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외국어 학습서가 있었습니다. 조선 전기의 중국어 학습서 《노걸대(老乞大)》와 《박통사(朴通事)》, 몽골어 학습서 《몽어노걸대(蒙語老乞大)》, 청어 학습서 《청어노걸대(淸語老乞大)》, 일본어 학습서 《첩해신어(捷解新語)》가 그것들입니다. 《세종실록》에 처음 나오는 《노걸대(老乞大)》의 '노'는 상대를 높이는 접두어로 우리말의 씨, 영어의 미스터쯤 되는 말이며, '걸대'는 몽골인이 중국인을 지칭할 때 쓰는 말로 “미스터 중국인”쯤으로 생각해도 됩니다.
그런데 경희대 영어학부 한학성 교수는 “조선시대에 많은 외국어 학습서들이 있었으며. 사역원이나 승문원에서 전문적인 외국어 교육을 했던 우리나라의 전통적 외국어 교수법은 19세기 말 유럽의 개혁교수법보다 사오백 년 앞선 면모를 보였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은 1894년 일제의 강압에 의한 갑오경장으로 사역원을 폐지하고, 강제합병 직후인 1911년 외국어학교를 폐지하면서 무너졌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