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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일교포 김리박 시인의 장편서사시집 《삼도의 비가(三島の悲歌)》 책 표지, 일본 마도로출판사, 2013년 6월 |
재일교포문학의 최고봉으로 우뚝 선 교토 김리박 시인의 장편서사시집 《삼도의 비가(三島の悲歌)》가 일본의 마도로출판사에서 2013년 6월 출간되었다. 시집은 한국어와 일본어가 함께 수록되었는데 일본어 번역부분은 중견시인인 우에노미야코(上野都) 씨가 토박이말의 정서를 잘 살려 번역했다.
《삼도의 비가》는 머리노래를 시작으로 첫째노래 숲, 둘째노래 백마에 이어서 배, 죽음, 삶, 갓난이, 사랑, 때새(시간), 겨레, 한길, 무덤까지 모두 11장으로 구성되며 마지막 맺음노래로 마무리하고 있다.
“살갗 검은 한겨레가 있고 / 흰 몸 까만 머리 한겨레가 있고 / 바지저고리, 치마저고리를 비웃는 이도 있고/ 김치 고추장, 젓갈 못 먹는 이 있다... / 새삼 다시 물어본다 / 동포란 무엇이며 관향이란 무엇인가?”
이는 《삼도의 비가》 머리 노래글이다. 시인은 비록 일본 땅에 살지만 바지저고리를 즐겨 입는 조선인임을 당당히 밝히고 있다. 일본 땅에서 바지저고리를 입고 고추장 된장을 먹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수다한 굴길과 그물처럼 깔려 뻗은 철길 / 그것이 삼도(일본) 땅의 등뼈라면 / 그 등뼈는 틀림없이 / 구더기 목숨도 못된 삶이었고 / 상가집 개만도 못한 신세의 삶이다.” 다섯째노래(5장)에서 시인은 그렇게 재일조선인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재일조선인에게 호소하듯 아니 절규하듯 내뱉는다. “아아! 재일 한겨레들아! 삼도땅(일본땅)의 겨레 해적이(연보)는 산소도 없이 아니 아니 / 살고 있는 그 자체가 산소요 무덤이요”라고 말이다. 오죽 삶이 힘겹고 고통스러우면 살고 있는 자체를 무덤이라 하는 걸까? 한국인도 아니요, 그렇다고 일본인도 아닌 재일동포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는 그동안 줄기차게 회자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그 삶의 내용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사라들은 잘 모른다.
시인은 그러한 재일동포의 삶을 몸소 겪으면서 부딪혔던 슬프고도 한스런 이야기들을 실타래를 풀듯 풀어내고 있다. 그 땅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차분한 목소리로 때론 피를 품은 분노의 절규로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행간 가득히 그의 외침들은 수증기로 뭉쳐 맑은 대낮에 한줄기 폭풍우를 동반한 소나기로 퍼붓는다.
특히 오랜만에 귀향한 고국땅에서 “똥포요, 대포요 또 귀포요 하고 업신여겨 불리는 부평초 같은 신세” 에 대해 시인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애를 느끼고 있다. 왜 우리는 우리의 핏줄을 이렇게 밖에 대하지 못하는가! 시인의 노래들이 비수가 되어 우리 가슴에 꽂힌다. 그간 무관심했던 재일동포들의 삶을 우리로 하여금 되돌아보게 한다.
“이 긴 이야기 묶음 글노래 《삼도의 비가》는 지은이의 비가 3부작 가운데 첫째편이다. 이 노래는 1980년대에 써 둔 것인데 활자화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2부작인 《견직비가》와 3부작인 《봄의 비가》가 먼저 세상에 나왔다. 오랫동안 햇빛을 못 보던 이 원고를 문예평론가인 김학렬 박사께 보여드렸더니 영광스럽게도 머리말을 보내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분은 이 책의 발간을 보지 못하고 지난해 여름 간경변으로 세상을 떠 마음이 무겁다.” 고 김 시인은 편집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출간한 《삼도의 비가》는 그의 “비가(悲歌)” 시리즈 3부작의 완결인 셈이다.
김학렬 문예평론가는 이 시집 머리글에서 “유린, 폭압 가운데서 김리박 시인의 ‘비가’ 3부작 대작업의 완성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남북한에서 김리박 시인의 작품에 대한 관심은 벌써 오래된 이야기다. 체계적인 비평집, 작품집도 적지 않게 소개되었지만 이번의 《삼도의 비가》의 간행을 계기로 ‘죽는 날까지’ 모국어 문학을 관철하여 민족의 얼을 지켜내고자 하는 ‘윤동주류문학’에 바로 큰 관심의 눈을 돌렸으면 한다.”고 했다.
또한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은 “김 시인이 있어 재일동포의 삶이 무지랭이에서 일약 삼도 숲의 왕자인 독수리가 되었으니 정말 자랑스럽다. 훗날 100년 역사를 돌아보는 이 있어 《삼도의 비가》를 만나게 되는 날 느끼게 될 무한한 자긍심을 어찌 필설로 다하랴! 조국의 애국시인들에게 조차도 냉대 받는 토박이말을 고스란히 부둥켜안고 써내려간 위대한 역작 앞에 우리 모두가 무릎을 꿇어야 할 것”이라고 책 머리글에 밝히고 있다.
