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도승지 오억령은 즉석에서 서찰을 작성했다. 내용은 조정의 공문을 유실하여 임금에게 근심을 안겨 주었으며 비변사에게 혼란을 야기 시킨 죄로 감금되어 있는 선전관 조영에게 관용을 베풀자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임금의 죄를 대신 누명쓰고 붙잡혀 있는 조영을 석방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논지였다.
“그런데 주서, 구대일이란 자는 어떤 자 입니까?”
도승지의 눈썹이 치켜졌다.
“구주서를 아는가?”
강두명은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오나 다소 발칙한 면이 없지 않아서.”
“하하하, 풍류를 아는 선비일세.”
“풍류라 하시면?”
“구주서 말이야... 가끔은 뚱딴지 같이 엉뚱한 구석이 있네만 임기응변(臨機應變)이 좋네. 일이 신속하고 음주에 가무를 아주 즐기는 편이지.”
사헌부의 강두명은 한 마디로 그를 폄하했다.
“한량(閑良)이로군요.”
“그러나 승정원의 직무에는 꽤 충실하다네.”
“그렇습니까?”
강두명은 약간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저 놈이!’ 하고 구대일은 인상을 구겼다. 처음부터 탐탁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만일 이순신의 이름을 그가 거론하지 않았다면 도승지와의 대화를 엿들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구대일이 유일하게 존경하는 친구 김충선의 일이었기 때문에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명이라면서 의금부에 감금되어 있는 조영이란 선전관을 풀어라!’는 것이 도승지와 사헌부 지평 강두명 사이의 요지였다.
‘선전관 조영이라면......?’
승정원 주서 구대일의 머리가 전광석화처럼 회전하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염려스러웠다. 이 내용을 김충선에게 어찌 전달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이울은 향을 피웠다. 금산성의 황량한 들판에서 고립되어 죽어간 의병들의 혼령을 위로 하고자 했다. 제사를 위하여 떡과 과일, 산적 등을 준비하였다. 축문(祝文)은 금산의 전 현감이 읽어내려 갔다.
“에, 애통하다...내 고향 산천에서 왜적들의 침략을 온 몸으로 장렬히 가로막고,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이여, 그들의 기개에 살아남은 자들이 부끄럽구나. 눈물은 강이 되어 흐르고 후회는 준령처럼 아득하고 적막하구나. 이제 엎드려 소망하니 부디 왕생극락(往生極樂) 영생불멸(永生不滅)의 망자로 고국산천을 수호해 주기를......”
현감은 진심으로 애통한 표정이었다. 이울을 비롯한 주변의 참석자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특히 의병장 고경명의 손자 고진규(高珍奎)는 통곡(痛哭)하였다. 금산성의 1차 전투에서 조부와 삼촌 고인후를 잃고 그 다음 해는 부친 고종후를 잃은 슬픔이 극에 달해서 혼절할 지경이었다.
“끄으으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