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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경영, 두 마리 토끼 잡다

《AI시대, 예술가처럼 경영하라》, 서광일, 행복에너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시간은 참 빠르게 흐른다. 1986년 처음 장구채를 잡았다. 그때 풍물은 민주화의 ‘수단’이었다. 1990년대 풍물은 먹고 살기 위한 ‘생존’이었다.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을 창단할 때만 해도 이 길을 35년 넘게 이어가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저자는 35년 동안 예술현장에서 창작과 기획, 교육과 경영을 병행하며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고된 여정을 이어왔다.”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서광일 대표가 펴낸 《AI시대, 예술가처럼 경영하라》 책 머리는 이런 말로 시작했다. 인천 부평구에 있는 잔치마당은 전통문화의 대중화와 생활화를 위해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소중한 풍물장단을 기본으로 전통타악과 현대 창작타악을 펼치는 전문 예술 공연활동과 교육을 담당하며, 또한 회원 상호 취미 여가 활동의 마당을 마련하여 친목과 결속을 도모하고 이를 계기로 우리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을 두는 사회적기업체다.

 

 

서광일 대표는 드물게 예술과 경영, 두 마리 토끼를 잡은 흔치 않은 인물로 꼽힌다. 장구채를 잡은 지 35년, 이제 인천 부평구에 전문 공연장을 갖추고 전통문화를 성공적으로 세상에 퍼뜨리는데 성공한 그는 최근 도서출판 행복에너지(대표 권선복)를 통해서 《AI시대, 예술가처럼 경영하라》를 펴냈다.

 

우리 주변에는 뛰어난 전통예술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전하는 사람이나 단체도 많다. 그러나 경영을 잘못해서 도중에 문을 접는 사람도 있고, 계속 이어가는 경우도 전문업체에 의지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둘을 함께 성공해 낸 서광일 대표는 그 비결을 혼자 꽁꽁 싸매두려 하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나눠주려는 몸짓을 내보이는 것이다. 한국 전통문화의 본질이 더불어 사는 데 있음을 그는 분명히 깨닫고 있음이다.

 

책은 그저 성공한 사람의 넋두리에 그치지 않고 자기가 터득한 상세한 비법을 나눠준다. 특히 책에는 곳곳에 <에피소드>를 두어 쉽고 재미있는 서술을 도모한다. 예를 들면 <에피소드 ②> “상모에는 모터가 있다! 없다!”를 보면 2015년 이집트 카이로 문화부에서 주최한 세계드럼페스티벌에 참가한 공연단의 상모 돌리는 모습을 보고 나이지리아 연주자들이 상모에 모터가 달렸는지 내기했다는 재미있는 얘기도 했다.

 

 

 

또 <공연 기획자를 위한 아이디어 창출 TIP>에서는 관객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기, 전통과 현대 융합 포인트 찾기, 참여형 요소 적극 도입, 시각ㆍ청각적 상상력 확장 등의 비법을 들며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으며, 공연 기획자들에게 귀띔을 해주기도 한다.

 

이 책은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도 결국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의 진심'이라고 강조한다. 예술가의 섬세한 직관과 경영가의 날카로운 전략이 만나 세상에 감동을 주는 브랜드가 탄생한다는 그의 메시지는, 이 책이 단순한 경영서를 넘어 예술의 본질을 되새기게 하는 감명 깊은 작품임을 증명한다.

 

책을 읽으면서 특히 눈에 띈 대목은 관객이 공연 뒤 감동한 만큼 자율적으로 공연료를 주는 잔치마당의 ‘감동 후불제 공연’이었다. “이는 단순한 실험이 아니었다. 관객에게 신뢰를 바탕으로 가치를 위임한 것이고, 예술의 평가 기준을 감정 중심으로 재설정한 경영적 판단이었다. 이 방식은 예상보다 높은 자발적 후원을 끌어냈고, 예술이 경제적 가치로 전환되는 과정을 증명했다.”라고 말한다. 흔히 볼 수 없는 결정이고, 이게 성공했다니 서광일 대표의 판단력, 결단 그리고 철학은 크게 손뼉을 쳐 마지않을 정도다.

