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5. 바닷가 여인네들의 한 서린 노래 “나나니타령” “으스름 달밤에 머릿수건 쓴 년은 / 도둑년이 아니면 화냥년이로구나 / 밥 먹기 싫은 건 두었다가 먹지만 / 임 보기 싫은 건 하루 일시도 보기 싫어 / 앞산 밭에다 깨를 한 줌 뿌렸더니/깬죽깬죽 시뉘 잡년” 위는 인천 바닷가 여인네들 사이에 전해지는 노래 “나나니타령”의 해학적인 사설입니다. “나나니타령”은 그들의 고단한 삶을 물장구 장단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이지요. 인천 가까운 바다(근해) 섬들에는 많은 노래가 전해지는데 그것은 “나나니타령이” 포함된 여인들의 갯가노래와 남자들의 뱃노래지요. 이중 갯가노래는 1988년 인천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예능보유자는 차영녀(車永女) 선생, 전수조교는 김정숙 선생입니다. 또 뱃노래는 “주대소리”가 인기 있는데 역시 인천시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으며, 보유자는 없고 차영녀 선생 남편이신 김필운 선생이 전수조교입니다.
다음에 개설한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의 블로그가2008 다음우수블로그에 뽑혀 블로그 대문에 우수블로그 표시가 달렸습니다.그동안 회원 여러분들이 보여주신 격려와 채찍 덕분으로 생각합니다.엎드려 고맙다는 절을 드립니다.앞으로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다음 방문하기
1474. 동아시아 최고 금속공예품 백제금동대향로를 보세요 1993년 12월 12일 새로 발굴된 450여 점의 유물들 중 부여박물관 사람들 넋을 잃게 한 것은 1,500여 년 땅속에 묻혀있다가 햇빛을 본 백제금동대향로였습니다. 이 대향로는 중국 박산향로와 기본 형태는 비슷하지만 백제인의 생각·기술·창의력이 합쳐진 다른 나라에는 없는 전혀 새로운 작품이지요. 대향로는 맨 위의 봉황과 용 받침대까지 모두 네 부분으로 구성됐으며, 신선계, 인간계, 저승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뚜껑 꼭대기에는 봉황이 목과 부리로 여의주를 품고 날개를 편 채 힘있게 서 있으며, 몸체는 활짝 피어난 연꽃을 닮았고, 받침대는 그 연꽃 밑부분을 입으로 문 채 하늘로 치솟듯 떠받는 한 마리의 용이 되었습니다. 봉황 앞 가슴과 악사상 앞뒤에는 5개의 구멍으로 향 연기가 자연스럽게 피어오르는 정교함과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갖춰 동아시아 고대 금속 공예의 최고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관련 기사 보러 가기
1473. 황새걸음∙달팽이걸음∙가재걸음, 토박이말 걸음걸이들 사람이 걷는 걸음걸이는 참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장승욱 씨가 쓴 ≪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하늘연못, 2004)에 보면 다음의 글이 보입니다. “바빠서 진둥한둥 걷는 ’진둥걸음‘, 발을 통통 구르며 걷는 ’통통걸음‘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걷는 ’황새걸음‘, 아기작 거리며 걷는 ’씨암탁걸음‘, 느릿느릿 꾸준히 걷는 ’황소걸음‘, 몹시 느리게 걷는 ’장승걸음‘, 나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달팽이걸음‘, 옆으로 걷는 ’게걸음‘이 있는가 하면, 뒤로 걷는 ’가재걸음‘도 있는 것이다.” “빨리빨리”가 일반적인 삶이 되어버리고 우리말에 대한 사랑이 적어진 요즘 사람들은 이런 걸음걸이를 잊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통통걸음이나 황새걸음 대신 황소걸음이나 장승걸음, 달팽이걸음을 걸어야 하고. 고통받는 사람의 곁을 지날 때는 아예 멈춰서야 하는 것 아닐까요? 걸음걸이 종류에서 토박이말의 아름다움을 봅니다.
