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스승님은 신의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입니다.”
광해군이 쓸쓸하게 미소 지었다.
“왕도에도 물론 신의의 귀중함을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듣고 외웠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었느니라. 왕도를 엄숙히 지켜야 하는 나도 못했거늘, 그 누가 신의를 지킬 수 있노라 자신 하겠는가?”
장예지의 정혼자이던 익호장군 김덕령을 지켜주지 못했던 것을 말함이었다.
“스승님을 신뢰하소서.”
장예지가 위안처럼 내 뱉을 수 있는 말이었다.
“김충선은 이순신과 더불어 내게 왔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방면된 직후 서애대감을 찾아갔다. 은밀히 새벽에.”
광해군의 노기를 띤 음성에 장예지는 화들짝 놀랐다.
“그...그렇습니까?”
“너도 놀라는구나? 나 역시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다. 그들이 서애대감을 방문해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모두 들었다.”
“......”
장예지는 묵묵히 광해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난 그들의 말을 절대 신뢰할 수 없다.”
광해군의 표정이 냉담해졌다. 장예지는 이순신과 김충선을 위해서 어떤 변명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광해군 앞인지라 조심스럽게 의중만 짚을 뿐이었다.
“스승님은 단지 이순신 장군님을 경외하실 뿐입니다.”
광해군의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이순신이 청탁을 했다고 한다.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할 수 있도록 서애대감에게 말이다.”
장예지는 얼핏 이해되지 않았다.
“넷?”
“그래...... 너도 인정할 수 없는 일이지? 누가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하오시면...?”
“이순신은 절대 그럴 위인이 아니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장예지도 사실 그 말은 믿기 어려웠다. 이순신은 결코 그런 부류의 인물이 아니었다. 그의 강직함은 도가 지나칠 정도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어떤 급박한 일로 서애대감을 만났단 말인가?
“그렇습니까?”
“그렇지. 맞지. 김충선, 너의 스승 역시 쉬운 인물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이 서애대감을 만나서 기껏 자리 타령이나 했다고?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로다.”
장예지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 스승 김충선이 열고자 하는 새 하늘에 대해서 광해군에게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난감했다. 광해군의 의심은 사실이 아닌가.
“저하, 고정하시옵소서.”
“그들은 뭔가를 작당하고 있다. 분명 그러 할 것이다.”
“그걸 리가 있사옵니까?”
“그럴 리가 있으니 하는 말이다. 난 짐작할 수 있다.”
“저하......?”
광해군의 눈빛이 무섭도록 빛났다.
** 유 광 남 :
서울 생으로 대중성 있는 문화콘텐츠 분야에 관심이 있으며 특히 역사와 팩션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학에서 스토리텔링을 5년 간 강의 했으며 조일인(朝日人) ‘사야가 김충선(전3권)’ 팩션소설 ‘이순신의 반역(1부)’ 등을 출간 했다. 현재 '스토리 바오밥'이란 전문 작가창작 집단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