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유광남 작가] 내관의 여자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내시의 몸으로 여자를 취할 수 있겠는가? 진상이 알려진다면 궁궐이 크게 시끄러워질 수 있는 일이었다. 고명수는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런 인사는 사양일세.”
“주의 하겠나이다.”
고명수 내관은 화제를 돌렸다.
“상감마마를 뵈었던 일은 어찌 되었는가?”
“도승지 영감을 만나라 하셨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안내하지. 따라 오시게.”
고명수는 직접 사헌부의 지평 강두명을 승정원으로 안내하였다. 임금을 측근에서 모시는 내관이 일개 지평을 위하여 길을 나서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승정원 입구에서 그들은 관리 한 명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소생은 승정원 주서 구대일이라 하옵니다. 어인 용무 시온지?”
“도승지를 뵈러왔소.”
강두명은 다소 힘이 들어 간 눈빛으로 거만하게 대꾸했다. 구대일은 눈치가 매우 빠른 인물이었다. 제법 나이가 든 내관이 함께 한 것으로 미루어 평범한 신분 같지는 않았다.
“동행이시옵니까?”
내관 고명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닐세. 난 이만 돌아갈 것이야.”
구대일은 황급히 그의 앞을 가로 막았다.
“혹시 상감마마를 모시는 상선 영감 아니십니까?”
고내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대는......?”
구대일은 호들갑을 떨었다.
“맞군요. 맞았군요. 멀리서 상감마마를 수행하시는 모습을 뵌 적이 있었습니다.”
“그...그런가.”
구대일은 자신의 눈썰미에 흡족해 하면서 떠벌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참 운이 좋은 날인 모양입니다. 평소 뵙기 어려웠던 분들을 거듭 만나는 행운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강두명은 상대가 주접을 많이 떠는 인물이라고 간파하였다. 이런 작자가 승정원에 있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 사헌부 지평이요. 강두명이라 하오.”
사헌부는 문과를 급제하고 청렴함과 강직함을 두루 겸비한 젊고 패기 있는 인재들로 구성되어 있는 기관으로,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정확히 판단하여 직언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강두명 역시 의외의 직무를 수행하는 위인이었다.
“아! 강지평님.”
구대일은 반색을 하며 강두명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여기서는 제가 안내를 하겠습니다. 이리로 들어오시지요.”
강두명은 내관 고명수와 작별을 고하고 구대일을 따랐다. 승정원의 내부를 가로 지르며 그가 물었다.
“도승지 영감은 무슨 일로 뵈려는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