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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강원도에는 어떤 위인들이 살았을까?

《알려줘 강원도 위인!》, 글 강로사, 그림 윤정미ㆍ이해정, 지학사아르볼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우리 고장.

참 정겨운 단어다. 내가 살고있는 고장의 역사를 아는 것은 지역에 대한 애착과 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까지 높이는 길이다. 길 가다 무심코 지나친 비석이 어떤 것이었는지, 소풍 때 갔던 초가집이 어떤 곳이었는지 알고 나면 한층 더 정감있게 느껴진다.

 

이 책, 《알려줘 강원도 위인!》은 강원도 지역의 위인 열두 명을 다루고 있다. ‘알려줘 위인!’은 사회 교과를 처음 배우는 초등학생들의 학습을 돕기 위한 지역 위인전 시리즈로,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등 지역별로 다양한 종류가 출간되었다.

 

 

강원도는 고조선 시대에는 예맥족이 살았고, 예맥족이 세운 나라가 ‘동예’와 ‘옥저’였다. 광개토대왕 때 고구려에 정복되었고, 신라 진흥왕 때부터는 신라 땅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을 대표하는 도시였던 강릉과 원주의 머리글자를 따서 ‘강원도’라 부르기 시작했다.

 

책에 실린 이사부, 의상, 원천석, 신사임당, 허균, 임윤지당, 윤희순, 남궁억, 한용운, 이효석, 김유정, 박수근 가운데 잘 알려진 인물도 있지만, 거의 처음 들어봤을 법한 인물도 있다. 특히 원천석과 윤희순은 모두에게 생소할 듯하다.

 

운곡 원천석은 원주 지역의 위인이다. 고려 시대 과거에 합격했지만, 벼슬살이를 오래 하지 않고 치악산에 머물렀다. 그는 고려 말, 훗날 조선을 개국하는 태종 이방원이 각림사에 머물며 공부할 때 가르친 스승이기도 했다.

 

임금이 된 태종은 여러 번 스승 원천석을 조정으로 불러들였으나 그때마다 거절했고, 태종이 직접 찾아갔을 때도 자리를 피하며 만나주지 않았다. 둘은 태종이 왕위에서 물러난 뒤에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원천석은 고려 말기의 역사를 글로 남긴 모듀 6권의 《야사》를 썼다. 한 나라를 새로 열 때는 기존에 있던 나라의 역사가 폄하되기도, 조작되기도 한다는 점을 알고 후손들에게 자신이 본 진짜 역사를 전하기 위해 쓴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책이 세상에 알려지면 가문이 위험해질 것을 염려한 후손들이 책을 불태워버려 오늘날에는 전하지 않는다.

 

그는 무려 천 편이 넘는 시를 짓기도 했다. 원천석의 시를 모은 책 《운곡시사》는 1351년부터 1394년까지 있었던 일을 역사시로 담아내고 있다.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은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쓰이고 있다.

 

(p.36)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

오백 년 왕업이 목적에 부쳐시니

석양에 지나는 나그네가 눈물겨워 하더라

 

고려의 궁궐터에 가을 풀만 우거져 있는 것을 슬퍼하는 나그네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 시를 지은 원천석은 힘든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고려를 향한 충심을 놓지 않았다. 추위에도 홀로 절개를 지키는 푸른 대나무의 모습을 표현한 시를 짓기도 했다.

 

(p.36)

눈 맞아 휘어진 대를 뉘라셔 굽다턴고

구블 절(節)이면 눈 속에 프를소냐

아마도 세한고절(歲寒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한편, 춘천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병장인 윤희순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윤희순은 남편과 조카, 시아버지까지 의병으로 활약한 ‘의병 집안’의 며느리였다. 경기도 구리에서 태어나 열여섯에 혼인하고 춘천에서 살기 시작했다.

 

시아버지 유홍석과, 유홍석의 친척인 유인석이 의병장으로 활동하자 윤희순은 곳간을 털어 의병활동을 도왔다. 1907년, 일본이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조선 군인들을 해산시키자 시아버지 유홍석은 춘천에서 600여 명의 사람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다.

 

윤희순은 고흥 유씨 집안의 부인들과 마을 여자들에게 돈을 모았고, 의병 활동에 쓰일 화약을 만드는 것도 도왔다. 여성 의병 30명을 모아 ‘안사람 의병단’을 만들고, <안사람 의병가>를 비롯해 8편의 의병가를 직접 지었다. 남편 유제원도 아내의 활동을 적극 지원했다.

 

(p.69) <안사람 의병가>

우리나라 의병들은 나라 찾기 힘쓰는데

우리들은 무얼 할까 의병들을 도와주세

내 집 없는 의병대들 뒷바라지하여 보세

우리들도 뭉쳐지면 나라 찾기 운동이요

왜놈들을 잡는 것이니 의복 버선 손질하여 만져 주세

의병들이 오시거든 따뜻하게 만져 주세

우리 조선 아낙네들도 나라 없이 어이 살며

힘을 모아 도와주세 만세 만세 만만세요 우리 의병 만세로다

 

나라를 완전히 빼앗긴 1910년 이후에는 온 가족이 함께 중국으로 넘어가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아들 유돈상도 대한 독립단에 들어가 활동하고, 시아버지 유홍석도 만주로 같이 건너가 나라를 위해 싸웠다.

 

윤희순은 아직 여자의 사회 활동이 활발하지 않던 시기, 8편의 의병가를 직접 짓고 여성 의병단을 만들 정도로 기개 있고 용감한 인물이었다.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들의 뒤편에는 그들을 헌신적으로 도왔던 여성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윤희순은 직접 의병이 될 정도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더욱 돋보인다.

 

우리 고장의 위인들을 한 명 한 명, 알아가다 보면 그들이 쏟았던 열정과 헌신이 역사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알 수 있다. 결국 역사가 사람이 엮어나간 씨줄과 날줄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 고장의 위인을 아는 것이 곧 지역의 역사를 알고, 나아가 우리 역사 전체를 알아가는 밑거름이 된다.

 

초등학생의 학습을 돕기 위한 책이지만, 성인이 읽어도 흥미롭고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이 많다. 강원도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편도 모두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자연 좋고, 사람 좋은 강원도의 인물과 역사를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