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또한 2차 전투에서 몰살당한 조헌 의병장과 영규대사 등 의병과 승려 700 여 구의 시신을 수습했던 의병장 조헌의 제자 박정량(朴廷亮)과 전승업(全勝業)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그 날의 참상을 되새기며 울부짖었다. 이울은 그들을 부둥켜안고 함께 울었다. 고진규와 전승업은 각기 아버지와 조부, 스승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조선을 침범한 왜적들에 대해서 철저한 원한을 품고 있음이 당연했다. 이울은 그들과 따로 한적한 곳에 자리를 마련하고 술을 마셨다.
“어떻게들 지내십니까?”
이울은 우선 의병장 조헌의 제자들에게 물었다.
“울화통을 간신히 참고 있을 뿐이지요.”
박정량이 가래 끓는 소리를 냈다.
“무슨 말씀이온지?”
박정량은 기개가 남다른 중봉(重峯)의 제자였다.
“임금께옵서 하는 짓을 모르신단 말입니까? 아니, 지금이 어디 시기인데 부친을 압송하고 백의종군을 시키신단 말입니까? 그게 정신이 올바른 임금님이 하실 일입니까?”
전승업 역시 혈기가 방자했다.
“백 번 잘 못하신 처사입니다. 조선의 희망이 뉘십니까? 이순신 장군을 그리 대접해서는 아니 됩니다. 조선에 주둔한 명군들은 적을 몰아낼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이런 중대한 시기에 장군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행위가 어찌 옳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울은 정색했다.
“하오나, 말씀이 듣기 거북합니다. 상감마마를 욕되게 하시면 그건 선비로 가당치 않습니다.”
불쑥 고진규가 끼어들었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소인은 왕과 신료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고진규는 떡 벌어진 체구에 부리부리한 눈매를 지니고 있는 장사(壯士) 다운 청년이었다.
“할아버지께서 금산성 전투를 진두 하셨을 때 관군은 꽁무니를 빼고 합세하지 않았습니다. 아버님이 임종하신 진주성 전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고요. 대관절 그때 왕은 어떠하셨습니까?”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고 있었지요.’라는 말이 목구멍 까지 차올랐으나 이울은 내뱉지 않았다. 그건 일국의 임금답지 못한 부끄러운 행위였다.
박정량이 의병장 고경명의 손자에게 술을 부었다.
“모조리 피난을 갔었지요. 우린 목숨을 걸고 전쟁을 치루고 있을 때!”
전승업이 바닥에 침을 퉤 하고 뱉었다.
“이 더러운 놈의 세상.”
이울은 짐짓 노기를 부렸다.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전승업이 눈을 째려보았다. 울면서 스승을 애통해 했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싸늘했다.
“이...공?”
이울은 담담한 심정으로 둘러봤다.
“불충한 선비들이시오? 그대들은?”
“불충이라 말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