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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보 500호 발간에 거는 기대

엄혹한 진단과 비판 더 나아가 발전을 향한 도전 정신이 필요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얼마 전 광복회로부터 한 장의 초대장을 받았다. 초대장 내용은 <광복회보 500호 발간 기념식>을 ‘2025년 6월 12일(목) 11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의정홀’에서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날은 마침 일이 있어 부득이 참석이 어려웠지만 나는 내심 마음속으로 ‘크고 아름다운 꽃다발’ 하나를 보냈다. 당일 행사에 가지 못하고 있던 차 행사에 직접 참석했던 지인으로부터 사진 몇 장과 ‘광복회보 500주년 관련 내용’을 전해 받았다. 읽어 보니 광복회보 500회의 의미가 간략히 적혀있었다.

 

요약해보자면, “《광복회보》는 기본적으로 독립운동 선열과 그 후손으로 구성된 광복회원들의 소식지로써 선열들의 얼과 정신 및 험난한 여정 그리고 회원들의 소식과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대일항전의 유산인 광복회의 정신과 실천의 기록으로 1969년 창간 이래 선열들의 독립운동 정신을 구현해 오면서 친일잔재 청산 및 역사왜곡과 정체성의 훼손을 최전선에서 꾸짖고 민족정기 선양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국내 17개 보훈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발간되고 있는 <회보>로써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켜냈으며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한 위대한 기록문화유산이라고도 자평합니다.”와 같은 내용이었다.

 

 

《광복회보》가 회원들의 소식지라고는 하지만 <지령 500호>를 맞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고개가 수그러든다. 광복회 설립(1965) 4년 뒤인 1969년에 《광복회보》가  창간되었으니 사람의 나이로 따져보면 56살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발간하고 있으니 56년 곱하기 12달이면 672회를 맞이해야 하는데 이번에 <광복회보 500호>라고 하니 그간의 신산(辛酸, 세상살이가 힘들고 고생스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필자, 2015년 2월호(377호)부터 《광복회보》와 인연 맺어

 

사실, 《광복회보》와 필자의 인연은 깊다. 그래서 이번 500호 기념식이 더욱 뜻깊게 다가왔다. 필자는 2015년 2월호(377호)부터 《광복회보》와 인연을 맺어왔다. 《광복회보》 맨 마지막 쪽수에 필자의 시 1편씩이 실려 왔었다. 필자의 시 꼭지 이름은 ‘시로 읽는 여성독립운동가 <서간도에 들꽃 피다>’였고 1회째의 시는 "겨레의 큰 스승, 백범 김구 길러낸 억척 어머니 ‘곽낙원’ 지사"에 관한 시였다. 그림은 이무성 화백의 작품이 함께 실렸다.

 

필자는 여성독립운동가를 소개하는 대중적인 책이 없음을 알고 2009년부터 시로 읽는 여성독립운동가 《서간도에 들꽃 피다》 1권을 시작하여 2019년에 모두 10권의 책으로 펴낸 바 있다. 1권당 20명의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헌시(獻詩)와 간략한 독립운동 공적을 적은 책으로 200명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수록했다. 책 이야기를 하려고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인연으로 필자는 《광복회보》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사랑하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광복회보가 배달되기를 기다려 1면부터 마지막 면까지 꼼꼼하게 읽어 내려가면서 한 달 동안 일어난 “광복회 소식 및 회원들의 활동, 더 나아가 독립운동과 관련된 모든 내용”을 짚어 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다가 맞이한 발간 500호는 그래서 더욱 반갑고 기대되었다.

 

내가 인연을 맺게 된 377호(2015년 2월) 때보다는 갈수록 내용이 알차다는 느낌도 받았다. 물론 소식지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부분은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그것은 처음 필자가 인연을 맺었던 2015년 2월호(377호) 무렵부터 꽤 꼼꼼히 읽어 온 가운데 느낀 점이다. 그러나 처음과 달리 필자는 차츰차츰 배달되어오는 《광복회보》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그 까닭은 <광복회원을 위한 그들만의 소식지>라는 생각이 진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용 가운데는 독립운동과 관련된 역사적인 속 깊은 내용물도 적진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간 것은 아니다.

 

이번 <500호> 특집 축하 인사말이 실린 각계각층의 인물들을 보고 있자니 “과연 이분들이 《광복회보》를 평소 알았을까?” 싶다. 천편일률적인 인사말 내용은 “올해는 광복 80주년과 광복회 창립 60주년이 되는 매우 뜻깊은 해다. 《광복회보》 지령 500호를 맞이하여 발전을 빈다."로 점철되어 있다.

 

 

평범한 회원들의 목소리는 필수

‘독립현장 견학 답사기’ 응모와 시상도

 

아쉬운 것은 이번 500호 특집호에 꼭 실려야 할 평범한 회원들의 목소리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이건 평소에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 회보가 ‘회원들을 위한 회보’라고 할 수 있을까? 500호를 맞이하면서 겪었을 법한 여러 가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정말 없었을까? 앞으로 600호, 1000호를 바라보며 하고 싶은 말은 없었을까? 일방적인 광복회 주도의 소식지에 불과하지 않다면, 매호 회원들의 ‘ 생생한 목소리’는 필수라고 생각한다.