그렇게 이 소장의 말처럼 김리박 시인의 3부작 시리즈 첫 작품인 《삼도의 비가》는 33년 만에 우리에게 선보이는 김 시인의 조국사랑 그 자체이다. 그리고 조국사랑은 우리 겨레 토박이말로 토해내고 있다. 어느 조국의 시인이 이렇게 찐한 토박이말 사랑을 해낸 사람이 있는가? 조국에서 안주하고 있는 이들이여! 김 시인의 《삼도의 비가》를 읽고 조국이 무엇인지, 겨레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보길 바란다.
한복을 입었지만 신은 조오리(일본 신발), 갓은 군인모자[
“시조집은 ≪한길≫, ≪믿나라≫ 2권, 시집은 ≪견직비가≫, ≪봄의 비가≫를 냈으니 지금 낸 ≪삼도의 비가≫는 5권 째가 됩니다.” - 토박이말에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고 시조를 쓰기 시작했는지요? "일본 땅에 살고 있으면 되나라꼴글(한자) 없이는 말글살이는 거의 못하니 하는 수 없이 배우게 되고 그 그늘 힘에 못 이겨 되나라꼴글을 많이 쓰게 되었는데 그래서 첫 시조집 “한길”은 되나라꼴글 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둘째 시조집 “견직비가”부터는 외솔 스승님의 말씀을 되생각하고 또한 한글학회의 명예이사이신 정재도 선생님의 글월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많이 뉘우치게 되어 그 뒤부터 “고어사전”, ”이조어사전”, “조선중세어사전”들과 사투리사전(방언사전) 따위를 훑어보고 배워 익혀 가면서 줄곧 바닥쇠말(토박이말)을 슬기 닿는 대로 쓰게 되었습니다.“ - 어려운 상황일 텐데 어떻게 토박이말을 안 잊고 지킬 수 있었습니까? “바닥쇠말(토박이말)이 곧 우리말이고 우리말을 골라 써야만 참되고 꿋꿋한 한국 사람이 되고 바른 생각과 아름다운 맘과 밝은 슬기(지혜)와 온갖 힘과 솜씨를 지닐 수 있다는 굳은 믿음과 쓰는 맛을 알게 된 덕입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낫 놓고 ㄱ자도 모르시던’ 일본땅서 그만 돌아가신 우리 어머님께서 쓰신 말들이 거의 다가 바닥쇠말이었다는 것이 오늘까지 바닥쇠말을 잊지 않고 지킬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 재일교포로서 현재 가장 어려운 점은? “제가 삶에서 어려운 것은 말글살이입니다. 본보기로 삼으려고 애쓰고 있는 믿나라말(모국어)과 글이 되나라말(중국어), 일본꼴글말(일본어), 아메리카말(미국어)들과 뒤섞여 엉망입니다. 그것은 한복을 맵시 있게 입었는데 신은 일본 신발(조오리)이고 갓은 군인모자를 쓰고 있는 것과 같고 그 말소리도 들어 보면 아름답지가 못해 귀가 아리아리하고 소리도 흐려 들어도 맘이 놓이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 토박이말을 일본어로 번역하기가 매우 어려울 텐데 어떻게 하셨나요? “지은이가 옛말을 배우고 애써 찾는 모습을 제 아내인 우에노 미야코 씨가 보고 미야꼬 씨도 스스로 옛 일본말을 배우게 되어 이 덕분에 옮김을 잘 하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의 나라힘(국력)은 아주 세게 되었습니다마는 일부 문화부문을 빼놓고 그렇게 높지 못합니다. 참된 나라힘은 백범스승님께서 말씀 하셨던 바와 같이 문화의 힘입니다. 문화도 돈이 있어야 더 빛낼 수 있습니다마는 돈에 몰리는 문화는 바람 일기 앞선 초롱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는 사람이면 ‘문화는 곧 말과 글이다.라고 할 것입니다. 말과 글, 그 가운데서도 말은 문화유산과 자산 속에서 으뜸가는 것이기에 주시경 스승님께서 하신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낮아지면 나라도 낮아진다.’는 말씀을 죽을 때까지 잊어서는 안 되고 우리말과 거룩한 한글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손자 때 쯤 내려가면 나라도 민족도 없어지거나 볼품없는 꼴로 되어 버링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말과 거룩한 한글을 늘 죽을 때까지 바르게 배우고 바르게 쓰고 바르게 가르쳐야만 좋고 아름답고 바르고 꿋꿋하고 씩씩한 한국사람이 될 뿐 아니라 올바르고 앞설 새로운 슬기와 뜨거운 얼과 상냥한 맘과 앞선 얼살이(정신생활)와 얼누리(정신세계)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그와 같이 살고 나아가 주셨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