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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복의 아침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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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

[정운복의 아침시평 211]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린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불도저 앞에서 학생들에게 삽을 잘 다루는 기술을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주 놀라운 세계가 눈앞에 있습니다. 이전에 경험해 보지도 못했고 상상하지도 못한 신세계지요. 그 중심엔 AI로 불리는 인공지능이 있습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학습하고 지식을 체계화시키며 미술가조차도 감탄하게 만드는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며 심지어 동영상까지 제작합니다. 10초만 나의 음성을 들려주어도 내 목소리를 똑같이 흉내 내고 ‘Deep Fake’는 우리 얼굴을 임의의 영상에 덧씌웁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자동차가 스스로 굴러다니는 것은 이미 옛일이 되어버렸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똑똑한 기계가 출현해 있습니다. 지금도 드론은 사람을 죽이는 데 쓰여 전쟁의 ‘국면전환자(게임 체인저)’ 역할하고 있으니 전투 로봇을 만들지 못할 이유도 없습니다. 총을 맞아도 끄떡없고, 물속이나 불 속에서도 임무 수행이 가능하며 추위나 더위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배고픔을 호소하지도 않으며 24시간 초집중을 하고, 자동차처럼 빠르며 야간 투시 능력이 있고 온갖

부평초 같은 삶도 포기하지 말아야

[정운복의 아침시평 210]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유월의 논엔 물이 가득합니다. 막 심긴 모가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싱그러움을 자아냅니다. 논엔 벼가 있어야 멋스러운 듯합니다. 물이 들어온 논은 개구리 세상입니다. 개구리 합창 소리가 아련하게 들리면 유년 시절의 추억이 소환되어 좋습니다. 개구리 올챙이가 논을 가득 채우지만, 개구리밥 풀 또한 논의 귀퉁이에 푸르른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개구리밥 풀을 평초(萍草)라고 합니다. 평자가 개구리밥 평자거든요. 그런데 개구리밥 풀은 뿌리가 물 위에 떠다닙니다. 그래서 앞에 뜰 부(浮)를 덧붙이지요. 곧 부평초(浮萍草)가 개구리밥 풀의 한자식 이름입니다. 부평초는 몇 가닥 실뿌리가 있기는 하지만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물결에 휩쓸리며 연약한 목숨을 이어갑니다. 사람이 한 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삶을 부평초 같은 삶이라고 표현하는 까닭이지요. 저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무려 15번의 이사를 경험했으니 이리저리 떠도는 부평초 같은 삶을 살아온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부평초는 한 군데 정착은 못 할지라도 절대로 그 삶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도 살아오면서 부평초 같은 상황을 견디며 살아왔습니다. 가슴

겸손은 유익함을 가져온다

[정운복의 아침시평 209]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사람 대부분은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을 때는 원인을 내부적에서 찾습니다. 곧 내가 잘해서 일이 잘된 것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지요. 반대로 일이 실패했을 경우는 원인을 외부에서 찾습니다. 곧 외부적인 여건이나 운, 예측할 수 없는 불가항력인 것을 들어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쉽게 말하면 잘 되면 내 탓이고 못되면 조상 탓이지요. 요즘 유행어로 표현하면 내로남불인데 그것을 ‘자기 위주 편향’이라고 합니다. 자기 위주 편향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훌륭한 업무를 달성했는데 자기 능력이 아니라 운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유쾌한 일이 아닐뿐더러 다음에 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좋은 결과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작아집니다. 그러니 무의식적이라도 나의 공이 들어있다는 것을 인정받으려는 심리가 깔린 것이지요. 요즘 연예인들의 그릇된 행동이 연일 방송에 오르내립니다. 대부분 사람은 스크린 속에서 연출된 그들의 재능과 능력에 함몰되어 무조건적인 지지와 사랑을 보내기도 하고 펜클럽을 결성하여 응원하기도 합니다. 그들도 하루 세 끼를 먹고 화장실도 가고 남들에게 알려지기 싫은 사생활이 있는데도 뭔가 꼬투리를 잡으면 그것이 삽시간에 인터넷에 도배

위대한 스승은 영감을 준다

[정운복의 아침시평 208]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미국 볼티모어대학에 흑인 사회를 연구하는 교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면접을 통하여 흑인 학생들을 만나러 다녔고 그가 만난 200명의 자료를 종합한 결과 "이들에겐 100% 희망이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연구 결과물은 연구실 구석에 처박힌 채로 20년이 흘렀고 교수도 정년 퇴임을 맞았습니다. 새로운 방의 주인이 된 젊은 교수는 먼지 더미 속에서 20년 전의 연구물을 발견합니다. 젊은 교수는 그러면 지금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지요. 그래서 수소문하여 180명을 찾아 면접을 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가운데 176명이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100% 절망이 아니라 100% 희망으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교수는 그들의 성공적인 삶이 무엇에서 연유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랬더니 이구동성으로 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제가 만난 여선생님이 저를 이렇게 변화시켰습니다." 다시 교수는 제자를 잘 길러낸 여선생님을 찾아갑니다. “선생님은 도대체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쳤기에 아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었나요?” 여선생님은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답합니다. "제가 한 일은 없습니다. 그저 그들을

