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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말 ‘표구’ 앞에 무너진 한국말 ‘장황’

[≪표준국어대사전≫ 안의 일본말 찌꺼기(18)]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서울 낙원동에서 40년 넘게 전통 표구 작업을 해온 이효우(69) 낙원표구사 대표는 옛 사람들이 시나 편지를 쓰는 데 사용한 작은 종이인 시전지(詩箋紙) 수집가다. 전남 강진의 병풍을 제작하는 집안에서 자란 그는 10대 때 상경해 인사동 표구사에 들어가 일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국내 몇 안 되는 장황(裝潢·:비단이나 두꺼운 종이를 발라서 책이나 화첩, 족자 등을 꾸미는 일) 장인이자 고서화 수리·복원 전문가인 그가 시전지 수집을 시작한 것은 20년 전, 조선 후기 문인 이복현의 편지지를 보고 반하면서부터다 (후략) - 2010.11.15. 국민일보-   

위 글에 보면 표구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예전에 집 주변에 널려있던 표구집이 하나 둘 사라져 요즈음엔 인사동이나 가야 구경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림하면 따라 다니는 표구라는 말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 일본 표구사들의 제57회 표구전시회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표구(表具) : 그림의 뒷면이나 테두리에 종이 또는 천을 발라서 꾸미는 일이라고 나와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말은 일본말로 우리는 예부터 장황(粧䌙)이란 말을 써 왔다. 조선왕조실록을 보자. 

중종실록 31(1536)에 보면,이용의 글씨가 있으면 매우 좋겠는데, 이 글씨는 오래 되어서 내장(內藏)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여염에서 구하여 미리 표구하였다가 주어야 하겠는데, 여염에서도 얻을 수 없고 줄 만한 다른 글씨가 없으면, 성종의 어필(御筆)을 주더라도 괜찮겠는가? (鎔書有之則甚善此書舊矣, 其於內藏, 亦不見之今可求於閭閻間, 預爲粧䌙而給之閭閻間亦不可得, 而無他書可給, 則雖以成廟御筆給之, 亦爲可乎?)”라는 내용이 나온다. 

위를 보면 원본의 장황(粧䌙)’을 국역에서 표구라고 번역해놓았음을 알 수 있다. () 자는 단장할 장이요, () 자는 줄로 동일 황자다. 그렇다면 장황은 죽은 옛말이고 현대어로는 표구라고 해야 한다는 뜻일 게다. 그런데 표구장황과의 관계가 그렇게 간단한 것일까? 

장황이란 말이 등장한 옛 문헌을 찾아보자. 먼저 장황고려사절요나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도 나오는데 청장관전서57권 앙엽기 4 (盎葉記四)의 도서집성(圖書集成)에 보면, 금상(今上)이 병신년(1776, 정조 1)에 사신 부사(副使) 서호수(徐浩修) 에게 명하여 이 도서집성을 비싼 값으로 사오게 한 다음 장황(裝潢)하여 개유와(皆有窩)에 쌓아 두었다.”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 이덕무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그런데 웃지 못 할 일은 도서집성 국역본의 장황에 대한 낱말 풀이로 장황(裝潢) : 책이나 서화첩(書畵帖)이 파손되지 않도록 잘 꾸며 만드는 일, 즉 오늘날의 표구(表具)와 같다.”고 풀이 해두었는데 요즘 우리가 장황이란 말을 잊고 살다보니 표구라는 일본말로 전에 쓰던 장황을 설명하고 있는 꼴이다.  

이 말 표구에 대해 깊이 생각한 국어학자 한 사람만 있었어도 아니 국어사전 만드는 이 가운데 한 사람만 있었어도 표구가 전에부터 쓰던 말처럼 인식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에 와서 표구라는 말을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표구라는 말의 유래를 살펴보자는 뜻이다.  

우리가 지금 말하는 표구(表具)에 대한 기록 가운데 이른 시기 자료로는 삼천리 제12권 제7, 1940.7.1일 치 예술가의 생활초라는 글에 나오는 표구이다. 이 글은 탄금도제작기(彈琴圖製作記)를 쓴 화가 최목랑의 519일치 일기로 여기에 표구가 보인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아침부터 그림틀()을 짜다. 전번 표구점(表具店)에 물어보았드니 25()을 내라고 한다. 이대로 내가 짜면 10()내외로 될 것이기에 한 시()가 아까우나 내가 짜기로 한 것이다. 내일까지 봉선화(鳳仙花)는 완성하야 출품하기로 결심하다.” 라는 글이 있는데 여기서 화가는 표구점에 맡길 돈 25원을 절약하기 위해 손수 그림틀(액자)을 만들었다고 한다. 

