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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이천 년에 걸쳐 짓밟힌 우리말을 다시 일으켜 세우자

<우리말은 서럽다> 4. '중세 보편주의’와 관계없는 한문 문화

[한국문화신문 = 김수업 명예교수]  우리 겨레가 한문을 끌어다 쓰면서 우리를 잃어버리고 중국을 우러르며 굴러떨어진 역사를 ‘중세 보편주의’에 어우러진 문명의 전환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중국의 한문 문화에 싸잡혀 들어간 것이 중세 동아시아 보편주의에 어우러진 발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문은 그런 중세 보편주의를 이루어 내게 해 준 고마운 도구였다고 한다. 이런 소리는 이른바 중화주의자들이 셈판을 두들겨 꿍꿍이속을 감추고 만들어 낸 소리인데, 우리나라 지식인들까지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중세 보편주의’란 서유럽 역사에서 끌어온 말이다. 이 말은 르네상스 이전에 모든 유럽 사람들이 라틴말을 쓰면서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놓고 살던 시절[중세], 가톨릭[보편] 교회의 가르침[주의]을 뜻하는 말이다. 라틴말이 유럽에 두루 쓰인 것과 한문이 동아시아에 두루 쓰인 것이 닮았다고 섣불리 ‘중세 보편주의’를 끌어다 붙였겠지만 그건 터무니없는 소리다.  


우선 동아시아에는 고대를 받아서 근대로 넘겨주는 ‘중세’란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기원전에 만들어진 정치·사회 체제가 19세기 말까지 거의 그대로 되풀이되었을 뿐 아니라, 한문의 위세 또한 19세기 말까지 꺾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라틴말은 소리가 있는 입말이면서 글말이었지만, 한문은 소리 없는 글말뿐이었기 때문에 보편의 알맹이를 담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양의 중세 보편주의에서 진짜 알맹이인 ‘철학과 사상과 신앙의 보편성’이 동아시아에는 없었다. 있었던 것은 오직 여러 겨레들이 저마다의 빛깔을 모두 죽여서 한문이라는 그릇에 꾸겨 담아 중국의 아류로 들어가는 그것뿐이었다. 저마다 자유롭게 저들의 말로써 삶을 가꾸고 꽃피우며 살아갈 권리를 빼앗기고, 오직 중국의 한문으로 저들의 삶을 담아야 했으므로 수많은 겨레와 사람이 인권을 끝까지 짓밟히는 그것뿐이었다.  


그래서 서유럽이 겪었던 근대화와 자국어 문명은 맛조차 보지 못한 채로 오늘까지 살아와서 마침내 예순에 가까운 겨레들이 제 말을 버리고 중국말로 중국 사람이 되어 살아야 하도록 만들었고, 중국이라는 나라가 땅덩이 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싸잡을 수 있도록 만들었을 뿐이다. 
 

   
▲ 한글 덕분에 우리는 남의 나라에 복속되지 않았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이런 동아시아에서 우리만은 한글 덕분에 한문을 뿌리치고 중국의 소수 민족으로 싸잡혀 들어가지 않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빛깔을 가꾸고 길러서 인류 문명의 꽃밭에 남다른 꽃으로 자랑스럽게 뽐낼 길을 잃지 않았다. 이천 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한문의 올가미에 걸려 드넓은 대륙을 잃어버리고 갈수록 중국의 아류로 떨어져 살았으나, 이제부터는 죽은 나무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돋아 오르듯 우리만의 빛깔로 삶을 떨치며 인류의 꽃밭에서 자랑스럽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지난 이천 년에 걸쳐 짓밟힌 우리말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삶의 꽃은 말에서 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