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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빗장을 녹이는 부드러운 속삭임

서두르지 않고 보드랍게, 서로의 마음을 만지는 말
[오늘의 토박이말]사부랑사부랑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이른 아침, 창가로 포근하게 스며드는 맑은 햇살을 보며 단잠을 깼습니다. 밤새 더 차가워진 숨씨(공기)가 이제 막 기지개를 켜는 들판의 풀꽃들을 더 움츠러들게 하기도 했지요. 제 눈에 뜬 첫 기별이 언제 끝날지 모를 싸움과 아랑곳한 것이다 보니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생겨납니다.

 

우리는 아침마다 바쁜 걸음을 재촉하며 일터를 향하거나, 아이들의 등굣길을 챙기며 시끌벅적하게 하루를 시작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바쁜 시간 속에서도 곁에 있는 사람과 나누는 짧은 인사 한마디가 우리 마음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주기도 합니다.

 

나뭇잎들이 아침 이슬을 머금고 서로 몸을 비비며 내는 작은 소리처럼, 세상의 모든 생명은 저마다의 낮은 목소리로 하루를 열고 있습니다. 억지로 힘을 주어 무언가를 해내려 하기보다, 내 곁의 사람과 부드러운 눈빛을 나누며 천천히 비롯하는 능이 꼭 있어야 할 때입니다. 이 눈부신 아침의 바람빛(풍경)을 담아, 굳어있던 우리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녹여줄 토박이말 '사부랑사부랑'을 꺼내어 봅니다.

 

 

'사부랑사부랑'은 '입을 부드럽게 놀려 자꾸 말을 하는 모양'을 가리키는 살가운 토박이말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를 '주책없이 쓸데없는 말을 자꾸 지껄이는 모양'이라고 풀이하여, 자칫 가볍거나 조심성 없는 모습으로만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랫 동안 우리말의 숨결을 갈고 닦아 온 제 눈에는 이 낱말의 뿌리에 담긴 남다른 소리가 들립니다. 이 말의 앞부분인 '사부랑'은 옛말에서 얇은 종이나 주머니 속 마른 물건들이 서로 부딪칠 때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흉내 낸 말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말은 소리를 나타내는 말이 모양을 나타내는 말로 번져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이 낱말이 입술을 가볍게 달싹이는 모습뿐만 아니라 그 소리의 가벼움과 스스럼없는 온기까지 담고 있다고 봅니다. 격식을 차려야 하는 딱딱한 자리에서는 '쓸데없는 말'처럼 들릴지 몰라도,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는 주머니 속 알알이 담긴 열매들이 정겹게 부딪치듯 마음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귀한 통로가 됩니다.

 

 

이 정겨운 말은 우리네 말꽃 지음몬(문학 작품) 속에서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말로 살아 있는데, 송기숙 님의 소설 '녹두 장군'을 보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사부랑사부랑 하느냐"는 대목이 나와 사람들 사이의 허물없는 분위기를 잘 보여줍니다. 또한 이문구 님의 소설 '우리 동네 김 씨'를 보면 '사부랑사부랑 봇짐을 챙기며'라는 표현을 통해 서두르지 않고 꼼꼼하게 일을 갈무리하는 시골 사람들의 넉넉한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우리는 정작 소중한 사람과 어떻게 마음을 섞어야 할지 잊어버린 채 서두를 때가 많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이기려 들거나 내 뜻대로 바꾸려는 욕심 때문에 말에 가시를 돋게 하다 보면, 끝내 서로의 마음에 깊은 생채기만 남기기 마련입니다. '사부랑사부랑'이 건네는 삶의 슬기는 바로 상대를 대할 때 힘을 빼고 다가가는 부드러운 태도와 서두르지 않는 여유에 있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거나 동무와 아침 인사를 나눌 때도 한번에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기보다, 사부랑사부랑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마음 온도를 맞춰가는 과정이 값진 것입니다. 봄바람이 꽁꽁 얼었던 땅을 부드럽게 녹여 꽃을 피우듯, 우리도 고운 말씨와 낮은 목소리로 상대의 닫힌 마음을 천천히 녹여주어야 합니다. 좋은 삶이란 누군가를 이겨서 얻는 열매가 아니라, 사부랑사부랑 나누는 마주이야기 속에서 서로의 그늘을 토닥여주는 일에 있습니다. 거친 말로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보다, 보드라운 말로 서로의 오늘을 응원하는 마음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합니다.

 

[여러분을 위한 덤]

오늘 하루, 밥상에 마주 앉은 식구들이나 일터에서 만난 동료와 '사부랑사부랑' 이야기를 나누는 하루를 만들어 보시면 어떨까요? 때로는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처럼 조금 '주책없고 쓸데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라도 괜찮습니다. 어젯밤 꾼 얄궂 꿈 이야기나 아침 길가에서 본 예쁜 꽃 이야기를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들려줄 때, 상대방은 여러분의 목소리에서 세상 그 무엇보다 따뜻한 응원을 느낄 겁니다. 

 

아이가 잠덜 깬 목소리로 재잘거리는 이야기에 눈을 맞추며 귀를 기울여주는 일도 '사부랑사부랑'의 아름다운 실천이 된답니다. 억지로 멋진 말을 하려 애쓰지 않아도 여러분의 진심이 담긴 낮은 목소리는 이미 충분히 힘이 있고 귀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가장 먼저 '사부랑사부랑' 속삭여주고 싶은 다정한 응원의 말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토박이말]

사부랑사부랑

    뜻: 입을 아주 부드럽고 가볍게 움직이며 자꾸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보기: 어머니와 오랜만에 마주 앉아 '사부랑사부랑' 옛날이야기를 나누니 밤가는 줄 몰랐다.

 

[한 줄 생각]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단단하게 굳은 세상의 빗장을 여는 가장 큰 열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