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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국궁의 살꽂이솔[과녁] 모습 2

국궁 살꽂이[과녁-貫革-的] 솔의 근원에 대한 검토 2

[한국문화신문 = 진용옥 명예교수] 

세종실록 131 오례(五禮) 무과전시의(武科殿試儀)의 살꽂이 솔

   
 

그림 주례에 기준한 정곡 관혁의 구조 è 세종실록에는 돼지를 그려 넣는다 했다 [웅후]

武科殿試儀[원문]

前二日, 兵曹宣攝內外, 各供其職前一日, 忠扈衛設帳殿於射壇南向; 幄次於帳殿之後, 掖庭署設御座於帳殿內南向; 訓鍊觀張步射之侯; 【遠侯距壇二百四十步, 以靑色布爲質, 崇廣丈八尺三分其廣而鵠居一, 鵠方六尺, 白漆皮方制之, 棲於侯中, 畫以豕首侯左右相距五十步, 竪旗爲標侯後五十步, 左右相距七十步, 竪旗爲標取遠至者中者及者中侯距壇一百八十步, 亦以靑色布爲質, 崇廣丈四尺, 鵠方四尺六寸有奇近侯去壇八十步, 以白漆皮爲質, 崇廣四尺六寸, 皆畫以豕首, 取中者

세종실록 135권 오례 / 군례 서례 / 사기 / 웅후•미후•시후•과녁 조

같은 실록이지만 약간 다른 서술의 살꽂이 솔이 나온다. 원후와 웅후와 미후를 3종으로 나누고 그림과 함께 해설이 있다. 왕의 살꽂이 솔은 붉은 빛에 곰의 머리를 그리고,. 종친과 신하는 청색포에 순록의 머리를 그리고 흰색가죽에 돼지머리 살꽂이 솔[豕侯]을 그려 붙인다 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서서 쏘는 보사에 쓰는 살 꽂이 솔이며 기사의 살꽂이 솔의 구도는 좀 다르다

○ 기사 표적[騎射標的]

흰 가죽을 사용하여 둥글게 이를 만든다. 직경(直徑)이 3척()이다. 무과(武科)와 교습(敎習)의 근사(近射)에 사용한다. ○ -用白皮圓製之, 徑三尺, 用於武科及敎習近射。【태백산사고본】 오례 / 군례 서례 / 사기 / 웅후•미후•시후•과녁/세종실록 【태백산사고본】 45

여기에서 보면 과녁과 표적의 차이다. 과녁은 서서 쏘는데 사용하고 표적은 말을 타고 쏘는 살꽂이 솔이라고 구분하여 표기하고 있다 그 표적의 설치 방법을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기사(騎射)표적()의 설치

,【좌우(左右)로 각각 5개씩인데, 홍색(紅色)과 백색(白色)이 서로 사이 하여 있다. 적()은 직경(直徑)이 1척() 2촌()이며, 좌우(左右)로 서로 떨어지기가 5보()이다. 매 적()마다 서로 떨어지기가 각각 35보()이다. 왼쪽으로 활을 쥔 경우는 말을 달려서 처음에 왼쪽의 제1 홍색적(紅色的)을 쏘고, 다음에 말을 횡()으로 달려서 오른쪽의 제2 홍색적을 쏘고, 다음에 말을 횡으로 달려서 왼쪽의 제3 홍색 적()을 쏘고, 다음에 말을 횡으로 달려서 오른쪽의 제4 홍색적을 쏘고, 다음에 말을 횡으로 달려서 왼쪽의 제5 홍색적을 쏘며, 오른쪽으로 활을 쥔 경우는 말을 달려서 처음에 오른쪽의 제1 백색적을 쏘고, 다음에 말을 횡()으로 달려서 왼쪽의 제2 백색적을 쏘고, 다음에 말을 횡으로 달려서 오른쪽의 제3 백색적을 쏘고, 다음에 말을 횡으로 달려서 왼쪽의 제4 백색적을 쏘고, 다음에 말을 횡으로 달려서 오른쪽의 제5 백색적을 쏜다. 그 말을 능히 제어하지 못하여서 왼쪽으로 활을 쥐고서도 오른쪽으로 적을 쏘고, 오른쪽으로 활을 쥐고서도 왼쪽으로 적을 쏘아서 이를 맞힌 것도 또한 취()한다. 활을 가득 당기지 못한 것과 말을 빨리 달리지 못한 것과 채찍을 버린 것은 비록 맞혔더라도 취()하지 않는다.

設騎射之的; 【左右各五, 紅白相間, 的徑尺二寸, 左右相距五步, 每的相距各三十五步左執弓者馳馬, 初射左第一紅的, 次橫馳射右第二紅的, 次橫馳射左第三紅的, 次橫馳射右第四紅的, 次橫馳射左第五紅的右執弓者馳馬, 初射右第一白的, 次橫馳射左第二白的, 次橫馳射右第三白的, 次橫馳射左弟第四白的, 次橫馳射右第五白的其不能制馬, 左執弓而右射的, 右執弓而左射的中者, 亦取之弓不滿者馬不疾者, 雖中不取。】

그러나 이 기록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고 1484년(성종 15) 12월에 완성된. 경국대전에 살 꽂이 솔이 원형으로 그려져 있으며 규격은 직경(直徑)이 1척()으로 규정되어 있다. 실록에는 직경 3척으로 되어 있어 차이가 있다. 하지만 홍적단심을 3개 원형으로 구성하였으며 3척으로 표현한 것은 3증 시후[豕侯]는 서서 쏘는[步射] 과목에 쓰이는 살꽂이 솔 이지만(세종실록 권131) 후대 이르러 모두 4각 관중으로 변한 듯 하다. 이를 정리하여 그면 아래와 같다

 

   
▲ 기사용 살받이 솔 변천 [출처 -세종실록,경국대전,'北塞宣恩圖 1664 부분도]

추인은 원래 기창 연습용 짚단 허수아비였는데 여기에 4각 관중을 붙여 사용했으며 - 말 타고 달리면서 쏘는 기사[騎射]용 과녁이었다. 1열은 홍 , 백 ,홍 ,백, 홍, 2열은 백,홍,백,홍,백으로 홍색과 백색 과녁이 번갈아 가며 배치했다. 천막 안에는 감독관이 입회해서 명중 여부를 확인했다. 그림에서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북과 징을 가지고 있는데 깃발과 마찬가지로 표적에 적중하면 북을 두드리고, 표적에 빗나가면 징을 쳤다. -3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