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은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면서도 글 읽기를 그치지 아니하여 병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그러자 태종이 내시에게 명하여 갑자기 그 처소에 가서 책을 모두 거두어 오게 하였지요. 이때 구양수(歐陽脩)와 소동파(蘇東坡)가 쓴 편지글을 모은 책 ‘구소수간(歐蘇手簡)’ 한 권만이 병풍 사이에 남아 있었는데, 세종은 이 책을 천백 번을 읽었다고 합니다. 충녕대군 곧 세종은 셋째였지만 첫째 양녕대군을 제치고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요인의 하나가 치열한 독서였다고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