주변과 하나 되는 사람이 진정 위대한 사람

[정운복의 아침시평 207]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잘 아는 이는 말하지 않고 말을 많이 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입을 다물고 욕망의 문을 닫아라. 날카로움을 꺾고 엉킨 것을 풀어라. 빛을 가리고 먼지와 같이 되어라. 이것을 본래의 하나 됨이라 하느니라.”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노자는 ‘화광동진 광이불요((和光同塵 光而不耀)’를 이야기합니다. 세상은 제 잘난 맛으로 살아갑니다. 자기 자랑으로 하루 해가 저무는 사람도 많습니다. 철원에 가면 숙취에 좋은 음료수를 만드는 공장이 있습니다. 그 안에는 창업주의 박물관이 있지요. 그가 평소에 받은 감사장 및 상패, 각종 선물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제품 광고에 자신이 등장하는 것을 좋아하지요. 자랑으로 하루가 저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노자는 이야기합니다. "빛을 감추고 티끌 속에 섞여 있어라. 빛을 갖고 있으되 반짝이지 말아라." 비우고 또 비우라는 말씀입니다. 그리하면 마음이 연못처럼 깊어야 세상을 품어낼 수 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현동(玄同)이라는 말씀도 있지요. 검은 것은 현묘합니다. (玄妙之道) 아주 진한 빨강이나 아주 진한 파랑은 검은색으로 수렴합니다. 위에 열거한 색뿐 아니라 색 대부분이

크든 작든 늘 파도가 있는 삶의 바다

[정운복의 아침시평 206]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제가 바다를 처음 본 것이 아마도 10살 때가 아닌가 합니다. 충청남도 서천에 사는 외삼촌 댁을 방문했을 때였으니까요. 교통이 매우 불편했던 시절, 역마다 서는 비둘기호를 타고 일곱 시간을 달리고 황톳빛 길을 걸어 산을 하나 넘은 뒤에야 서천 외삼촌 댁에 도착했지요. 눈만 뜨면 산이 보이는 산골에서만 살다가 앞에 탁 트인 평야와 바다가 그리 신기할 수 없었습니다. 외삼촌 집에서 바라본 바다는 산 너머에 걸쳐 있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산 너머에 있는 바닷물이 흘러 넘어와 마을을 덮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잠을 설치기도 했습니다. 이제 자가용을 타고 한 시간만 투자하면 너른 바다를 볼 수 있으니 참 좋은 세상이 된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삶은 바다와 같습니다. 바다는 크든 작든 늘 파도가 있습니다. 파도 없는 바다는 죽은 바다지요. 우리의 삶도 파도가 없으면 죽은 삶과 다르지 않습니다. 작든 크든 파도를 넘을 때 삶의 희열과 살아있다는 기쁨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우린 삶의 바다에서 소소한 행복을 건져 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작은 즐거움을 지나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일상에 소소한

소소하게 깨우친 것들

[정운복의 아침시평 205]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겨울 산행은 멋진 상고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워 어렵기도 합니다. 추위가 심할 때는 슬기말틀(스마트폰)을 꺼내어 시간을 보기도 귀찮을 때가 있습니다. 스마트워치나 손목시계를 차고 있는 사람이 가끔 부러워지기도 합니다. 문제는 3천만 원짜리 명품 시계나 시중에 단돈 만 원하는 시계나 시간을 알려주는 것은 똑같다는 사실입니다. 60평이 넘는 으리으리한 집에서 잠을 자거나 15평 원룸에서 잠을 자거나 우리가 필요한 것은 반 평 남짓한 침대인 것은 똑같은 사실이고요. 넓은 집이 건강한 꿀잠을 제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수천만 원하는 명품 모피코트를 입으나 몇십만 원하는 오리털 파카를 입으나 체온을 적절하게 유지하며 비바람을 막아주는 것은 같습니다. 가끔 술을 마시지만, 가장 좋아하는 주류는 소주입니다. 얼마 전에 지인이 중국에서 가져왔다는 500만 원짜리 술을 먹어 보기도 했지만 5천 원하는 소주와 취하는 것은 같았습니다. 퇴직 무렵에 차를 바꾸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차라고 생각하고 무리해서 좋은 차로 바꾸긴 했는데 대형 고급 차나 소형차나 목적지에 데려다주는 것은 같았습니다. 그러니 우린 행복이 물질적인 것에서

늙어서는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

[정운복의 아침시평 204]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늙어서는 탐욕을 경계해야 합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욕심을 버리지 않는 것을 노욕(老慾)이라고 합니다. 그건 노추(老醜, 늙어서 추하게 됨)가 되기 쉽기 때문이지요. 물론 누구나 세상을 살면서 하고자 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이 개인과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지요. 그런데 분수에 넘치고 도가 지나치면 탐욕이 되고 나이가 들어서도 개선이 되지 않으면 노욕이 됩니다. 앙드레 지드는 이런 말씀을 남깁니다. "늙기는 쉬워도 아름답게 늙기는 어렵다." 청년보다 노년이 죽음에 더 가깝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입니다. 그러면 욕심으로 점철된 삶을 사는 것보다는 많은 부분을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욕심을 내려놓고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것인데 인생을 그렇게 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문제이지요. 우린 물러날 줄 모르고 내려놓을 줄 모르고 움켜쥐려고만 하는 노욕이 심한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젊은이들에게 양심도 없는 자나 제 욕심만 가득 차고 관용도 없는 그런 존재로 보일 뿐이지요. 인생은 삶의 종결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생이 끝나야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권력의 잘못을 단죄하지 못하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