 

“어디 어디 지부에서 중국의 어디 어디 유적지 답사가 있었다.” "어디 어디 지부에서 국내 어디 어디 독립 유적지를 답사했다.”와 같은 유적지 답사 이야기는 해마다 늘고 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니만치 선조들이 활약한 독립현장 견학은 늘어나는 게 당연한 일이며 권장할 일이다. 아쉬운 것은 '현장답사를 인증하는 듯한 화려한 펼침막(현수막)을 내걸고 찍은 사진과 6하원칙에 입각한 간략한 단신(短信)'이 고작이라는 점이다. 이 단신이 하드웨어라면 그 답사에 참석한 회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소프트웨어일 것이다.

 

제언하건대 답사를 주관한 주최 측(본회든 지부든)은 답사를 다녀온 뒤 회원들로부터 답사기를 받아 가장 잘된 답사기를 쓴 사람에게 상금을 준다든지 하고 그 내용은 《광복회보》에 투고하여 독자들이 읽게 해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그렇게 모여진 원고는 광복회에서 '회원 답사기 1,2,3...' 식으로 책으로 묶어내는 것도 기록차원에서 의미 있을 것이다. 《광복회보》 독자로서 숱한 답사소식을 접하지만 거기서 무얼 보고 느꼈는지를 들려주는 글을 본 적이 없기에 하는 말이다. 답사기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회원 참여의 마당을 말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광복회보》 독자는 유족뿐만이 아니라 유족의 지인들, 그 지인들의 지인들 더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미래는 소프트웨어 시대다. 아니 이미 그런 시대에 들어선 지 한참 되었다. 감히 조언해 보건대 인터넷이나 슬기말틀(스마트폰) 같은 문명의 기기가 나오기 전 오로지 한 달에 한 번 배달되는 종이 회보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서야 어찌 미래시대를 위한 회보가 될 수 있을는지 우려스럽다.

 

눈을 돌려 일반회사의 《회보》를 살펴보라. 이들 회사의 회보는 과거의 단순 소식지를 벗어나 완전히 전문화하여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문화저널이요, 회사의 홍보지이자, 더 나아가서는 한국의 종합적인 문화소식지로 자리 잡아 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어려운 여건하에서 500호를 이끌어낸 《광복회보》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또한 단순한 시중에 나오는 회보가 아니라 '조국광복을 위한 선열들의 얼과 정신을 이어가는 특수회보'라는 것도 안다. 혹자는 필자가 말하는 그런 회보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수한 편집진과 예산'이 필요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런 말을 하는 것은 501호부터는 무엇인가 획기적으로 달라졌으면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광복회는 "《광복회보》가 국내 17개 보훈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발간되고 있는 <회보>"라고 했다. 그러기에 더더욱 <광복회보>의 변신이 필요하다.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광복회보》를 통해 희미해져 가는 독립정신도 드높이면서 광복회가 추진하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펼쳐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니던가 말이다.

 

이번 500호 특집에서 이종찬 회장은 1면을 할애하여 "이제는 국가를 위해 선열 닮은 후손 키울 때 -대한민국 정체성 지켜온 위대한 K-문화국가 기록유산 500호-' 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제목 그대로 '위대한 기록유산'이 되려면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에 신경을 써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단순한 소식지' 가지고서는 기록물의 가치는 있을지 모르지만 '위대한 기록유산'은 되기 어렵다고 본다.

 

필자는 이종찬 회장의 '기록유산 500호'에 거는 기대감을 전폭 지지한다. 이에 더하는 바람은 "국내 17개 보훈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발간되고 있는 <광복회보>답게 앞으로는 17개 단체의 이야기와 회원들의 목소리도 담아내 주었으면 한다. 유일하다는 것은 혼자 독보성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회보조차 낼 수 없는 각 단체의 목소리도 담아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일" 일 것이다.

 

아울러, 손쉬운 부탁 하나를 더 이야기하고 글을 맺고자 한다. 광복회 누리집에 있는 <광복회보> 란을 보면 2005년 1월 것부터 실려있는데, 이를 1969년 창간호부터 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2005년 것부터 실려있다. (2004년 이전 것은 차후 올린다든지 하는 안내문도 없다) 또한 기왕이면 기사를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검색어 하나로 기사를 찾을 수 없다면 누가 일일이 해당 연도, 해당 월로 들어가 기사를 검색한단 말인가!

 

미사여구, 자화자찬의 시대는 지났다. 500회든 1,000회든 목표를 설정하고 가열차게 나아가는 길에는 '엄혹한 진단과 비판 더 나아가 발전을 향한 도전 정신'만이 필요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항상 '광복회원(후손 포함)'이 주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