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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일본 고전을 읽는 재미

 

 

           

 

 

 

- 이하라사이카쿠의 ‘한국판 장화홍련전’과 비슷한 이야기 -

 

 

“예전에 히다(지금의 기후현 북부)지방에 한 무사관리가 있었다. 어느 날 이 관리가 산길을 가다가 나무가 우거진 숲속에 이르렀는데 한 선인(仙人)이 길도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쫓아가다가 그만 길을 잃었다. 그래도 자신이 무사인데 그냥 돌아가기는 뭐하고 해서 선인이 간 발자국을 따라 가다보니 큰 바위 동굴 하나가 나타났다. 무사관리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깜깜한 동굴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안쪽에서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나고 약간 밝은 빛이 보여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맑은 물속에 빨간 금붕어가 헤엄치고 있지 않는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안쪽으로 4~500미터쯤 더 깊숙이 더 들어 가보았다. 그러자 거기에는 황금 마을이 눈앞에 펼쳐졌는데 금은보화와 백옥으로 장식된 건물이 즐비했다. 자신이 동굴에 들어오기 전에는 분명히 한겨울이었는데 그곳은 사방에 꽃이 만발하고 종달새가 지저귀고 있었다. 이 휘황찬란한 마을을 구경하다 무사관리는 그만 졸음이 몰려와서 한쪽 풀밭에 벌렁 드러누워 잠이 들었다.

그 순간 한 꿈을 꾸게 되었는데 목이 없는 여자 두 명(어머니와 딸)이 나타나서 말을 걸었다. 자신들은 이 마을에서 비단을 팔아 사는 사람들인데 어느 해 마을의 몹쓸 남자가 자신들을 죽이고 비단을 모두 훔쳐갔으니 원수를 갚아 달라는 것이었다. 여자의 남편은 비단 장수였으나 그만 병이 걸려 죽게 되었는데 남편은 그간 짜놓은 비단 2천 필을 넘겨주면서 이것을 팔아서 연명을 하다가 정 살기 어려우면 출가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1년도 안되어서 마을의 힘깨나 쓰는 남자가 이 과부여자를 마음에 두고는 겁탈을 하려다가 거부하자 두 여자를 그만 죽여 마을 앞 들판에 내다 파묻어 버리고 비단을 갈취해버렸다. 이에 두 여자는 무사관리에게 그 원수를 갚아 달라고 부탁했는데 무사관리가 생각해보니 그 살인범이 이 가엾은 두 여인을 죽였다는 증거가 없는 것 같아 난색을 표하자 자기들을 파묻은 곳에 커다란 버드나무가 자라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무사관리는 즉시 가서 파보니 그 밑에 이 두 여인의 목 없는 시체가 나와 이를 관청에 신고하여 그 살인범은 사형을 받았다.

두 여인의 원수를 갚고 나니 이들이 무사관리에게 금은보화를 주면서 어서 이 마을을 떠나라고 하늘을 나는 수레에 태워주는 것이었다. 무사관리는 이 수레를 타고 자신이 살던 마을에 돌아와서 이 이야기를 마을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더니 마을사람들이 그 신비스런 마을을 찾아 나섰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이 작품을 쓴 사람은 일본의 작가 이하라사이카쿠(井原西鶴, 1642-1693)로 제목은 “꿈속의 수레(夢路の風車)”이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국의 장화홍련전(두 자매가 계모에 의해 살해되어 고을원님에게 나타나 원수를 갚는 이야기)이 순간 떠올랐지만 이야기 전개는 좀 다르다.

사이카쿠는 일본 전통 시의 일종인 하이카이(俳諧) 작가이자 에도시대(1603-1868)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인형극 작가로도 이름이 높은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41살 때 <호색일대남(好色一代男)>이란 소설을 써서 요즘으로 치면 베스트셀러작가 반열에 올라 일본 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을 듣는다.

필자는 요즈음 일본고전강독회에서 이하라사이카쿠의 작품을 읽고 있는데 300여 년 전 일본사회상을 엿볼 수 있어 흥미진진하다. 흔히 “고전(古典) 공부하는 사람은 고전 (苦戰)을 면치 못한다.”고 하지만 2주에 한 번씩 일본의 고전 공부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