가진 선비들은 한자-한문 폐지를 곧 유교윤리 철폐로 인식하였다. 대동학회의 여규형이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한자라는 기표와 유교라는 기의가 단단하게 맺어져 떼어서 생각할 수 없었다. 한자-한문 폐지와 신식 교육의 도입, 유교적 인재를 선발하던 과거제도 폐지가 동전의 앞뒷면처럼 연관이 있었다. 그렇지만 서양 사람이 세운 배재학당에서도 한문은 주요 교과목이었다. 어쨌든 한문만 배우던 서당 교육에서 보면 큰 변화였다. ‘한자 폐지-한글로만 쓰기’ 운동의 주역이었던 외솔 최현배는 유학을 어떻게 보았을까? 1922년에 <동아일보>에 연재한 “우리말과 글에 대하야”에 유교와 한자에 대한 비판적 생각이 드러나 있다. “(땅이름 등을 모두 중국식으로 바꾸고, ‘아버지’를 ‘부친, 춘부장’ 식으로 바꾸어) 무슨 말이든지 한어로 하면 점잖게 보이고 우리말로 하면 상되게 보인다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나쁘고 남은 훌륭하다 하여 될 수 있는 대로 저는
[우리문화신문=김영환 한글철학연구소장] 한겨레신문 지난 6월 22일 치에는 한겨레말글연구소 김진해 연구위원(경희대 교수)의 “한글의 역설”이란 글이 실렸다. 우리말에 영어가 많이 섞여 있게 된 것이 사대주의 때문이 아니고 한글 탓이라는 주장이다. 한글은 소리만 본뜰 뿐 뜻을 담지 않아 몸놀림이 가벼워 들리는 대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망설임 없이 적는데 한자는 뜻이 소리와 함께 있어서 매번 소리로 적을지, 뜻으로 적을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으로 진단하였다. ‘电视’(텔레비전=전기+보다), ‘电脑(’(컴퓨터=전기+뇌), ‘电影’(영화=전기+그림자), ‘手机(’(핸드폰=손+기계)을 보기로 들었다. 한글만으로는 문제가 많고 한자를 써야 영어를 막을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조선의 선비들은 빼어난 글자인 한글을 ‘언문’, ‘암클’이라 얕보고 중국 글자를 떠받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15세기부터 한글이 여러 분야에서 널리 쓰였을 것이다. 19세기 말까지 한글은 소설이나 편지 같은 사적 영역의 문서에서나 쓰였다. 한문을 잘하면 과거를 통하여 출셋길이 훤하게 열렸다. 학문이나 교육이 한문 경전을 읽고 풀이하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과거 답안을 한문으로 제출해야만 했다
[우리문화신문=김영환 교수] 한겨레신문이 연재하는 김진해 님의 글 <말글살이>(6월29일 치, ‘말을 고치려면’)는 나를 놀라게 하였다. ‘언어는 퇴행하지 않고 달라질 뿐, 걱정도 개입도 말라’는 내용이었다. 말에 대한 최종 책임은 ‘사회적 개인’의 몫이며 국가는 개인의 말에 대해 ‘맞고 틀림’을 판정할 권한이 없다고 했다. ‘말의 발산과 수렴’의 장마당(언어시장)이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민간 자율을 내세워 정부가 경제정책에 개입하는 것을 금기로 아는 하이에크류의 신자유주의를 언어 영역에까지 적용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외국 이론을 들여와 기계적으로 적용하려는 시도는 우리가 한두 번 보는 게 아니다. 동시에 말글이 갖는 역사성과 문화성을 부정한 이론이다. 김진해 님의 주장은 신자유주의처럼 시장(선)-국가(악)이란 이분법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조는, 경제학뿐만 아니라 언어학에서도, 한때 유행하다가 지금은 잊힌 이론이다. “‘쉬운’ 한국어는 단어가 아닌 글쓰기나 말하기 역량의 문제이다.”라고 하였으나 쉬운 말은 우선은 낱말의 문제다. “異民族箝制의痛苦를嘗한지今에十年을過한지라.”보다 “다른 민족에게 억눌리는 고통을 받은 지 십 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