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세계 으뜸 글자 “한글” 그 한글을 기리는 박물관이 세워졌다. 한글날(10월 9일) 개관하는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이 그것인데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터 안에 들어섰다. 연면적 1만1322m²(약 3,425평),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1만1,000여 점의 한글 관련 유물이 전시된다.
미리 둘러본 박물관. 모음을 토대로 하늘, 사람, 땅을 형상화한 국립한글박물관이라 하지만, 뭘 상징했는지 얼른 들어오지 않는다. 국립중앙박물관 입구를 거쳐 500m 정도 걸어야 하는데 아직 팻말도 없고 박물관 들머리가 어딘지 우왕좌왕하게 된다. 물론 개관일이 남아 있으니 그 안에 안내 시설을 정비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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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박물관 전경 |
▲ 상설 전시실에 들어서면 한글을 상징하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확대해 금색 글자로 새겨 넣은 벽이 보인다
먼저 2층 상설 전시실에 들어서면 한글을 상징하는 기둥과 훈민정음 해례본을 확대해 금색 글자로 새겨 넣은 벽이 보였다. 박물관의 취지를 돋보이게 하는 긍정적인 면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뭔가 막혀 있다는 느낌이 들어 답답한 생각도 들었다. 상설 전시실(1240m²·약 375평)이 1부(한글 창제), 2부(한글의 보급, 확대), 3부(근현대의 한글)로 나뉘어 있는데 역시 비교적 좁고 내부가 어수선한 생각도 들었다.
상설전시실은 ‘한글이 걸어온 길’이란 주제로 구성돼 한글의 과거, 현재, 미래를 두루 살필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었다. 훈민정음 해례본, 용비어천가, 월인석보 같은 세종이 한글을 창제할 때의 중요 유물들을 만날 수 있다. 물론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훈민정음 해례본은 잠시 빌려온 것이다.
그런데 칭찬해주고 싶은 것은 그동안 한글은 언문이라 하여 사대부들로부터는 무시당했다는 통설을 뒤집는 유물들을 전시한 것이다. 그것도 정조임금이나 명성황후 같은 최상위 계층의 사람과 함께 위대한 학자며 예술가인 추사 김정희 같이 이들이 쓴 한글 편지를 전시함으로써 한글은 왕실이나 사대부들로부터도 사랑받았음을 증명한 것이다. 정조가 외숙모인 여흥 민씨에게 보낸 한글편지에서 “족건(버선 일종)이 작아졌으니 슈대(조카 이름)에게 신기옵쇼서.”라는 편지는 관람객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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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황제가 국문선포를 함으로써 드디어 한글은 나라의 공식 글자가 되었다. |
▲ 자음과 모음이 만나면 어떤 글자가 되는지 디지탈로 보여준다. 관람자가 직접 체험할 수 있다.
▲ 자음과 모음이 만난 뒤 글자를 보여줌과 동시에 소리를 들려준다
또 조선시대에 썼던 외국어 학습서 예를 들면 《첩해신어》, 《몽어유해》 따위 일본어·만주어·불어를 공부했던 책들을 전시했다는 것이다. 또 1443년 한글 창제를 비롯해 고종의 국문 선포 등 100년 단위로 중요한 사건을 형상화한 모형, 훈민정음 창제 원리를 영상화한 길이 7m의 대형 화면, 한글 구조를 설명하는 터치스크린이 같은 것들도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글놀이터’는 유아와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즐겁게 놀면서 한글이 가진 힘과 의미를 경험할 수 있는 체험 공간이다. 제1부 ‘쉬운 한글’에서는 한글을 만든 원리를 익히고, 제2부 ‘예쁜 한글’에서는 한글과 그림으로 생각을 표현하고, 제3부 ‘한글문예동산’에서는 한글과 관련된 문학과 예술을 특별전 형식으로 만나볼 수 있다. 그 첫 번째 전시로 ‘자유로운 세상을 꿈꾼 영웅, 홍길동’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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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놀이터’에는 유아와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즐겁게 놀면서 한글이 가진 힘과 의미를 경험할 수 있는 여러가지 체험 공간이 있다. |
▲ ‘음식을 만드는 법을 적은 글’이란 책 《음식방문(飮食方文)니라》. 설명은 그저 "음식방문"이라고만 쓰고 지은이가 누군지 언제 쓴 책인지 설명이 없다.
