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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식

파주삼릉, 푸른 숲속의 애절함 - 파주통신(2)

   

   

조리읍 삼릉로 89번지에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시대 능 40기 가운데 공릉(恭陵), 순릉(順陵), 영릉(永陵) 세 기(基)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파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학교 소풍으로 한두 번쯤은 꼭 다녀갔던 이 삼릉은 예종(睿宗)의 원비(元妃) 장순왕후(章順王后) 한씨의 능인 공릉과 9대 성종(成宗)의 원비(元妃)인 공혜왕후(恭惠王后) 한씨의 능인 순릉, 21대 영조(英祖)의 맏아들인 효장세자(孝章世子) 진종(眞宗)과 그 비(妃) 효순왕후(孝純王后) 조씨(趙氏)의 능인 영릉을 말합니다.

공릉의 장순왕후는 세조를 도와 권력을 잡은 상당부원군 한명회(韓明澮)의 셋째 딸로 1460년(세조6) 16세의 나이로 세자빈에 책봉되어 인성대군(人城大君)을 낳고 이듬해 17세의 나이로 산후병으로 죽었습니다. 왕세손이 태어났다고 왕실에서는 기뻐하며 죄인들의 죄를 사면하는 등 축하행사를 했지만 세자빈이 닷새 만에 세상을 떠나고, 태어난 세손 또한 세 살을 못 넘기고 단명하니, 그 애통함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됩니다.

남편 예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후로 추존되었지만 공릉은 당초 왕후릉이 아닌 세자빈 묘로 조성되어 초석, 병풍석과 난간 등이 생략되었지요. 그러나 봉분인 능침과 그 앞의 문석인(=문인석)은 그 크기가 엄청나서 우람하게 느껴집니다.

순릉의 공혜왕후 한 씨 또한 한명회의 넷째 딸로 공릉의 장순왕후와는 친 자매지간이랍니다. 언니를 시어른으로 모셔야 했으니 묘한 관계였지요. 1467년(세조13) 11세에 가례를 올렸고 성종즉위와 더불어 왕비가 되었으나 5년 만에 슬하에 자식 없이 1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습니다.

순릉은 왕비의 능이기에 공릉과 달리 석물이 모두 잘 갖춰져 있습니다. 능침 둘레에는 12칸의 난간석이 둘러져 있고, 석마(돌로 만든 말)를 곁에 둔 문무석 각 1쌍, 석양(돌로 만든 양)석호(돌호랑이)도 각 두필씩 두어 능침 주위를 호위하고 있지요.

영릉은 영조정조와 관련된 능입니다. 후궁 정빈 이 씨에게서 맏아들 효장세자를 본 영조는 3년도 안되어 어머니를 잃은 이 아들을 일찌감치 왕세자로 책봉했지요. 그러나 세자는 아홉 살 가례를 올린 다음 해 열 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영조는 자신이 덕이 부족해서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여 애통함을 억누르지 못하고 몹시 슬퍼하였지요. 날이 가물어 능침의 잔디가 말라 죽었을 때, 손수 지휘하여 떼를 입히고 물을 뿌렸다는 기록을 보면 영조가 세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참으로 애절했음을 알 수 있지요. 이 어린 세자와 가례를 올린 병조판서 조문명의 딸 세자빈은 졸지에 홀로 남아 평생을 창덕궁에서 외롭게 살다 37세에 남편 곁으로 와 나란히 누웠습니다.

영조는 이후 둘째아들 사도세자 폐위사건 뒤 왕세손이던 정조를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시켰고, 정조 즉위 이후 효장세자는 임금의 아버지라는 신분으로 진종이라 추존됩니다. 이에 따라 능호도 영릉이라 한 것이지요. 이후 1908년 대한제국 순종 때 진종소황제와 효순황후로 다시 한 번 추존되어 영릉 비각엔 이와 관련된 비석이 세 개나 됩니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가 딱딱딱 들리기도 하는 아름다운 숲으로 둘러싸인 파주삼릉은 가족들과 친구들과 찾기 좋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니 이번 주말엔 맛있는 도시락을 싸서 이곳을 한번 찾아보심이 어떠할까요?


독자 권효숙 / 파주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