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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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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차례’와 ‘뜨레’

[우리말은 서럽다 52]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누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멈추지 않고 모습을 바꾼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은 그렇게 움직이며 바뀌는 모든 것들과 더불어 살아가느라 슬기와 설미를 다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렇게 움직이며 바뀌는 모습을 알아보려고 만들어 낸 가늠이 ‘때’와 ‘적’이니, 한자말로 이른바 ‘시각’이다. 또한 그런 가늠으로 누리가 움직이며 바뀌는 사이의 길이를 나누어, ‘참’이며 ‘나절’이며 ‘날’이며 ‘달’이며 ‘해’며 하는 이름을 붙였다. 이것이 한자말로 이른바 ‘시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때’와 ‘적’을 냇물이 흘러가듯 쉬지 않고 흐른다고 느낀다. 그러면서 온갖 일이 그런 흐름 안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차례’는 이런 ‘때’와 ‘적’의 흐름에 따라 먼저와 나중을 가리는 잣대를 뜻한다.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을 먼저와 나중을 가려서 차례를 따지고 매기면 삶이 한결 가지런하다고 느끼며 마음을 놓는다. ‘차례’는 본디 한자말이었으나 이제는 그런 줄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지고, 본디부터 우리말인 줄로 알 만큼 되었다. 한자가 제 본디 소리를 허물어 버리고 우리말 소리에 안겨 들어왔기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참다’와 ‘견디다’

[우리말은 서럽다 51]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참다’와 ‘견디다’도 요즘 아주 뜻가림을 못 하고 뒤죽박죽으로 쓰는 낱말 가운데 하나다. 국어사전들도 두 낱말을 제대로 뜻가림하지 못한 채로 쓰기는 마찬가지다. 1) · 참다 : 마음을 눌러 견디다. · 견디다 : 어려움, 아픔 따위를 능히 참고 배기어 내다. 2) · 참다 : 어떤 생리적 현상이나 병적 상태를 애써 억누르고 견디어 내다. · 견디다 : 어려움이나 괴로움을 잘 참거나 배겨 내다. 3) · 참다 : 웃음, 울음, 아픔 따위를 억누르고 견디다. · 견디다 : 사람이나 생물이 일정한 기간 동안 어려운 환경에 굴복하거나 죽지 않고 계속해서 버티면서 살아 나가는 상태가 되다. 보다시피 ‘참다’는 ‘견디다’라고 풀이하고, ‘견디다’는 ‘참다’라고 풀이해 놓았다. 3)《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두 쪽 말을 서로 주고받아 풀이하지는 않았지만, 한 쪽만 다른 쪽 말로 풀이해도 두 쪽이 같아지기는 마찬가지다. 이들 두 낱말이 같은 뜻으로 쓰인다면 둘 가운데 하나는 사라져도 그만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다른 뜻을 지닌 두 낱말로 쓰던 것을 우리가 같은 뜻을 지닌 낱말로 쓴다면, 우리는 선조들에 견주어 세상을 절반밖에 알지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차다’와 ‘춥다’

[우리말은 서럽다 50]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우리처럼 해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의 제맛을 알뜰하게 맛보며 살아가는 겨레는 땅덩이 위에서도 많지 않을 것이다. 비슷한 위도에 자리 잡고 있어도 우리처럼 북쪽이 뭍으로 이어져 북극까지 열려 있고, 남쪽이 물로 이어져 적도까지 터져 있는 자리가 별로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은혜가 가없는 자연에 어우러져 살아가는 우리는 따스한 봄, 따가운 여름, 서늘한 가을, 차가운 겨울을 겪으면서 춥고 더운 느낌을 갖가지 낱말로 드러내며 살아간다. 말하자면, 바깥세상이 그지없이 베푸는 풍성한 잔치에서 우리는 갖가지 낱말로 알뜰하게 맞장구를 치며 살아가는 것이다. 자연의 잔치에 사람이 맞장구치는 낱말에서 가장 첫손 꼽을 것이 ‘차다’와 ‘춥다’, ‘뜨겁다’와 ‘덥다’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이들 네 낱말이 두 벼리(일이나 글의 뼈대)가 되어 자연이 베푸는 한 해 동안의 잔치에 알뜰한 맞장구를 치면서 살아간다. ‘차다’와 ‘춥다’는 한겨울 동지를 꼭짓점으로 하는 벼리가 되고, ‘뜨겁다’와 ‘덥다’는 한여름 하지를 꼭짓점으로 하는 벼리가 된다. 그래서 ‘차다’와 ‘춥다’는 ‘실미지근하다, 사느랗다, 서느렇다, 싸느랗다, 써느렇다,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이랑’과 ‘고랑’

