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얕은 개울 물은 돌부리에 부딪힐 때마다 시끄러운 소리를 냅니다. 산골짜기에 흐르는 물이 요란한 이유입니다. 곧즉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외치며 세상을 소란스럽게 만들죠. 하지만 강물이 깊어질수록 표면은 고요해지고 잔잔해집니다. 강바닥 깊은 곳에서는 엄청난 양의 물이 묵묵히, 그리고 일정한 속도로 흐르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깊은 지혜와 성숙함을 갖춘 사람들은 자신을 과시하거나 드러내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얕은 지식이나 감정으로 인해 쉽게 흔들리거나 요동치지 않습니다. 얕은 지식은 사소한 것에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이 옳음을 주장하지만 깊은 지혜는 침묵 속에서 사물을 관찰하고, 신중한 언어를 선택하여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깊은 강은 소리가 없기에 더 많은 것을 포용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지류와 생명을 끌어안고도 겉으로는 평온함을 유지합니다. 이는 겸손이라는 미덕과 일맥상통합니다. 자신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것을 크게 떠벌리는 사람은 종종 그 지식의 한계를 곧 드러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도량이 넓고 내면이 충만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기보다, 오히려 주변의 소리를 듣고 다른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가진 자에겐 법이고 없는 자에겐 벌이다'란 말씀이 있습니다. 본래 법(法)은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할 공정한 기준이지만, 현실 속에서 법과 정의는 종종 가진 것의 무게에 따라 그 기준이 변하고 맙니다. 가진 자에게 법은 방패가 됩니다. 그들이 가진 부(富)와 권력은 최상위 변호인단을 고용할 힘이 되고, 복잡한 법의 망을 교묘하게 피할 수 있는 지식과 수단을 제공합니다. 그들의 실수는 그저 일탈 정도로 포장되거나, 훌륭한 사회 공헌이라는 이름으로 가벼운 솜방망이 처벌로 끝납니다. 법정 싸움은 곧 시간과 돈의 싸움입니다. 가진 자들은 이 싸움에서 무한한 체력과 자원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법의 심판은 때로 벌칙이 아닌, 이미지 세탁과 재기를 위한 잠시 쉬어가는 시간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법의 엄중함은 그들의 부와 특권 앞에서는 한없이 무뎌지며, 결국 법은 그들의 면죄부처럼 기능합니다. 반면, 가지지 못한 자에게 법은 냉혹한 벌(罰) 그 자체이자 족쇄입니다. 그들은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며, 똑똑하지 못한 변호인의 조력에 미숙하게 자신을 변호해야 합니다. 작은 실수나 생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은 곧바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어느 날 장자가 강가에서 낚시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초나라 임금이 신하를 보내 장자에게 관직을 제안하지요. 초왕은 장자의 지혜와 명성을 듣고 그를 벼슬에 임명하여 자신의 치세에 도움을 받고자 했습니다. 장자는 신하의 제안을 듣고도 낚싯대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돌아보지 않은 채 묻지요. "제가 듣기로 초나라에는 신령스러운 거북이가 있다고 하더군요. 죽은 지 이미 3천 년이 되었지만, 왕께서 그 거북을 신성시해 헝겊에 싸서 묘당 위에 모셔 두었다고 하는데 그 거북이 처지에서 보면 죽어서 귀하게 대접받기를 원했을까요?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바랐을까요?" 신하는 이렇게 대답하지요. "그거야 당연히 살아서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바랐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서 돌아가시오. 나도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고 싶으니까요." 세상은 참으로 시끄럽고 위험합니다. 임금이 되려면 화려한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하고 권력자가 되려면 찬란한 비단의 속박을 견뎌야 합니다. 어쩌면 진흙 속에 꼬리를 끌며 사는 삶은 세인이 덧없이 흘겨볼지라도, 이것이야말로 가장 진정한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자의 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