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잃었던 나라를 되찾자마자 최현배 스승님과 여러 학자분들이 꿈꿨던 '말의 민주화'는 왜 여든 해가 지난 오늘까지 끝내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을까요? 그 까닭은 바로 우리말글 정책을 맡아 떠받들고 있는 틀인 '국립국어원'과 '국어기본법'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말이 나아갈 길을 길잡이해 주어야 할 나침반은 방향을 잃었고, 우리말의 헌법이라 할 법률은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길 잃은 나침반, 국립국어원
1. 맡은 일과 실제 모습의 다름
국립국어원 누리집에 들어가 보면, 국립국어원은 우리말과 글의 발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일을 맡고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만들고, 표준어와 맞춤법 같은 글쓰기 규칙을 정하며, 국민들의 국어 실력을 높이기 위한 교육 방법을 개발하고, 다른 나라에 한국어를 널리 알리는 등 나라의 말글 정책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일을 맡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나날살이에서 보고 느끼는 국립국어원의 모습은 '언어의 민주화'와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말글살이에 바로 영향을 미치는 고갱이 일(핵심 사업)들에서 국립국어원이 나아가는 방향과 한계가 뚜렷이 드러납니다.

2. 태어날 때부터 지닌 한계: '특정 학교'의 그늘
국립국어원은 1991년 서울대학교 '국어연구소'를 바탕으로 몸집을 키워 만들어졌습니다. 실제로 국립국어원을 세운 뒤 지금까지 임명된 모두 12사람의 원장 가운데 제3대 남기심 원장(연세대), 제4대 이상규 원장(경북대), 제11대 소강춘 원장(전주대)을 뺀 아홉이 서울대학교 교수이거나 서울대학교를 나온 사람입니다. 이처럼 특정 학교와 아랑곳한 사람들이 이끄는 닫힌 구조는 여러 가지 언어관을 받아들이기보다, 그들이 가진 언어관에 따라 그들이 하고 싶은 쪽으로 일을 하는 권위적인 태도를 되풀이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3. 정책의 실패 1: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은 많은 사람들이 말과 아랑곳한 물음이나 문제에 부딪혔을 때 우리말의 마지막 판단을 내려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사람들이 쓰기에 여러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돌려막기식 뜻풀이입니다. 낱말의 뜻을 쉽게 풀어주는 것이 사전의 첫째가는 임무임에도, 어려운 한자말로 설명하거나 비슷한 말로 뜻을 돌려막는 일이 잦습니다. '기쁘다'를 '마음에 즐거운 느낌이 있다'로, '즐겁다'를 '마음에 거슬림이 없이 흐뭇하고 기쁘다.'로 풀이하는 것이 좋은 보기입니다.
둘째, 토박이말을 깎아내리는 풀이입니다. 사전에 실린 아름다운 토박이말에 '낮잡아 이르는 말',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는 딱지를 붙여, 쓰면 안 될 말처럼 느끼게 합니다. 보기를 들자면 모두가 알고 쓰면 좋을 토박이말 '가시버시'를 '부부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셋째, 토박이말을 '북한말'로 만드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남과 북으로 나뉘기 앞에는 두루 함께 쓰던 토박이말을 '북한의 문화어'인 것처럼 풀이하는 일도 많습니다. '갑자기 부는 바람'을 뜻하는 '갑작바람'을 '돌풍의 북한어'라고만 풀이해 놓아, 우리가 쓸 수 있는 넉넉한 말 곳간의 문을 스스로 닫아걸고 있습니다.
넷째, 잃었던 나라를 되찾자마자 말의 민주화를 위해 애쓴 여러 학자들이 슬기를 모아 만든 새로운 갈말(학술용어)들을 담지 못했습니다. 아래에서 보게 될 '대각선'과 같은 뜻인 '맞모금'은 두 말이 같이 올라 있지만, ‘확대도’를 뜻하는 ‘늘인그림’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옛날 배움책(교과서)에서 썼던 토박이말 갈말(학술용어)들이 있는 줄도 모르게 된 것입니다.
4. 정책의 실패 2: 뒤따라가기 급급한 '새말모임'의 여러 한계
국립국어원의 대표적인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말 다듬기(순화어)'를 맡아서 하고 있는 '새말모임'은 2019년부터 활동을 했습니다. ‘홈페이지→누리집’, ‘네티즌→누리꾼’, ‘싱크홀→땅꺼짐’과 같이 성공적인 보기가 있지만, 더 많은 보기들이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더 어려운 말이 되는 등 여러 한계를 드러냅니다.

첫째, 뒤늦은 사후 대응입니다. 국립국어원 스스로 밝히듯, '언론 매체에서 자주 쓰이는 말'을 다듬다 보니, 이미 대중의 입에 익숙해진 말을 뒤늦게 바꾸려 해 공감을 얻기 어렵습니다. '플렉스', '가스라이팅' 등 유행어가 된 말을 뒤늦게 다듬는 것이 그 보기입니다.
