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신륵사 동대에 푸르른 잣나무숲 / 神勒東臺翠柏森
예성으로 갈 배가 이 숲에 머물렀네 / 蘂城歸棹滯林
나옹의 부도탑은 풍경이 말해주고 / 懶翁塔風鈴語
목로가 쓴 빗돌엔 바위옷이 끼어있다 / 牧老碑荒石髮侵
적석의 개인 구름 날빛이 훤하건만 / 赤石晴雲浮日色
여강 멀리 있는 나무 봄을 맞아 음음하네 / 驪江遠樹入春陰
왜 더디 가느냐고 사람들아 묻지 말게 / 傍人莫問遲徊意
끝도 없는 연파가 이 마음에 들어서야 / 無限煙波此心
▲ 낙산사 풍경
이는 다산 정약용의 시로 “신륵사 동대에 오르다(登神勒寺東臺)”입니다. 《다산시문집》 제3권에 나오는 이 시에는 풍경을 풍령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절집 처마 끝에 달려 있는 불구(佛具)의 하나인 풍경(風磬)은 ‘풍령(風鈴) 또는 풍탁(風鐸)’이라고도 부르며 예술사진을 찍는 사진가들의 손끝에서 아름다운 정경으로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풍경은 한자 뜻 그대로 바람이 내는 소리입니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 그 소리가 때론 은은하게 때론 크게 나기도 하지요.
그래서 풍경은 경세(警世)의 뜻을 지닌 도구로서, 수행자의 나태함이나 소홀함을 깨우치는 도구로 인식하기도 합니다. 풍경의 모습도 그것을 뒷받침 해주지요. 풍경 방울에는 물고기 모양의 얇은 금속판을 매달아두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것은 물고기가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행자는 잠을 줄이고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뜻을 상징합니다. 우리나라 절집에 가면 법당이나 불탑에 매달려서 뎅그렁 하고 바람이 불 때 마다 소리를 내는 풍경소리는 수행자가 아니라도 마음을 열게 해주는 아름다운 악기와도 같은 불가(佛家)의 물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