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4. 동의보감, 중국에서도 다투어 펴냈다 보물 제1085호 동의보감은 1597년 허준이 펴낸 우리나라 한의학의 귀중한 자료로 의학사에 필수적인 문헌 중의 하나입니다. 처음 펴낸 이후 그 가치가 알려지자 중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다투어 펴냈으며 17세기 이후 동양에서 널리 활용된 의서이지요. 특히 중국은 건륭(乾隆)·가경(嘉慶)·광서판(光緖版), 민국상해석인본(民國上海石印本), 대만영인본이 있고, 일본은 1724년 경도서림(京都書林) 초간본과 1799년 대판서림(大阪書林) 훈점(訓點) 재간본 등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동의보감이 중국 의서를 베낀 표절서라고 헐뜯지만 정말 표절서라면 대국을 자처하는 중국이 동의보감을 가져다 펴냈을 리가 없습니다. 동의보감은 우리나라의 의학실력을 동양 여러 나라에 뽐낸 동양의학의 모범서로 중국과 일본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또 의학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인정받고 있지요. 참고 : 문화재사랑 2009년 2월호 “동양의학이 살아있는 보고 동의보감” - 서병패
1503. 17세기엔 돼지고기보다 개고기를 많이 먹어 17세기 중엽에 정부인 안동 장씨가 쓴 ≪음식디미방≫을 보면 개고기 조리법이 다양하게 나옵니다. “개장”, “개장꼬치누루미”, “개장국누루미”, “개장찜”, “누렁개 삶는 법”, “개장 고는 법” 등의 개고기 요리가 자세히 쓰여 있습니다. “개장”은 개의 창자에 소를 넣어 만든 일종의 순대입니다. 또 개고기누루미는 개고기를 푹 삶아 살만 발라낸 다음 알맞은 크기로 썰어 양념즙을 끼얹어 먹는 음식입니다. 책으로 미루어보면 개장국, 개고기찜, 개고기누르미가 개고기의 대표적 요리였습니다. 그에 견주어 돼지고기 조리법은 야저육(野猪肉, 맷돼지고기) 삶는 법이 2줄, 가저육(家猪肉, 집돼지고기)이 3줄이 전부로 간단하게 기록되었습니다. ≪음식디미방 주해≫를 쓴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백두현 교수는 17세기 당시에는 돼지고기보다 개고기를 더 많이 먹었을 것이라 말합니다. 참고 : ≪음식디미방 주해≫, 백두진, 글누림, 2006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김영조 소장이상명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정규 강의를 시작합니다.강의는 "재미있게 알아보는 한국 문화"와"생활 속에 꼭 필요한 실용글쓰기"입니다.자세한 내용 참조 바랍니다.▶ 수강생 모집요강과 강의 내용 보러가기
1502. 창경궁 이름을 창경원으로 바꾼 이는 순종 순종부록 2권, 4년(1911년) 4월 26일 자 기록에 보면 “박물관, 동물원, 식물원을 지금부터 창경원으로 통칭한다. 그것은 창경궁 내에 있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원(苑)’이란 울타리를 쳐 짐승과 나무를 키우는 곳이란 뜻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바꾼 것이 일제의 조선 말살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름을 바꾼 것은 일제가 아니라 순종이었다고 합니다. 순종은 ‘궁’이라고 하면 백성이 드나들기 불편할 것이므로 ‘원’으로 바꾸어 좀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는 것입니다. 또 순종이 굳이 이름을 바꾸어 창경궁의 문턱을 낮춘 까닭은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더 쉽게 만나려는 뜻이었다고도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일제의 만행을 잊지 말아야 하지만 이렇게 잘못 알려진 것은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1501. “더치페이” 대신 “도리기”를 쓰면 어떨까요? 여러 사람이 추렴하여 같은 음식을 나눠 먹는 일이나 비용을 각자 부담하는 일을 보통 “더치페이”라는 외래어를 씁니다. 하지만, 우리 토박이말에도 이와 같은 뜻이 있는 “도리기”라는 말도 있습니다. “도리기”는 추렴 곧 갹출(醵出)을 뜻합니다. 그와는 달리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한턱을 내는 일은 “돌림턱”입니다. 그 돌림턱이 한 바퀴 돌아간 것은 “한돌림”이지요. 한편, 일정한 순서 없이 여러 사람이 음식을 돌려가며 내어 함께 먹는 일은 “도르리”라고 합니다. 이는 도리기와 돌림턱이 어우러진 뜻일 것입니다. “마을 청년들은 날마다 저녁이 되면 충주집에 가서 도리기로 막걸리를 마시거나 투전판을 벌이기 일쑤였다.”라고 씁니다. 우리말에 없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이 외래어를 쓸 수도 있겠지만 토박이말이 있는데도 외래어를 쓰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닐까요? “더치페이” 대신 “도리기”를 쓰면 어떨까요?