둘째, 한자어 중심의 말 만들기입니다. '스크린도어→안전문', '플랫폼→승강장'처럼, 토박이말의 맛을 살리기보다 기존 한자어를 모아서 만드는 안전한 방식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 현실과 동떨어진 말 만들기입니다. '키오스크'를 '무인 종합 정보 안내기'로, '블랙박스'를 '영상 기록 장치'로 다듬는 등, 지나치게 길고 어색한 말로 다듬어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외면하도록 했습니다.
5. 정책의 실패 3: 토박이말이 소외된 한국어 교육
국립국어원의 이러한 토박이말 경시 풍조는 엉뚱한 곳에서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바로 여러 나라 사람들이 배우는 한국어 교육입니다. 국립국어원이 정한 '한국어 기초 어휘' 약 5,000개 가운데 토박이말은 30%도 되지 않습니다. 한자어는 60%가 넘습니다. 이는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사회 지도층일수록 영어나 한자말을 즐겨 쓰고 정작 아름다운 토박이말은 몰라서 쓰지 못하는 우리의 부끄러운 현실이 그대로 되비친 열매입니다.
잠자는 헌법, 국어기본법
1. 제정 배경과 이상
우리말 정책의 또 다른 한 축은 2005년 제정된 국어기본법입니다. 김희선 의원의 대표 발의로, 무분별한 외국어 남용과 공공언어의 난해함으로부터 우리말을 지키고 국민의 '언어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이 법은 제1조에서 "국어의 발전과 보전의 기반을 마련하여 국민의 창조적 사고력 증진을 도모하고 국민의 문화적인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함을 밝히고 있습니다. 제3조(국가와 국민의 책무), 제4조(대통령의 책무) 등을 통해 국가 최고 책임자부터 모든 국민에 이르기까지 국어 발전의 책무를 부여하고, 제14조(공문서의 작성)에서 "공공기관 등은 공문서를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한다"고 명시하는 등, 이상적인 언어 정책의 앞생각(계획)을 내보였습니다.

2. 치명적 한계: '이빨 빠진 종이범'
법을 만든 뜻은 이처럼 훌륭하지만, 현실은 법과 너무도 다릅니다. 정부 부처의 보도 자료에는 여전히 '거버넌스', '아젠다', '로드맵' 같은 다른 나라말이 넘치고, 법률을 적은 글은 보통 사람들이 알기 어려운 한자어로 가득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국어기본법에는 아무런 강제 조항이나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공공기관이 이 법을 어겨도 그 어떤 불이익을 받거나 못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알 권리를 짓밟는 어려운 보고서를 써도,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는 말을 마구 써도 그만입니다. 어찌 되었든 국어기본법은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이빨 빠진 '종이범'이 된지 오래입니다.
해외의 좋은 본보기: 나라는 어떻게 말을 지키는가
1. 나라가 직접 나서는 보기: 프랑스와 퀘벡
프랑스는 1994년 제정된 '투봉법(Loi Toubon)'으로 공문서, 광고, 방송 등 모든 공적 영역에서 프랑스어 쓰기를 의무화하고 어겼을 때 벌금을 매깁니다. 국가 기관인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결정한 표준어는 관보(Journal officiel)에 알려 법적 효력을 갖습니다. 캐나다 퀘벡주는 1977년 만든 '프랑스어 헌장(빌 101)'에 따라 만든 '퀘벡 프랑스어국(OQLF)'이 간판의 언어부터 기업 활동까지 챙기고 잘못된 것은 고치도록 하는 등 강력한 집행력을 가집니다.
2. 시민들이 힘을 모은 보기: 영국의 '쉬운 영어 쓰기 운동'
영국의 '쉬운 영어 쓰기 운동'(1979년 시작)은 시민들이 직접 '이해할 권리'를 찾아 나선 좋은 보기입니다. 평범한 시민 크리시 마이어는 어려운 공문서 때문에 고통 받는 이웃을 보고, 문서들을 광장에서 갈아버리는 것으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알기 쉬운 문서에 '크리스털 마크'라는 인증 표시를 해주고, 알기 어려운 나쁜 문장에는 '황금 소똥상'을 주는 재치 있는 방법으로 사회 전체의 언어 문화를 바꾸었습니다.
3. 새로운 말을 만드는 자신감: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는 '아이슬란드어 위원회'가 기둥이 되어 새로운 기술과 문물이 들어올 때마다 자기네 옛말을 바탕으로 새말을 만들어 씁니다. '컴퓨터'를 '숫자 예언자'라는 뜻의 '퇼바(Tölva)'로, '전기'를 '호박(琥珀)의 힘'이라는 뜻의 '라프마근(Rafmagn)'으로 만드는 등, 새롭게 만든 말을 언론과 방송으로 널리 알리고, 사전에 바로 싣고 학교에서 가르치게 해, 온 나라 사람들의 말로 만듭니다.
