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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총부리도 두렵지 않은 파주의 여전사 ‘임명애’

시로 읽는 여성독립운동가 열전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총부리도 두렵지 않은 파주의 여전사 ‘임명애’

                                         이 윤 옥

 

심학산 깊은 골

고고한 학 고요히 내려앉은

맑고 고운 땅

  

교하리 장터에

낭자히 흐르던 핏자국이

웬 말이냐

  

동포의 가슴에 겨누던

일제의 총부리 맞서

 

당당히 호령하던 여전사 

만세운동 앞장서다

 

쇠창살 속 갇혔어도 

불굴의 그 투지 굽히지 않았어라

  

   
▲ 임명애 애국지사 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1920년 초 찍은 것으로 추정)

임명애(林明愛,1886. 3.25 ~ 1938. 8.28)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학자 율곡이이와 청백리 황희 정승의 고장 파주에서도 3․1만세운동은 비껴 갈 수 없었다. 아니 비껴가는 게 아니라 불같이 타올랐다고 해야 옳을 정도로 거센 저항의 역사를 갖고 있다.

 파주는 지리적으로 서울 가까이에 자리 할뿐더러 북으로 가는 길목이었으므로 다른 지역에 견주어 서울에서 일어나는 독립운동 활동에 발 빠르게 접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 있었다.

따라서 파주지역은 3․1만세운동 당시에도 서울의 상황이 잘 전해졌으며, 이는 파주의 3․1만세운동에 일정한 활력소로 작용하게 되었다.

 경기도 파주가 고향인 임명애 애국지사는 1919년 3월 26일 김수덕· 김선명· 염규호 등과 와석면 일대의 독립만세 시위를 이끌었다. 이보다 앞서 임명애 애국지사는 구세군(救世軍)으로 3월 10일 교하리에 있는 공립보통학교에서 이 학교 학생 1백여 명을 동원하여 독립만세시위를 펼쳤다.

임 애국지사는 3월 25일 김수덕· 김선명 등과 함께 염규호 집에서 염규호가 만든 ‘3월 28일 독립만세 시위 계획’격문 60여 장을 인쇄하였다. 인쇄된 격문은 김선명· 염규호· 김창실과 나누어 주어 구당리· 당하리 일대 주민에게 배포케 하였다.

그리하여 3월 26일에 7백여 명의 시위군중이 모이자, 임명애 애국지사는 앞장서서 이들을 이끌어 면사무소로 달려가 면서기들에게도 휴무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어 주재소로 행진하던 중, 연락을 받고 미리 대비하고 있던 일본 경찰의 발포로 최홍주가 현장에서 순국하고 시위군중은 해산되었다.

임명애 애국지사는 결국 체포되어, 그 해 9월 29일 이른바 보안법,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임명애 애국지사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 4권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