1500. 황소바람 막으려 온 밤을 통째로 우는 문풍지 서양식 문은 한치의 틈도 없이 꼭 들어맞아 열쇠구멍으로 들여다보고, 한옥의 문은 꼭 잘 닫아도 틈이 조금 벌어져 문틈으로 들여다 본다고 합니다. 문은 경계입니다. 만약에 틈이 없다면 문은 닫히는 순간 벽과 하나가 되고 바깥세상과 차단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 겨레는 문과 벽 사이에 얼마간의 틈을 두었고 그 덕에 세상에서 유일하게 문풍지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신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황소바람을 막으려고 문짝 주변을 돌아가며 문풍지(門風紙)를 붙였던 것입니다. 우리 한옥의 문은 꽉 조이는 무미건조함과 단절을 거부하고 문에 발랐던 창호지와 문풍지를 통해서 융통성 그리고 자연과의 소통을 원했던 것입니다. 박두규 시인은 라는 시에서 “폭풍한설에 풍경소리마저 얼어붙은 겨울 산사에서 온 밤을 통째로 우는 건 문풍지뿐이다.”라고 노래합니다.
1499. 전봉준이 마시고 기력을 찾은 전통술 죽력고 전북 정읍에는 시도무형문화재 제6-3호 향토술담그기로 지정된 전통술 죽력고가 전해집니다. 죽력고(竹瀝膏)는 청죽 곧 갓 베어낸 푸른 대를 잘게 쪼개 불에 넣어 구워 스며 나오는 진액 곧 죽력을 소주에 넣고, 꿀과 생강즙을 넣어 끓는 물에다 중탕하여 빚는 술입니다. 죽력고는 대나무가 많은 전라도 지방에서 빚은 약용주로 한방에서는 어린이가 풍으로 갑자기 말을 못할 때 구급약으로 사용되었는데, 생지황·계심·석장포 따위의 한약재를 넣어 빚기도 하였지요. 죽력고는 조선시대 유중림의 ≪증보산림경제≫와 서유구의 ≪임원십육지≫ 등에 나옵니다. 또 최남선의 ≪조선상식 문답≫에서는 평양 감홍로(甘紅露), 전주 이강고(梨薑膏)와 함께 죽력고(竹瀝膏)를 우리나라 3대 명주로 꼽았습니다. 매천 황현이 쓴 ≪오하기문(梧下記聞)≫에는 ‘전봉준이 전북 순창 쌍치에서 일본군에 잡혀 흠씬 두들겨 맞고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서울로 압송될 때 죽력고를 먹고 기운을 차렸다.’라는 기록이 있지요.
1498. 감항아리, 귀때항아리, 똥항아리를 아시나요? 예전엔 어느 집이든 장독대에는 김치나 된장, 간장을 담던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항아리는 아래위가 좁고 배가 부르며 물건을 담아 저장하는 데 쓰는 질그릇을 말하는데 독이라고도 부릅니다. 입 ·목부분의 특징에 따라 입큰항아리[廣口壺], 목긴항아리[長頸壺], 목짧은항아리[短頸壺]로 나뉩니다. 또 항아리 종류에는 감항아리, 귀때항아리, 소마항아리, 똥항아리 따위가 있습니다. 감항아리는 꼭지를 떼어 낸 감 모양으로 아가리가 좁고 팡파짐하게 생긴 항아리를 말합니다. 귀때항아리는 주전자의 부리처럼 액체를 따를 수 있도록 부리를 내밀어 만든 것이며, 소마항아리는 오줌을 누거나 모아 두는 독입니다. 그리고 똥항아리는 똥을 받아 내는 항아리인데 지위만 높고 아무 능력이 없는 사람 또는 먹기만 하고 하는 일이 없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죠.
1497. 오장육부를 조화시키는 슬기로운 음식 오곡밥 오늘은 정월대보름인데 이날의 대표적 명절음식은 오곡밥입니다. 그런데 한방에서는 이 오곡밥에 오색이 모두 들어가 있어 오장육부를 조화시키고 각 체질에 맞는 음식이 골고루 섞여 있는 조화로운 음식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찹쌀은 소화기를 돕고 구토, 설사를 멎게 하며, 차조는 비위(脾胃)의 열을 제거하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하는 동시에 설사를 멎게 하며, 차수수는 몸의 습(濕)을 없애 주고 열을 내려 준다고 하지요. 또 콩은 오장을 보하고, 십이경락의 기혈 순환을 도우며, 팥은 소변을 잘 보게 하여 부기, 갈증, 설사를 멎게 합니다. 하지만 전통음식이라 해서 무조건 다 좋은 건 아닙니다. 차수수는 소화가 잘 안 되는 점을 알아야 하고, 부럼 깨물기는 이가 상할 수도 있으니 치아가 약한 사람은 조심해야 하며, 평소 똥이 무르거나 지성 피부인 경우는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1496. 오는 월요일 보름달이 휘영청 뜨는 정월대보름입니다 “어머니, 세상의 아픈 사람들 다 모여 불러보는 이름입니다. 세상의 섧븐 사람들 다 모여 힘껏 달불 돌리는 어머니, 대보름입니다.” 김재진 시인의 란 시 일부입니다. 돌아오는 월요일은 정월대보름입니다. 대보름에는 하늘에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지요. 뒷동산에 올라 너그럽고 따뜻한 달빛에 온몸을 맡긴 채 추억을 떠올립니다. 정월대보름 달은 가장 작은 때에 비해 무려 14%나 커 보일 만큼 한해 중 가장 크게 보인다고 합니다. 그것은 달이 지구에 가장 가깝게 다가서기 때문이라지요. 조선 후기에 간행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올라 달맞이하는 것을 ‘망월(望月)’이라 하며, 먼저 달을 보는 사람에게 행운이 온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또 ≪동국세시기≫에 대보름에도 섣달 그믐날의 수세하는 풍속과 같이 온 집안에 등불을 켜놓고 밤을 지새운다는 기록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