나침반을 고치고 법을 깨우는 길: '언어 광복'을 위한 풀수(해법)
'나라 찾은 날 여든 돌'을 맞은 오늘, '제2의 우리말 도로 찾기 운동'은 다음과 같은 낱낱의 일들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1. 일을 총괄하는 중심 세우기: '국어정책관'을 두어야 합니다.
가장 먼저, 언어 정책을 도맡아 할 힘센 추진체가 꼭 있어야 합니다. 대통령실에 두는 것이 맞지만, 적어도 국무총리실에 토박이말에 대한 깊은 철학과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를 '국어정책관'으로 두어야 합니다. 국어정책관은 여기서 제안하는 여러 과제들의 큰 그림을 그리고, 부처 간의 이견을 조율하며 정책을 힘 있게 끌고 가는 중심 역할을 해야 합니다.
2. 국립국어원의 틀을 완전히 바꾸어야 합니다.
가. 《표준국어대사전》 바로잡기: '돌려막기식 풀이'를 알기 쉽게 고치고, 토박이말에 대한 부당한 '낮잡는' 딱지를 떼며, 우리 겨레가 함께 쓰던 말을 '북한말'로 가두는 일을 멈추고, 새롭게 만든 갈말(학술용어)을 넣는 ‘사전 다시 만들기 사업’을 해야 합니다.
나. '새말 모임' 거듭나기: 지금의 '새말모임'을 뜯어고쳐, 아이슬란드처럼 새로운 말이 들어오기 전에 먼저 우리말 이름을 창조하고 보급하는 '선제적 창조'의 일을 하는 '새말 모임'으로 거듭나게 해야 합니다.
3. 국어기본법을 일하는 법으로: '언어 광복'의 법적 바탕을 만들어야 합니다.
잠자는 국어기본법을 깨워 '언어 광복'의 바탕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 글에서 제안했던 내용들을 아우르는 큰 틀에서의 '법 고침'이 꼭 있어야 합니다.
가. 나라이름 관련 조항 만들기(2회 기사 제안 구체화): 개정법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의 국제적 사용에 관한 원칙'을 뚜렷이 밝히고, 외교 문서, 국제 행사 등에서 'Daehan Minguk'을 쓰도록 국가의 책무를 규정해야 합니다.
나. 공공언어 관련 조항 만들기: 공공기관의 '알기 쉬운 우리말 사용' 의무를 강화하고, 정부 부처 및 공공기관 이름을 만들 때 토박이말 쓰기를 권장하는 조항을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공무원 채용 및 평가에서 실질적인 우리말 쓰는 능력을 중시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합니다.

다. 땅이름 관련 조항 신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왜곡된 우리말 땅이름의 연구, 되살리기, 나란히 쓰기(병기)를 하기 위해 나라에서 할 일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옛 땅이름 되찾기' 와 같은 일을 밀고 나아갈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라. 강제와 유인 조항 도입: 프랑스나 퀘벡의 보기처럼 공공기관의 법 위반에 대한 최소한의 시정 권고와 이행 강제 조항을 도입하고, 영국의 보기처럼 '알기 쉬운 우리말 인증 마크(가칭)'와 같은 긍정적 유인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4. 21세기에 맞는 새 길과 그 끝: 토박이말 지은슬기(에이아이, AI)를 만들어야 합니다.
'국민주권정부'를 내세운 이재명 정부는 지은슬기(에이아이, AI) 기술을 값지게 여기고 있습니다. 정부의 지은슬기(에이아이, AI) 수석'이 기둥이 되어 '토박이말 지은슬기(에이아이, AI)'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토박이말과 옛말, 그리고 앞서 여러 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갈말(학술용어)을 익힌 지은슬기(에이아이, AI)가 새로운 개념이 나왔을 때, 그 뜻과 가장 잘 어울리는 토박이말을 만들어서 여러 가지 새말을 '새말 모임'에 제안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의 창의성과 지은슬기(에이아이, AI)의 분석력을 더한 21세기형 언어 혁신 틀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나라의 틀을 바로잡아 살아있는 토박이말을 되살리고 널리 쓰이게 할 때, 그 좋은 결과는 자연스럽게 한국어 교육의 질을 높이고 제자리를 찾게 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나라 찾은 날 여든 돌'이 된 올해, 길 잃은 나침반을 고쳐 바로잡고 잠자는 법을 깨우는 일. 이것이야말로 참된 ‘말 찾음(언어 광복)'을 이루려고 앞서 해야 할 일이자, 다음 세대에게 해 줄 가장 작은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