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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인 1936년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향토오락≫이란 책을 펴냅니다. 하지만, 일제는 이후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조선의 민속놀이를 금했으며, 조선어를 쓰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특히 일제는 1941년 우리말과 글의 연구를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인 <조선어학회>가 ≪조선어사전≫을 일부 인쇄하기 시작하자 <조선어학회> 학자들을 대거 잡아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조선어학회사건”입니다.
이때 홍원경찰서에서는 사전 편찬에 직접 가담했거나 재정적 보조 등 협력한 사람 33명에게 모두 「치안유지법」의 내란죄를 뒤집어씌웠습니다. “고유 언어는 민족의식을 양성하는 것이므로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은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운동의 형태다.”라는 것이 내란죄를 뒤집어씌운 이유였지요. 이후 기소유예 등으로 풀려난 사람을 빼고 함흥형무소 미결감에 수감되었던 16명 가운데 이윤재와 한징은 옥중에서 죽고, 두 사람이 석방 되었으며, 나머지 12명이 재판에 넘어갔습니다. 재판 결과 이극로 선생 징역 6년, 최현배 선생 징역 4년 등 한 사람을 빼고는 모두 유죄가 선고되었지요.
몇 년 전 우리나라에 온 중국 연변대학교 총장(조선족)은 “만주족은 말에서 내렸기 때문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타고 다니던 말에서 내린 것과 함께 입으로 하는 말을 버렸다는 이중어법이었지요. 그렇게 만주족은 자신들의 말을 버렸지만, 우리 겨레는 우리말글을 지키려고 목숨을 걸었기에 오늘날 자랑스러운 나라가 된 것은 아닐까요? 오늘 <조선어학회사건>이 일어난 날, 우리말글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