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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2. 난세지음은 원망과 분노의 소리

   

세상을 어지럽히는 음악이 난세지음(亂世之音)이다. 원망과 분노의 감정이 꽉 차있어서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하고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과 의사를 소통하기 위한 매개수단이 말(言語)이라면 이 말에 고저를 넣어 길게 부르는 것이 곧 노래이기에 이를 영언(永言)이라고도 했다. 얼핏 생각하기에 <음악과 정치>, <정치와 음악>은 별로 관계가 없을 법한데, 옛사람들은 음악이 곧 정치이고 정치가 곧 음악이라고 생각해 온듯하다.

<문기악지기정-聞其樂知其政>이란 말이 있다. 그 나라의 음악을 들어보면 그 나라의 정치수준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악여정통의-樂與政通矣> 곧 음악은 정치와 더불어 통한다는 말도 있고 <예악형정 기극일야-禮樂刑政 其極一也>라고 해서 예의범절이나, 음악, 정치, 법률의 극점은 하나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정치와 음악이 무관하지 않음을 깨우치도록 하는 말이다.

공자가 갑(甲)이라는 나라를 방문했을 때, 그곳의 농부가 부르는 즐겁고 희망에 찬 노래를 듣고 그 나라의 정치가 순조롭게 행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지만, 그 옆의 을(乙)이라는 나라를 방문했을 때는 탄식조의 원망 섞인 노래를 듣고 정치가 혼란스러워 민심이 흩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공자뿐 아니라, 누가 듣고 판단하더라도 두 나라의 정치상황은 짐작할 수 있는 것이리라.

정치가 혼란스러워 어지럽게 펼쳐지는 세상을 일러 난국(難局)이요, 난세(亂世)라고 하니 난세를 짐작하게 하는 음악이 곧 난세지음(亂世之音)인 것이다. 본래 음(音)이란 것이 세상만물을 보고 마음으로부터 느껴 움직이는 것이니만큼, 느낌에 따라 다양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주위의 사람들이나 물질로부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밝고 명랑한 소리로 반응하게 마련이고, 슬픔을 느끼게 된 사람은 흐느끼는 소리가 될 것이며, 분노를 느낀 사람의 소리는 거칠고 사납게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반응하게 되는 <느낌>이야말로 사람의 기분을 좌우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상대로 하여금 좋은 감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하고 주의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목소리를 낮추고 부드럽게 말해야 한다. 독일 사람들에게 왜 말을 만들었는가를 묻는다면, 그들은 ‘시(詩)를 짓고 읊기 위해’라고 당당하게 대답한다고 한다. 굳이 괴테나 실러, 하이네, 니체를 들먹이지 않아도 짐작이 가는 대답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그들은 서슴없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세계를 주름잡는 성악가들 이름을 열거하지 않아도 그들이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른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사랑을 속삭이기 위해’ 일본 사람들은 ‘사귐(외교)을 위해’ 중국인들은 ‘장사를 위해’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외국인에게 비친 한국인들은 마치 ‘싸우기 위해’ 말을 만든 것 같다는 달갑지 않은 대답이다.

TV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이 목청을 세워 다투는 장면을 보고 그러는가? 접촉사고라도 나면 대로 위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언성을 높이는 장면 때문인가? 갈등의 현장에서 일방적인 주장만을 목이 터져라 외치기 때문일까? 아니면 청년 실업, 사(私)교육, 시장경제, 민생치안 등의 산적한 문제들을 뒤로하고, 의사당 안에서 힘자랑하는 장면을 보고 그러는 것인가?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말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상대와의 ‘친교를 위해’라고 대답하도록 하자. 그러려면 서로 목소리를 더욱 낮추어야 한다. 모든 잘못이 <나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이라는 주장은 거칠고 사나울 수밖에 없는 난세지음이다. 거칠고 사나운 난세지음은 원망과 분노를 동반하는 소리여서 이 소리들이 멈추지 않고 우리 사회를 진동시킨다면 그 다음은 망국지음(亡國之音)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서한범(단국대명예교수.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