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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박노해 시인이 열어준 “다른 길”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31]

   
▲ <나눔문화>에서 전시회의 감동을 나누고자 전시회의 기록들을 정리한 책 표지《다른 길 열리다(회원용비매품)》
[그린경제/얼레빗=양승국 변호사]  지난 25일부터 3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전시관에서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 <다른 길>이 열렸었지요? 따로 홍보도 하지 않고 기업체 등에 표를 뿌린 것이 아닌데도, 27일간 35천여 명의 사람들이 전시장을 다녀갔습니다. 영화로 치면 1,000만 관객이 든 것입니다. 전시회가 끝난 후 전시회를 주최한 <나눔문화>에서 전시회의 감동을 나누고자 전시회의 기록들을 정리한 다른 길 열리다(회원용비매품)라는 책자를 냈습니다.  

전시 코디네이터인 김예슬(김예슬은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고 선언하고는 다니던 고대를 자퇴한 당찬 의식 있는 여성)은 머리말에서 박노해 시인과 함께 천 일간의 준비, 27일간의 전시를 진행하며 감동의 순례 행렬그 모든 순간들을 지켜봐온 코디네이터로서, 각자 나만의 다른 길을 찾아나서는 디딤돌로 삼기를 바라며 우리 시대 희망의 씨알 하나 남기고자 이 책을 펴낸다고 했습니다. 김예슬은 말합니다. 

현대문명이 정점에 달한 시대에 박노해 시인의 사진은 우리가 돌아 나아가야 할 좋은 삶의 원형을 그려 보였습니다. 자신의 두 발로 대지에 뿌리를 박고 자급자족하는 만족의 삶,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살아가는 단순하고 단단하고 단아한 삶, ‘함께하는 혼자의 우애로움 속에 진정한 나를 찾아 사는 삶. 인간이기에 어찌할 수 없음의 주어진 한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있음의 가능성에 최선을 다해 분투하면서 우리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고 말하는 사진 속 사람들의 모습은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숨 가쁜 질주 속에 우리가 잊고 살아온 진정 삶다운 삶에 대한 소망을 울컥일깨웠습니다. 

책을 펼치니 첫 글이 시작하면서 나오는 사진은 사진전을 보려고 길게 늘어선 사람들입니다. ! 그렇습니다. 저도 성공회대 인문공부 11기 동기들과 인왕산 토요 등산을 하고 내려와, 동기들에게 사진전을 보여주고자 저로서는 3번째로 전시장을 찾았는데, 전시관에 입장하려면 2시간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고 하여 포기하고 돌아섰던 적이 있지요.  

이 늘어선 행렬을 보고 사람들은 순례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누군가는 혁명이라 불렀으며, 어떤 이들은 치유라고 했고, 또 어떤 이들은 희망이라 했습니다.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을 박시인의 사진전으로 끌어들였을까? 아이디가 <바보아저씨>인 분은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다른길>은 혁명이다. 조용하지만 영혼을 파고들고 가슴을 울리는 진정한 혁명. 전시회에 발길이 이어지고 일부 관람객들은 눈물까지 흘린다고 한다. 아마도 우리 기억에 사진전 하나가 이토록 사람들을 흔들었던 일은 없다. <다른길>에 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아날로그 사진전 하나에 왜 그리 전율할까. 바다, 호수, , 나무, , 태양, 화산, , , 감자, 물고기 그리고 사람들, 자연과 조화되어 살아가는 모습. 우리들이 거기 전율하는 이유는 그만큼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처의 크기가 광범위하고 깊다는 의미다. 좀 쉬어가자. 돌아보자. 

그렇게 오래 기다렸다가 들어갔으니 전시된 사진들을 꼼꼼하게 가슴으로 봐야 하겠지요? <시간을 잊어버린 사람들> ()의 시작글에서는 세계에서 발걸음이 가장 빠른 나라에서 평균 관람 시간 2시간, 최대 관람 시간 7시간, 재방문도 모자라 6번까지 다시 찾은 전시라고 하고 있습니다. 아이디가 <담요>인 분은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맑은 영혼의 사람들이 내뿜은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잘 웃고 맑게 웃고 티끌 없이 웃는다. 웃을 때는 그냥 웃는다. 전시를 보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연 뒤 주위를 보니 모두가 향기로운 사람들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전시를 보고 있는 이 사람들이 있어서 감사했다. 

전시관의 벽을 채운 사진들은 거의 다 흑백사진, 그것도 아날로그 필름의 사진입니다. 전시장에는 박시인이 지난 3년간 아시아 전역을 기록한 흑백 필름 사진 7만여 컷 중 엄선된 11컷의 작품이 걸렸었지요. <이토록 찬연하고 은밀한 흑백 사진의 세계> ()을 여는 글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흑과 백, 본질만 남은 그의 사진에서는 그 계조의 깊이만큼이나 다양한 삶의 목소리들이 울려 나온다. 그 두런거림을 따라 흑백의 은밀한 미로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체험, 흑백 아날로그 사진을 처음으로 경험한 많은 관람객들에게, 가장 전통적인 것이 가장 신선한 매력으로 전해지는 반전의 목격이라니... 이번 전시를 통해 사진작가 박노해는 독창적이면서도 독보적인 위상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저도 그 동안 칼라사진만 찍어오다가 작년부터 한 장, 두 장 흑백사진을 찍어보는데, 그러면서 조금씩 흑백사진의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제 생각엔 흑백사진이 칼라사진보다 깊이가 있고, 그 깊이에서 뭔가 우러나오는 것이 있는 것 같더군요. 아이디가 Aho인 분은 이렇게 글을 남겼네요. 