벌써 이 무렵에는 표구라는 말이 한국에 들어 와 있음을 알 수 있다. 장황(粧䌙)이란 한자말이 표구(表具)보다 어려워서였을까? 장황점이라 안했는지 궁금하다. 일본국어대사전大辞泉에는 “‘ひょう表具: などをはって巻物屏風・ふすまなどに仕立てること表装이라고 되어 있는데 번역하면 효우구(hyougu), 종이, 옷감 등을 붙여서 두루마리, 족자, , 병풍, 장지문 등을 만드는 일, 표장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표구 역사는 얼마나 될까? 자존심 하나로 먹고 사는 100년 전통을 가진 교토 야마기타(山北光運堂) 표구점 누리집에 소개하는 표구역사(表具歴史)를 보면 표구는 먼 아스카시대의 불교 전래와 함께 건너온 두루마리용 경전에서 유래한다. 이어 불화(佛画)에도 표구가 쓰였다고 밝히고 있다. 

아스카시대란 서기 592년부터 710년까지 118년간을 말하며 552년에 백제 성명왕으로부터 불상, 경전 등이 전해져 일본에 불교가 공인될 무렵의 시기이다. 그러고 보면 표구와 불교는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두루마리용 경전이나 불화 등도 표구를 하지 않고는 안 된다. 백제로부터 불교가 전해진 시기를 표구의 원년으로 잡는다면 표구의 시발점은 고대한국이다.

   
▲ 백제성명왕이 서기 552년에 불상과 경전을 보내 안치했다는 일본 최초의 절 향원사(나라현 아스카 소재)

 20101012일부터 112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고려불화대전-700년 만의 해후>라는 이름의 전시회가 열려 많은 사람으로부터 고려불화의 고갱이(진수)를 맛보게 하였다. 특히 일본 센소지(浅草寺소장 수월관음도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췄는데 글쓴이는 이때 그림도 그림이지만 표구 부분을 유심히 관찰했었다.  

한국, 일본,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 총 44군데에 흩어져 있던 고려불화전은 세계로부터 찬사를 듬뿍 받고 있는 작품들로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이웃나라인 일본에 이러한 수준의 불화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만큼 고려불화는 독보적인 가치를 가진 불교신앙의 알맹이요, 예술품이다. 물론 표구 기술도 함께 말이다. 

이러한 뛰어난 예술을 만들어 낸 겨레가 쓰던 ‘장황'이라는 말을 일본으로부터 "표구"라는 말을 수입해서 쓰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다만 예전부터 쓰던 장황(粧䌙)이란 한자는 좀 어려운 말임엔 틀림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국립국어원은 ≪표준국어대사전≫에 표구(表具) : 그림의 뒷면이나 테두리에 종이 또는 천을 발라서 꾸미는 일이라는 일본 사전 베끼기로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하지 말고 표구 설명 끝에 장황 이야기도 더불어 실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고려불화의 장황이야기도 살짝 말해주면 좋겠다.

 

   
▲ 고려불화대전 포스터, 1,000여년 이전부터 불화를 그렸던 조선인들의 장황(표구) 실력 또한 대단했었다.

100년 된 표구점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교토의 자존심 앞에 1,000여년의 자존심이 구겨지는 현실이 바로 표구(表具)라는 말이다. 다만 이 시점에서 장황(粧䌙)이란 한자말이 어려운 말이니 이참에 국민들에게 토박이말 공모로 표구를 바꿔 보는 것은 어떨지 제안한다.

(참고 : 장황이란 한자는 청장관전서에서는 裝潢’, ≪조선왕조실록에서는 粧䌙이라는 한자로 쓰였다.)   

[그린경제 / 한국문화신문 얼레빗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
 

**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요즈음은 한 분야에 입문하여 10년만 공부해도 “전문인”이 되는 세상이다. 일본어 공부 35년째인 글쓴이는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아직도 글쓰기가 두렵고 망설여진다. 그러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를 풀어내는 글’을 쓰기 시작했더니 “그거 좋다”고 하여 ‘국어사전 속 숨은 일본말 찾기’라는 부제의 책《사쿠라 훈민정음》을 2010년에 세상에 내어 놓았다. 이 책 반응이 좋아 후속편으로 2편이 곧 나올 예정이다. 내친김에 일반인을 위한 신문연재를 하게 되었다. ‘말글을 잃으면 영혼을 잃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애정을 갖고 이 분야에 정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