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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타비(我是他非),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

[정운복의 아침시평 294]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아시타비(我是他非)"는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옳고 그름을 넘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과 판단의 잣대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심오한 통찰을 담고 있지요.

 

우리는 종종 자신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재단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의 행동은 상황의 불가피성으로 정당화되고,

타인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실수나 잘못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이 운전 습관을 분석하여 점수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기계의 감시와 평가를 받는 것 같아 그리 유쾌하지는 않지요. 마치 모든 행동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듯한 불편함마저 듭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 다행히도 95점 이상의 좋은 점수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삶에서 크게 서두를 일이 없기에 운전에서도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 점수가 저의 '아시타비' 적인 본성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합니다.

가끔은 저도 급한 마음에 끼어들기를 시도하곤 합니다. 그때는 '나는 지금 너무 급해, 어쩔 수 없어!', '이 정도는 괜찮잖아!'라며 제 행동을 합리화합니다. 순간의 편의를 위해 다른 운전자에게 잠시나마 불편을 주거나 위험을 감수하게 하는 행동임에도, 제 상황에 대한 이해를 구하듯 스스로 설득하곤 합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잠시 뒤, 다른 차가 제 앞에 끼어들기를 시도하면 제 생각은 180도 달라집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위험하게 운전하지? 자기만 바쁜가? 다른 사람은 생각 안 하나?' 그리고 그 행동이 조금이라도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저도 모르게 격한 감정이 앞서 육두문자가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분명 제가 방금 행했던 행동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에도, 타인의 행동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비난과 질책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순적인 태도는 비단 운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가정에서, 심지어 친구 관계에서도 알게 모르게 이중 잣대를 적용하곤 합니다. 내가 실수하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너그러워지지만, 남이 같은 실수를 하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하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입니다. 내가 뱉는 가벼운 농담은 '재치'가 되고, 남이 뱉는 같은 농담은 '무례'가 되는 식입니다.

 

결국 '아시타비'는 인간 본연의 불완전함과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경향을 인지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리기 전에, 혹시 나도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타인의 행동에 대해 비판하기 전에, 그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공감 능력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성장은 자신의 이중성을 직시하고, 타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려는 노력에서 시작됩니다.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라는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넓은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더 성숙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용기, 그리고 타인에 대한 따뜻한 이해가 바로 '아시타비'의 벽을 허무는 첫걸음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