▲ 조선 중기의 사역원(司譯院) 역관(譯官) 강우성(康遇聖)이 일본어 학습을 위하여 편찬한 책 《첩해신어(捷解新語)》
다만, 아직 시작이어서 그런지 여러 가지 문제점도 문에 띄었다. 우선 유물이나 작품에 대한 설명이 찾기 어려운 곳에 있거나 작은 글씨 그리고 유리에 투명한 글씨로 붙여 놓아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문제는 시급히 개선해야 할 듯싶었다. 또 《음식방문(飮食方文)니라》 곧 ‘음식을 만드는 법을 적은 글’이란 책은 신묘년(1891년) '문동(文洞)'이라는 호(또는 택호)를 가졌던 사운종택의 숙부인 전의이씨가 한글로 필사한 책인데 여기 전시된 것은 《음식방문》이라고 책 이름만 쓰여 있어 누가 언제 쓴 책인지 알 수 없게 된 것도 있었다.
외솔회 김석득 명예회장은 돌아본 뒤 “고생해서 한글박물관을 이렇게 훌륭하게 차린 것은 우선 칭찬한다. 그러나 한글이 예술과 어떻게 어울려 더 먼진 작품이 나올 수 있는지 설명이 좀 부족하다. 또 주시경 선생의 가로쓰기 문화는 글자가 기계화로 가는 혁명적인 전환인데 이에 대해 소홀히 한 점은 아쉽다. 한 가지 더 한글은 소수의 글자에 가획의 원리를 더해 글자를 무한대로 만들 수 있다는 뛰어난 점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이 없는 것은 앞으로 고쳐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한글학회 김슬옹 학술위원은 “열심히 준비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을 소홀히 한 것은 옥의 티다. 먼저 발음기관과 발음작용을 본뜻 기본 다섯 자 가운데 네 자가 잘못됐다. 《훈민정음해례본》에 따르면 ㄴ은 혀끝이 윗잇몸에 닿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엔 윗잇몸에서 많이 떨어져 있다. 또 ㅁ은 입은 다문 모양이어야 하는데 입 벌린 모양으로 되었고, ㅇ은 목구멍 목젖 밑 목 윗부분에서 상형한 것인데 밑으로 지나치게 내려왔다.”라고 지적한다.
이어서 “세종특별전 취지는 좋은데 오목해시계는 세종의 위대한 민본주의 과학정신과 소통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글자를 모르는 백성들과 어린이까지 볼 수 있도록 시각 표시를 동물(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표시해야 했는데 여기는 이와 달리 전문가도 알기 힘든 초서체 한자로 되어 있다.”며 유물 복제 부분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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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 뒤 외솔 최현배 선생이 펴낸 《중등조선말본. 이때만 해도 한자말 "문법"이 아닌 우리말 "말본"이었다. |
▲ 힌글로 버선 만드는 방 법이 쓰인 버선본
▲ 남북한의 같은 뜻 다른 말을 알아 볼 수 있다. 사람, 음식, 교육, 의상 따위로 나뉘어 있다. 남한은 "지하도", 북한은 "땅속길" 무엇이 더 감칠 맛 잇을까?
그런가 하면 서울여대 시각디자인과 한재준 교수는 “한글을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점에서 기쁜 마음이 든다. 다만, 박물관이 좁고 상징성이 부족하다. 박물관 건물이 뭘 말하는지 메시지가 불분명하고 전시에서는 세종이 왜 한글을 창제했는지 창제 당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창제원리는 무엇인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줄 도구가 없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한글박물관이라면 훈민정음 창제의 산실인 경복궁 수정전 가까이에 지어 수정전, 세종대왕 동상, 세종대왕 생가터(준수방)과 연계하는 큰 마당을 만들었어야 한다.”라고 아쉬워했다.
어쨌든 한글박물관을 세워졌고, 개관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글을 우리 국민이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얘기할 수 있는 박물관이 생겼다는데 우선 기쁜 일이다. 앞으로 더욱 박물관에 채찍을 가하여 더 멋지고 세계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박물관으로 거듭 나기를 우리 모두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