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예산의 유한팔(兪漢八)은 땔나무를 해서 시장에 내다 팔아 어미를 봉양하였는데 어미가 병이 들어 냉이 나물을 먹고 싶어 하자 밭으로 나가 소리 높여 우니, 냉이싹이 절로 나와서 캐다 드렸다. 어미가 또 등창을 앓았는데 입으로 고름을 빨아냈고, 점차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먹여 며칠 동안 더 연명하게 하였다.”
이는 『일성록』 정조18년 (1794)년 10월 30일치 “효자 기록” 가운데 ‘냉이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이다. 요즘과 달리 한겨울에 나물 구경이 어려웠을 시절에 늙은 어머니는 봄철에 먹던 향긋한 냉이를 잊지 못한 모양이다.
냉이는 예전부터 우리 겨레가 즐겨먹던 봄나물 가운데 하나로 파릇한 잎새를 무쳐 먹거나 된장국을 끓이면 봄의 입맛을 되살리는데 그만이다. 냉이 가운데 황새냉이는 그 뿌리를 주로 먹는데 어렸을 때 들판에 나가 한소쿠리 캐오면 어머니가 살짝 데쳐 놓은 것을 무치기전에 집어 먹으면 달짝지근했던 기억이 난다.
다닥냉이, 논냉이, 구슬갓냉이, 좁쌀냉이, 애기냉이, 는쟁이냉이, 미나리냉이, 물냉이, 말냉이, 고추냉이, 장대냉이, 개갓냉이, 왜갓냉이, 싸리냉이, 서양말냉이, 황새냉이, 큰황새냉이, 꽃황새냉이 따위 처럼 오랜 세월 우리 겨레와 함께 해온 나물답게 냉이 종류도 많다.
▲ 우리 겨레와 함께 한 국민나물 냉이 (사진 이명호 작가 제공)
여러 가지 냉이 가운데 이름이 그다지 곱지 않은 ‘좀개갓냉이’라는 것이 있는데 언뜻 보면 냉이 같지 않지만 이파리를 보면 냉이를 닮았다. 그런데 왜 냉이 앞에 ‘좀개’란 이름이 붙은 걸까? 그것은 일본말 소견개자(小犬芥子)를 번역했기 때문이다.
▲ 무리지어 꽃이 핀 황새냉이 (사진, 이명호 작가 제공)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와 있는 ‘좀개갓냉이’ 풀이를 보자. “자화과의 한해살이풀. 줄기는 높이가 10~40cm 정도이며 근생엽은 뭉쳐나고 우상복엽이고 경엽은 어긋난다. 4~6월에 노란 꽃이 피고 열매는 장각과(長角果)이다. 논밭 근처에서 자라는데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국가의 표준이 되는 사전에서 ‘냉이’의 친근감과 생명력을 무시한 채 자화과, 근생엽, 우상복엽, 경엽, 장각과 같은 낱말로 ‘좀개갓냉이’를 풀이하고 있는 것이 어째 씁쓸하다. 거기다 어렵기까지 하다. 어른이 읽어도 이해가 안 가는데 어린학생들이 이 풀이를 읽으면 이해가 갈까? 일본사전을 그대로 베끼다 보니 사전이 이 모양이다. 생물학적인 설명은 잘되었는지 모르지만 정서상으로는 빵점이라는 생각이다.
▲ 개갓냉이 (사진 이명호 작가 제공)
좀개갓냉이처럼 우리의 풀꽃이름에는 ‘좀’ 자나 ‘개’자가 붙은 이름이 많다. 좀개갓냉이는 이 두 가지가 다 붙어 좀 심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좀’자가 붙은 것들을 보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좀’ 자가 붙은 풀꽃이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1937년에 나온 『조선식물향명집,朝鮮植物鄕名集』에 '좀‘ 자가 붙은 풀이름은 다음과 같은 것이 보인다. 좀갈매나무, 좀감탕나무, 좀개구리밥, 좀고사리, 좀고채목, 좀고추나물, 좀골담초, 좀굴거리나무, 좀꿩의다리, 좀나래회나무, 좀돌배나무, 좀머귀나무, 좀물개암나무, 좀불개암나무, 좀벗나무, 좀분버들 ,좀분지나무, 좀사위질빵, 좀잇갈나무, 좀자작나무, 좀작살나무, 좀조팝나무, 좀참꽃, 좀참빗살나무, 좀풀싸리로 모두 24개다.
▲ 말냉이 (사진 이명호 작가 제공)
그러나 좀 자가 붙은 것이 모두 일본어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다. 다만 좀참빗살나무 (히메마유미、姫マユミ)처럼 ‘히메(姫)’ 가 붙거나 좀골담초 (고바노무레스즈메, 小葉ノムレスズメ)나 좀개갓냉이(고이누가라시, 小犬芥子)처럼 ‘고(小)’자가 붙은 것, 좀고사리(가라쿠사시다, カラクサシダ) 처럼 ‘가라(空)’ 자가 붙은 것들이 일본어에서 유래한 것들이다.
우리말에도 작은 것을 가리키는 말에 ‘좀’자가 쓰이고 있으나 ‘작은’ 이라는 말도 있으니 ‘좀개갓냉이(小犬芥子)’처럼 무비판적으로 일본말을 옮겨 적어 고착화시키기 보다는 슬슬 풀꽃이름들을 우리말로 바꾸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