좋은 사진을 대하고 있노라면 바라만 봐도 몰입이 되는 순간이 있다. 입이 벌어지기도 하고, 생각에 잠기게도 하고, 다시 돌아보게도 하는... 박노해 사진전이 그러했다. 가슴이 먹먹해지며 마냥 바라만 보게 했다.” 

   
▲ 박노해 시인의 사진 "아기 버끄리를 안은 소녀"

책에는 관람객들로부터 가장 사랑받은 12점의 작품 사진도 실려 있습니다. 그중에서 하나만 들어볼까요? ‘아기 버끄리를 안은 소녀사진인데, 이 사진을 선정하면서 <그녀들이 사랑한 사진>이라고 제목을 달았네요. 선정한 이유를 들어볼까요? 

소녀, 사랑을 품다. 가수 이효리가 선택한 사진. 파키스탄의 아기 버끄리를 안은 소녀’. 소녀는 아침마다 어린 버끄리들을 꼬옥 안아주면서 제가 안아주면 다 나아요.”라고 말한다. 이 사진은 많은 소녀들에게, 그리고 그 마음속에 소녀가 살아있는 여성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세상을 다 가졌어도 진정 사랑이 없고 우정이 없다면 인생은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시인의 글을 읽으며 그녀들은 살아가며 진정 가슴에 무엇을 품어야 하고, 무엇을 행하며 살아야 하는지 가슴 뜨겁게 느끼며 마음 뭉클했던사진으로 꼽았다. 

박시인은 전시된 사진마다 10줄 미만의 글을 달았습니다. 저는 그런 글 하나 하나를 읽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울림을 느꼈는데, 박시인은 단 10줄의 캡션이 나오기까지 150쪽의 글을 쓰고 줄이고 다듬었다고 하는군요. 그렇군요. 그렇게 갈고 다듬고 압축했으니, 그런 영성이 있는 글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군요. 그 울림이 있는 글 모두를 보여드리고 싶지만, 그 중 인도네시아 타와르 호수의 고기잡이배를 찍은 사진에 대한 글 하나만 인용해보겠습니다. 

하늘빛이 맑은 물에 그대로 비쳐 하늘 호수라 불리는 타와르 호수. 아버지는 고기를 잡고 아들은 낡은 배의 물을 퍼낸다. 아버지와 아들은 고요한 호수처럼 말이 없어도 서로의 몸짓에 의지하며 서로를 깊이 느끼는 듯하다. 부모란 이렇듯 아이와 한배를 탄 좋은 벗이 되어 그저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고 삶으로 보여주며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사이가 아니겠는가. 

이번 사진전처럼 눈물을 흘리는 관람객이 많았던 사진전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손수건을 비치해달라는 부탁도 많았지요. 제가 잘 아는 58년 개띠 아줌마도 전시장을 도는데 주책없이 눈물이 나오더랍니다. 김현진씨는 사진을 보고 눈물이 난 건 처음입니다. 선생님의 전부가 담긴 사진 속에 눈물이 났습니다. 전해주시려던 그 메시지가 제 삶 속에서 향기롭게 피어나기를이란 글을 남겼네요. 

전시회에는 젊은이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2030 여성들이 관람객의 60%를 차지하였습니다. 10대들도 많이 왔습니다. 그것도 부모 손에 억지로 이끌려온 것이 아니라 야자(야간자습)도 학원도 빼먹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온 당당한 10대들입니다. 전시장을 찾은 젊은이들을 보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인이 세계를 돌며 사진을 찍고 그걸 젊은이들이 보며 눈물을 흘리는데, 누가 우리 사회에 희망이 없다고 하는가?”라고 했고,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은 여기 모인 젊은이들이 우리 시대 희망이다. 나는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라고 합니다. 

   
▲ 박노해 시인의 사진 "타와르 호수의 고기잡이배"

영화로 치면 천만 관객이 들었다는 것이며, 그중에서도 젊은이들이 많았다는 것, 10대들이 학원도 빼먹고 스스로 찾아왔다는 것, 또 그들이 전시장을 돌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만큼 젊은이들이 지금의 시대상황에 대해 무언가 타는 목마름을 느꼈다는 것이며, 무언가 지금의 길과는 다른 길을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이런 그들 앞에 박시인의 <다른 길>이 열렸으니, 그들이 열광하며 찾아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다른 길>은 단지 고려 사항에 불과한 것이 아닌 우리 시대가 꼭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침몰하는 세월호와 함께 젊은 꽃들이 속절없이 수장되는 것을 보며 그토록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눈물을 흘린 것, 이번 시도 교육감 선거에서 전체 17명의 교육감 중 13명의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것 또한 이제는 우리가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갈급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길 열리다처럼 이제 우리 앞에는 다른 길이 열려야 하고, 이미 그 길은 열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