[우리말은 서럽다 49]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농사짓는 솜씨가 달라지고 농사마저 사라질 지경이 되니까 농사에 딸린 말도 더불어 달라지거나 사라지고 있다. 경운기, 이앙기, 트랙터, 콤바인이 나오니까 극젱이(훌칭이), 쟁기, 써리, 고무래(곰배), 홀케, 도리깨가 모두 꼬리를 감추고, 따라서 따비와 보습도 사라진 지 오래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사람 목숨의 바탕인 농사가 사라질 수 없는 노릇이라면, ‘이랑’과 ‘고랑’은 끝까지 살아남을 낱말이다. 하지만 이들마저 뜻을 가리지 못하게 되었고, 국어사전까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밭농사는 반드시 고랑과 이랑을 만들어야 한다. 밭의 흙을 갈아엎어 흙덩이를 잘게 부수고 고른 다음에 괭이로 흙을 파 올려 높아진 데와 낮아진 데가 나란하도록 만든다. 흙을 파 올려 높아진 데는 비가 와도 물에 잠기지 않고, 낮아진 데는 비가 오면 물에 잠기게 마련이다. 이렇게 위로 높아진 데를 ‘이랑’이라 하고, 여기에 종자를 넣거나 모종을 옮겨서 남새(채소)나 곡식을 가꾼다. 한편 아래로 낮아진 데를 ‘고랑’이라 하는데, 고랑은 낮아서 이랑의 곡식을 돌보는 사람의 발에 밟히기나 하는 신세다. 그러나 세상 이치는 “이랑이 고랑 되고, 고랑이 이랑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움’과 ‘싹’

[우리말은 서럽다 48]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가을이 되면 뫼와 들에 푸나무(풀과 나무)들이 겨울맞이에 바쁘다. 봄부터 키워 온 씨와 열매를 떨어뜨려 내보내고, 뿌리와 몸통에다 힘을 갈무리하느라 안간힘을 다한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봄여름 내내 쉬지 않고 일한 잎은 몫을 다했다고 기꺼이 시들어 떨어지고, 덕분에 사람들은 푸짐한 먹거리를 얻고 아름다운 단풍 구경에 마냥 즐겁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풀은 땅속에서 뿌리만으로, 나무는 땅 위에서 꾀벗은 몸통으로 추위와 싸우며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봄이 오면 푸나무는 또다시 ‘움’을 틔우고 ‘싹’을 내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게 마련이다. · 움 : 풀이나 나무에 새로 돋아 나오는 싹. · 싹 : 씨, 줄기, 뿌리 따위에서 처음 돋아나는 어린잎이나 줄기. 《표준국어대사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움’과 ‘싹’을 거의 같은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움’과 ‘싹’은 말이 다르듯이 서로 다른 뜻을 지니고 있다. 다만 그들 둘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아주 비슷해서 마음을 꼼꼼히 지니고 바라보지 않으면 가려내기 어려울 뿐이다. 푸나무의 목숨이 처음 나타날 적에는 씨앗에서거나 뿌리에서거나 줄기에서거나 ‘눈’으로 비롯한다. 씨앗이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울’과 ‘담’

