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유광남 작가] 그는 장예지가 무심코 내뱉었던 말에 의혹을 지니고 있었던 터였다. 그것이 확인 되었다. 이혼이란 이름은 광해군의 이름이었다.
“세자저하!”
구대일은 그대로 땅바닥에 몸을 조아렸다. 말단 관직의 주서가 언제 세자를 만날 길이 있었겠는가. 구대일은 몸을 떨었다. 광해군이 그런 구대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장예지에게 손짓했다.
“그대는 나와 함께 가야겠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니라.”
장예지는 오표의 냉정한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따르겠나이다.”
광해군을 측근에서 보필하는 시위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오표는 뒤로 물러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몸에는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살인 병기들이 여러 종류가 숨겨져 있어, 자칫 하다가는 광해군을 노리는 간자로 오인 받을 수도 있었다. 만일 몸수색이라도 당하게 된다면 꼼짝도 못하고 당할 판이었다.
‘대단히 운이 좋은 여인이다.’
오표는 돌아서서 물러나면서도 이상하게 안도감이 들었다. 어쩌면 장예지를 죽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조금이나마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오표는 청계천변을 걸으며 멀리 북쪽의 고향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여진을 통일한 누르하치의 밀명을 받고 고향을 떠나 온 지가 벌써 7년이 넘었다. 부쩍 가족들의 얼굴이 스쳐가며 누이동생의 해맑은 모습이 그리웠다.
장예지는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난 것을 실감했다.
‘자객이었다. 날 죽이려는? 누구의 소행이겠는가?’
여진의 아율미를 떠올렸다. 성격이 강하고 괴팍하긴 하지만 정도에서 어긋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은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만일 아율미가 그럴 생각이었다면 애초 이렇게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광해군은 세자의 거처에 도착하자마자 주변을 물리치고 장예지와 독대를 하였다.
“김충선은 지금 어디 있는가?”
장예지는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막상 세자 광해군으로부터 질문을 받자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말꼬리를 흐리는 장예지를 서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광해군의 눈에는 미묘한 갈망이 떠올라있었다.
“이순신을 방면하고 함께 있는가?”
“그럴 것입니다.”
“그럴 것이다......추정이란 말이지? 그렇다면 따로 행동하고 있다는 말인가?”
장예지는 차마 납치를 당했었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스승님은 소녀와 길이 다르옵니다. 그 분은 구국을 위하여 즉각 전선으로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을 구한 후, 함께 남해로 떠났다는 말이냐? 그러냐?”
“이순신장군을 어버이처럼 섬기고 있으니 필경 그리 하지 않았겠나이까?”
광해군의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스쳐갔다.
“김충선이 내게 약속했다.”
그 약속은 장예지도 더불어 들었었다. 익호장군 김덕령을 대신하여 광해군의 충성스러운 신하가 되겠다는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