 

 

이 책은 35년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에피소드 10개, 예술 기획과 운영에 유용한 팁 28개, 잔치마당의 운영 사례 23개, 문화예술 공모사업 지원기관 리스트 38개, 예술경영 관련 주요 서적 75권을 소개하고 있어서 독자들에게 생생하고 현실적인 도움을 제공하며, 이 책을 읽는 내내 깊은 울림과 영감을 선사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예로 중국 고전에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특징을 가무에 능하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때도 김구 선생이 문화가 강한 나라를 꿈꿨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문화 강한 나라로 향해 가고 있다."라고 해 앞으로 정부가 문화에 큰 힘을 실어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정부의 노력뿐만이 아니라 문화예술을 직접 경영하는 당사자들의 노력도 절대적이다. 이런 때 서광일 대표가 《AI시대, 예술가처럼 경영하라》를 펴낸 것은 정말 시의적절하고 소중한 일이란 생각이 된다.

 

 

나는 오늘도 기획안과 세부 일정표를 들고 무대로 향한다

《AI시대, 예술가처럼 경영하라》 지은이 서광일 대표 대담

 

 

- 처음 장구채를 잡았던 때 어떤 계기가 있었는가?

 

“출발점은 고향 여수 돌산도 정월대보름 풍물굿이었다. 어릴 때 마을에서는 당산굿·우물굿·지신밟기와 대동놀이가 해마다 이어졌고, 나는 상쇠 어르신의 손짓을 따라 하며 북장단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 현장 체험이 장구채를 잡게 한 첫 계기였다. 1985년 인천으로 올라왔다. 이듬해 교회 선배에게 받은 《전태일 평전》이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안정된 직장을 내려놓고 1986년 경동산업현장에 들어가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그 시절 풍물은 민주화의 수단이었다. 1987년 서울 삼성동 남사당놀이보존회에서 지운하 선생을 만나 의례의 맥락, 판의 질서, 사람을 움직이는 구조를 현장에서 배웠다. 이 경험이 이후 기획ㆍ경영의 뿌리가 되었다. 1990년 잔치마당을 창단한 뒤 풍물은 생존의 수단을 넘어 나의 업이 되었다. 처음엔 35년을 걸을 줄 몰랐지만, 그 모든 계기는 고향 돌산도의 풍물굿과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풍물굿을 하다가 직접 경영에 손을 댄 것은 무슨 일이 있어서일까?

 

“예술 현장은 창작만으로 버티기 어려웠다. 잔치마당 창단과 동시에 기획, 대관, 예산, 계약, 홍보, 정산이 발목을 잡았다. 판을 열려면 기획서와 일정표, 권리 합의와 안전ㆍ보험, 정산 증빙이 선행돼야 했다. 1997년 부평 삼산동 대동제가 부평풍물대축제로 성장하며 축제 기획, 허가, 무대 안전, 관객 동선, 예산 통제의 현실을 직면했고, 경영이 감성의 적이 아니라 생존 장치임을 깨달았다.

 

블랙리스트와 팬데믹을 지나며 온라인 공연, 크라우드펀딩, 교육 프로그램으로 수익을 다변화했고, 월별 현금흐름표(캐시플로)와 계정 분류표, 표준 계약과 e나라도움 규칙으로 현금흐름을 관리했다. 관객 데이터는 다음 기획의 근거가 되었고, 예술후원(메세나)와 협업은 지역과 기업을 연결했다. 감동 후불제도 신뢰를 수입으로 전환했다. 결론은 구조다. 기획–예산–제작–운영–정산–아카이빙의 체계가 있어야 예술이 지속된다. 무대가 계속 서려면 관객, 기업, 행정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북채와 세부 일정표(런시트)를 동시에 잡았다. 기술은 속도, 사람은 방향이며, 경영은 그 방향을 무대로 바꾸는 힘이었다.”

 

- 예술가가 경영까지 직접 할 필요성이 있을까?

 

“예술가는 초기에는 직접 경영을 해야 한다. 방향과 철학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경영은 감동을 반복ㆍ확장하는 구조다. 이를 위해 예산, 일정표, 계약ㆍ권리 관리, 관객 데이터라는 최소 장비가 필요하다. 기획부터 정산과 아카이빙까지 생명주기를 고정하고, 점검표(체크리스트)와 세부 일정표, 기록 표준화로 현장을 누적한다. 그러나 규모가 커지면 분업과 전문가 협업이 필요하다. 내부는 투명 운영, 외부는 동반관계(파트너십) 확장으로 지속성을 만든다. 결론을 말하면 예술가는 초기엔 경영 언어를 갖추고, 이후엔 전문팀과 맞물려야 한다. 감동은 예술이, 지속은 경영이 만든다.”