[우리말은 서럽다 47]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울도 담도 없는 집에 시집 삼 년을 살고 나니……” 이렇게 비롯하는 진주 난봉가는 지난 시절 우리 아낙네들의 서럽고도 애달픈 삶을 그림처럼 이야기하는 노래다. ‘울’이나 ‘담’이나 모두 삶의 터전을 지켜 주고 막아 주는 노릇을 한다. 이것들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은 그 안에서 마음 놓고 쉬고 놀고 일하며 살아갈 수가 있다. 울도 담도 없다는 것은 그만큼 믿고 기대고 숨을 데가 없이 내동댕이쳐진 신세라는 뜻이다. ‘울’은 집이나 논밭을 지키느라고 둘러막아 놓은 가리개의 하나로, ‘바자’로 만드는 것과 ‘타리’로 만드는 것의 두 가지가 있었다. ‘바자’는 대, 갈대, 수수깡, 싸리 따위를 길이가 가지런하도록 가다듬어 새끼줄로 엮거나 결어서 만든다. 드문드문 박아 둔 ‘울대’라고 부르는 말뚝에다 바자를 붙들어 매어 놓으면 ‘울바자’가 된다. ‘타리’는 나무를 심어 기르거나 다 자란 나무를 베어다 세워서 만든다. 탱자나무, 잔솔나무, 동백나무 같은 나무를 심어서 기르면 저절로 자라서 ‘생울타리’가 되고, 알맞게 자란 나무를 베거나 가지를 쳐서 세우고 울대 사이를 새끼줄로 엮어서 묶으면 그냥 ‘울타리’가 된다. ‘담’은 논밭 가를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우리’와 ‘저희’

[우리말은 서럽다 46]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우리’라는 낱말은 ‘나’를 싸잡아 여러 사람을 뜻하는 대이름씨다. ‘여러 사람’에는 듣는 사람이 싸잡힐 수도 있고 빠질 수도 있다. 이런 대이름씨는 다른 겨레들이 두루 쓰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리고 ‘우리’라는 대이름씨 낱말은 다른 대이름씨와 마찬가지로 매김씨로도 쓰인다. ‘우리 집, 우리 마을, 우리 나라, 우리 회사, 우리 학교, 우리 아기, 우리 어머니……’ 이런 매김씨 또한 남다를 것이 별로 없는 쓰임새다. 그러나 외동도 서슴없이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라 하고, 마침내 ‘우리 아내’, ‘우리 남편’에 이르면 이런 매김씨야말로 참으로 남다르다. 그래서 안다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건 잘못 쓴 것이고 틀린 말이라는 사람까지 나왔다. 하지만 여기 쓰인 매김씨 ‘우리’는 나를 싸잡아 여러 사람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듣는 사람을 싸잡아 쓰는 것도 아니며, 다만 나와 대상을 싸잡아 쓰는 것이다. 나와 대상을 싸잡으면 둘이니까 ‘우리’가 되는 것이지만, 드러내는 뜻은 ‘둘’이 아니라 ‘서로 떨어질 수 없이 하나를 이루는 깊은 사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 땅에서 뿌리 깊게 얽혀 살아온 우리 겨레의 자랑스러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옳은말’과 ‘그른말’

[우리말은 서럽다 45]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옳은말’과 ‘그른말’은 국어사전에 오르지 못했다. 낱말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참말’과 ‘거짓말’이 국어사전에 오른 낱말인 것처럼, ‘옳은말’과 ‘그른말’도 국어사전에 올라야 마땅한 낱말이다. 우리 겨레가 이들 두 낱말을 두루 쓰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옳은말’과 ‘그른말’은 서로 맞서, ‘옳은말’은 ‘그른말’이 아니고 ‘그른말’은 ‘옳은말’이 아니다. ‘옳은말’과 ‘그른말’이 가려지는 잣대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있어야 하는 것(이치, 당위)’이다. 있어야 하는 것과 맞으면 ‘옳은말’이고, 있어야 하는 것과 어긋나면 ‘그른말’이다. ‘있어야 하는 것’이란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돌아가는 세상살이에 길을 밝혀 주는 잣대다. 사람들이 동아리를 이루어 살아가는 곳에서는 언제나 어디서나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내려고 말잔치가 벌어지고 삿대질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자리에는 어김없이 ‘옳은말’과 ‘그른말’이 사람들의 입에서 뒤섞여 쏟아지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른말’은 하나 둘 밀려나 꼬리를 감추고 마침내 가장 ‘옳은말’이 홀로 남아 말잔치를 끝낸다. 그리고 끝까지 남았던 ‘옳은말’은 드디어 삶의 터전으로 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