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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2451. 오늘은 고종황제가 독살 당한 날

   

오늘은 고종이 1919년 덕수궁 함녕전 서온돌에서 68살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뜬 날입니다. 죽기 직전까지 건강한 모습이었던 고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이후 여러 가지 독살설이 퍼졌습니다. 독살설이 퍼진 까닭은 고종황제의 팔다리가 죽은 뒤 1~2일 만에 엄청나게 부어올라서, 황제의 통 넓은 한복 바지를 벗기기 위해 바지를 찢어야만 했다는 점과 죽은 황제의 이가 모두 빠져 있고 혀는 닳아 없어져 버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점들 때문이었습니다. 일본 총독부의 사주를 받은 전의(왕실의 의료를 담당하던 관리)가 홍차에 비소를 넣었다는 소문과 독이 든 식혜 또는 한약을 마신 뒤 죽었다는 소문들이 빠르게 퍼져나가 이에 격분한 국민은 삼일만세운동을 일으키게 된 것이지요.

고종 황제뿐만이 아닙니다. 24년 전인 1895년에는 명성황후가 일제 순사의 손에 처참하게 죽었지요. 일제 순사 와타나베는 명성황후의 가슴에 칼을 박고 주검을 불태우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대한제국은 일제에 의해 황제와 황후 양전이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입니다. 그들은 왜 명성황후와 고종황제를 그렇게 죽여야만 했을까요? 당시 일제는 조선을 식민통치하기 위해서 가장 큰 걸림돌을 고종과 명성황후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두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겠지요.

그런데 황후와 황제 두 사람의 장례도 물론 제대로 치르지 못했습니다. 명성황후는 죽은 직후 폐후되었기에 장례는 생각할 수 없었고 2년 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 황후로 격상하고 난 뒤에야 장례를 치를 수 있었지요. 또 고종의 장례는 국장이 아닌, 대행태왕의 장례로 격하되었고, 조선의 전통 장례가 아닌 일본 황족의 장례 양식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일본은 지금 옛일을 잊고 새로운 이웃이 되자고 합니다만 이렇게 황제와 황후의 비참한 죽음에 그 어떤 사죄도 제대로 하지 않는 상태로는 불가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