 

- 두 가지 모두 섭렵해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예술가이자 경영자로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반복할 수 있는 시스템과 관계 자본의 결합이었다. 미래 전망에서 파일을 적재하고 관리하는 아카이빙까지 이어지는 지침서를 고정하고, 대조표와 안전 점검표를 표준화했다. 직관으로 시작하되 관객 설문, 재방문율, 객단가, 누리소통망(SNS) 일지 등 데이터를 모아 다음 기획을 수치로 조정했다.

 

혼자가 아니라 연출ㆍ무대ㆍ홍보ㆍ정산으로 역할을 나누고, 학교ㆍ지자체ㆍ기업과 협업을 맺어 지역 수요에 맞춘 공연 종목으로 브랜드를 키웠다. 실패는 회의와 점검표로 재발 방지에 활용했고, 공연료에 교육ㆍ문화상품(굿즈)ㆍ임대(렌탈)ㆍ후원ㆍ크라우드펀딩(대중투자)을 더해 수익 구조를 다변화했다. 또한 책ㆍ음원ㆍ교육ㆍ탐방(투어)으로 확장하고 언어 장벽을 낮췄다. 무엇보다 예행연습(리허설), 계약과 저작권 같은 본질의 기준을 지켰기에 지속이 가능했다.”

 

- 예술가가 경영까지 하며 겪은 어려움은?

 

“예술가가 경영까지 맡으며 가장 큰 어려움은 시간 부족이었다. 낮에는 교육ㆍ연습, 밤에는 행정, 주말에는 홍보와 정산에 매달려 창작과 행정의 충돌이 잦았다. 소통의 벽도 컸다. 예술의 언어와 행정의 언어가 달라 오해가 생기고, 불투명한 결정 과정은 지침을 불렀다. 해법은 분담과 가시화였다. 주간회의로 모든 일을 공개하고 일정ㆍ예산ㆍ계약을 공유했으며, 문서화로 역할과 책임을 나눴다. 돈 문제는 계정 분리ㆍ표준 분류표ㆍ전문가 협업으로 관리했고, 소통 문제는 투명한 기록과 공유로 풀었다. 결국 버팀목은 관객의 되먹임(피드백)과 동료의 연대였다. 예술이 감동을 만들고, 경영이 지속을 만든다는 사실이 무대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 사물놀이와 풍물굿을 구분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한 의견은?

 

“사물놀이와 풍물굿의 구분은 분명해야 한다. 그러나 단절은 아니다. 사물놀이는 꽹과리, 장구, 북, 징의 네 악기를 중심으로 하여 무대예술로 정제한 음악적 형식이다. 실내의 앉은반 형식은 운율의 밀도와 음향의 정교함을 보여준다. 풍물굿, 곧 농악은 의례와 행렬, 대동놀이가 결합한 놀이적 종합예술이다. 마당과 거리에서 진풀이와 놀이, 기원의 기능을 품는다.

 

다만, 두 형식은 뿌리가 같다. 공간과 지향이 다를 뿐이다. 교육과 유통에서는 사물놀이가 진입로가 된다. 현장성과 공동체성은 풍물굿이 확장한다. 나는 사물놀이로 들어와 풍물굿으로 넓히는 다리 전략을 쓴다. 학교와 기업 강연에서는 앉은반 체험으로 리듬의 문턱을 낮춘다. 지역축제와 의례에서는 대동놀이로 공동체의 숨을 회복한다. 이렇게 해야 전통의 맥락과 현대의 접근성이 함께 산다.”

 

- “AI시대, 예술가처럼 경영하라”를 조금 더 설명하면...

 

“인공지능(AI) 시대는 이미 무대에 올라와 있다. 인공지능은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만든다. 도구이며 경쟁자고, 동시에 동반자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빨라도 사람의 마음과 진심을 앞서지는 못한다. 그래서 결론은 간단하다. 기술은 속도다. 사람은 방향이다. 예술가의 직관이 출발점이다. 경영의 언어가 실행을 완성한다. 감동이 브랜드가 되고, 브랜드가 지역과 세계를 잇는다.

 

돌산도의 굿판에서 시작한 장단이 인천의 극장과 거리, 학교와 축제, 나라 밖 무대까지 이어졌다. 판을 오래, 넓게 여는 길은 정확한 구분과 현명한 연결, 그리고 체계화에 있다. 나는 오늘도 한 장짜리 기획안과 세부 일정표를 들고 무대로 향한다. 그리고 다음 판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