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이순신은 잠에서 문득 깨어났다. 꿈자리가 몹시 사나웠다. 미열이 올라 얼굴이 화끈거리고 공기가 답답하여 참을 수가 없었다. 임시로 마련해준 관사(官舍)는 제법 정갈하였으나 편하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전란이 발생한지 5년이 지나도록 편안한 잠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던 것 같았다.
‘주적을 몰아내기 전에는!’
왜적을 물리치기 전에는 절대 안락한 보금자리는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터였다. 그가 결행해야 할 위업은 참으로 막중한 것이었다. 이순신은 밖으로 나왔다.
‘너희들에게 거는 기대가 참으로 크다.’
이순신은 만주로 떠나간 항왜 장수 김충선과 둘째 아들 울을 떠올렸다. 그들도 혹여 이 달을 보고 있으려나? 달빛은 심난하였다. 밝지 않았으며 안개에 휘감긴 듯 흐리기까지 하였다. 이순신은 눈을 지그시 감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때였다. 인기척이 담장 밖에서 일어났다. 미세한 소음이었으나 무장 이순신은 감지할 수가 있었다.
‘칼을 뽑는 소리다!’
이순신은 긴장감을 느꼈다. 자신을 보호해줄 능력을 지니고 있는 젊은 장수들은 현재 이곳에 머물고 있지 않았다. 자신이 머물고 있는 관사 건너 방에는 큰아들 회와 조카가 잠들어 있을 터였다. 이순신은 자세를 바싹 낮추면서 한 구석의 정원으로 일단 몸을 숨겼다.
사삭—삭---
옷자락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와 동시에 두 인형이 관사의 담장을 귀신처럼 넘어왔다. 이순신이 지켜보니 두 명 모두가 복면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민첩하게 몸을 놀려서 이순신이 잠을 청하던 방을 엿보았다. 마침 이순신은 호롱불을 켜두지 않은 상태였다.
‘자객들이다!’
이순신은 내심 놀라면서 그들을 상대할 방도를 빠르게 모색했다. 큰 아들과 조카의 안위가 가장 염려되었다.
‘대관절 어떤 놈들이기에 날 노린단 말인가?’
이순신은 추측했다. 설마 왕이? 그럴 리가 없다고 자문자답하였다. 당금의 왕이 그런 무모한 행동을 추구했을 리가 없을 것이다. 자신의 역심을 공개한 적은 없지 않은가. 이순신의 시선이 그들이 들고 있는 시퍼렇게 번뜩이는 칼끝에 닿았다.
‘바로 놈들이구나!’
이순신은 살의가 치솟아 올랐다. 자객들이 손에 들고 번쩍이고 있는 칼은 얄팍한 일본식 칼이었다. 이순신은 몸을 더듬었으나 칼을 휴대하고 있지는 않았다. 산책 나온 몸이니 어떤 병기가 있겠는가. 단지 하나, 호신용 단검은 각반 아래로 착용되어 있었다.
‘너라도!’
이순신은 단검을 우선 뽑아 들었다. 여차하면 달려들 생각이었다. 일본 자객들은 이순신의 관사 문을 슬며시 잡아 당겨보고 있었다.
끼익--
관사의 문이 낡은 신음성을 토해냈다. 그들 자객은 유연한 몸짓으로 이순신이 머물던 관사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순신은 그와 동시에 소리를 죽여서 회와 조카가 잠들어 있는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오차는 허용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