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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의 토박이말 이야기

새로운 때의 첫발, '비롯하다'로 떼다

[하루 하나 오늘 토박이말]비롯하다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오늘 아침,  여러분도 새로운 기별을 들으셨지요? 이재명 한머슴(대통령)이 용산 일터를 닫고 다시 푸른집(청와대)으로 옮겨 처음으로 일을 하러 나왔다는 기별 말입니다. 푸른집(청와대)에 다시 봉황 깃발을  높이 걸고 나라 살림을 꾸리는 새로운 때가 열렸다고 하니, 느낌이 참 새롭습니다.

 

이와 같은 날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시작(始作)'이라는 한자말은 어쩐지 틀(기계)처럼 일을 벌인다는 느낌이 들어 조금 메마르게 다가옵니다. 오늘 같은 날, 우리 가슴속에 더 깊은 울림을 줄 토박이말이 있습니다. 바로 '비롯하다'입니다.

 

'비롯하다'라는 말은 '어느 실마리가 되어, 드디어'라는 뜻을 가진 어찌씨(부사) '비로소'와 뿌리를 같이 합니다. 그래서 그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넘어, 없던 것이 처음으로 생겨나거나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처음으로 시작하다'는 벅찬 뜻을 품고 있습니다.

 

 

장용학 님의 소설 <요한 시집>을 보면 이 말이 얼마나 묵직한 처음을 나타내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네 살 적에 젖을 버리고 쌀을 먹기를 비롯했다."

 

아기가 젖을 떼고 처음으로 밥을 먹는 일, 그것은 그저 먹거리가 바뀌는 게 아니라 삶을 버티는 수가 통째로 바뀌는 엄청난 일입니다. 지음이(작가)는 그 커다란 바뀜을 '비롯했다'라는 말 한마디로 단단하게 묶어내었습니다. 오늘 한머슴(대통령)이 푸른집(청와대)에서 처음 일을 보는 것 또한, 마치 아이가 젖을 떼고 밥을 먹기 비롯하듯 나라 살림의 새로운 틀을 짜는 무겁고도 설레는 첫걸음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면 이 멋진 말을 우리 나날살이(일상생활)에서는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먼저 오늘 아침의 기별부터 우리말로 결을 다듬어 보고 싶습니다. "오늘부로 다시 청와대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라는 딱딱한 말 대신,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요?

"오늘부로 다시 푸른집 때(청와대 시대)가 비롯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그저 곳을 옮긴 것이 아니라, <요한 시집>의 아이처럼 새로운 자람의 켜(성장의 단계)로 '드디어' 들어섰다는 느낌이 듭니다.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마주이야기에서도 이 말을 써보세요. 새로운 배움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동무에게 "이제 시작이야"라고 말하기보다, 이렇게 건네는 겁니다.

"오늘 네가 펼친 이 책에서 너의 새로운 꿈이 비롯될 거야."

 

또,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을 누리어울림마당(에스엔에스)에 올릴 때도 좋습니다. "새해의 기쁨은 나의 작은 웃음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적어보세요. 아주 크고 넓은 앞생각(계획)보다 내 작은 웃음이 첫 단추가 된다는 다짐이 읽는 이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데워줄 것입니다.

 

무언가를 처음으로 여는 일은 늘 설레고 두렵습니다. 젖을 떼고 밥을 먹기 비롯한 그 아이의 마음처럼, '비로소' 내딛는 첫발의 값짐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좀 더 단단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하루는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나요? 부디 따뜻한 바람에서 비롯된 하루이기를, 그리고 그 하루가 모여 빛나는 앞날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