1472. 오랜 세월 민중과 함께 한 굿 굿이란 표준국어대사전에 “무속의 종교 제의. 무당이 음식을 차려 놓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며 귀신에게 인간의 길흉화복을 조절하여 달라고 비는 의식이다.”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는 굿을 미신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굿은 오랜 세월 아픔을 달래고, 그저 액이 없이 잘 살기를 빌었던 소박한 민중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 우리의 전통문화일 것입니다. 굿의 목적은 병의 퇴치나 복을 빌기, 죽은 이의 혼을 불러내는 초혼(招魂), 집안에 탈이 없도록 터주를 위로하는 안택(安宅), 비가 오게 해달라는 기우(祈雨), 잡귀를 쫓는 축귀(逐鬼) 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굿은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을 비롯하여 진도씻김굿, 동해안별신굿, 서해안배연신굿및대동굿, 남해안별신굿, 황해도평산소놀음굿, 경기도도당굿, 서울새남굿 등입니다.
1471. 한 달에 한 번 정도 동침하는 임금과 왕비 우리는 보통 임금이 호화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줄 압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의 임금은 어디까지 허구일 뿐 실제 어떤 면에서는 불행한 삶이었습니다. 특히 임금과 왕비는 부부이지만 동침은 맘대로 할 수 없었고 한 달에 겨우 한 번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고 하지요. 그들의 동침은 오직 왕자를 낳기 위한 수단이어서 제조상궁이나 천문을 관장하는 관청인 관상감(觀象監)이 길일을 받아주면 그때 합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합궁 날짜를 정할 때 뱀날∙호랑이날과 초하루∙보름∙그믐까지 피해서 정하지만 그렇게 했어도 당일 비가 오고 천둥이 치거나 안개가 끼었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일식 또는 월식이 있는 날이거나, 임금의 심기가 불편하거나 나라에 중대사가 있거나 병을 앓고 난 직후엔 합궁을 피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동침은 한 달에 겨우 한 번 정도에 불과했지요. 참고 : “왕실양명술 상”, 이원섭, 초롱출판사, 1993
1470. 500여 년 전 조선엔 세계 최초의 온실이 있었다 성종실록 13권, 2년(1471년) 11월 21일 자에 “장원서(掌苑署)에서 영산홍 한 분(盆)을 올리니, 임금이 ‘꽃과 열매는 각각 그 시기가 있는데, 제때에 핀 것이 아닌 꽃은 인위적인 것으로 내가 좋아하지 않으니 앞으로는 바치지 마라.’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기록은 겨울에도 인위적으로 꽃을 기르는 온실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조선시대 초기 의관(醫官)이었던 전순의의 요리책이자 종합농업서적인 ≪산가요록(山家要錄)≫에는 동절양채(冬節養菜, 겨울에 채소 키우기) 항목에 온실 건축에 관한 기록이 나옵니다. 기록을 보면 남쪽을 제외한 삼면을 진흙과 볏짚으로 만든 흙벽돌로 벽을 쌓고, 바닥은 구들로 하고 그 위에 30cm 정도의 배양토를 깔았으며 45°로 경사진 남쪽 면은 창살에 기름 먹인 한지(韓紙)를 붙여 막았습니다. 세계 최초의 난방 온실이 유럽 최초의 난방온실인 독일 하이델베르크보다 무려 170년이나 앞선 500여 년 전 조선 땅에 있었지요.
1469. 내일은 동지(冬至), 팥죽 먹고 액운을 막아내자! 오늘은 원래 얼레빗을 쉬는 날인데내일이 24절기 동지여서 동지 얘기를 특별히 보냅니다.동지는 24절기 중 명절로 지내는 날이지요.팥죽을 쑤어 고수레로 짐승에게도 나누고, 이웃과 함께하며, 다가오는 2009 기축년(己丑年) 소띠해에 복 받으시길 비손합니다. ▶ 동지 얘기 읽으러 가기
1468. 조선, 일본과 중국 사신에게 후추 씨를 구하려 했다 성종실록 140권, 13년(1482년) 4월 17일 자에 보면 일본 사신에게 후추[胡椒] 씨를 구해 보내라고 요구했지만 “후추는 남만(南蠻, 자바)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유구국(琉球國, 오키나와)에서 항상 남만에 청하고 본국에서 또 유구국에 청하는 것으로 종자를 얻기가 어려울 것 같다.”라고 변명했습니다. 이를 예조가 전하자 성종은 “그들이 비록 생산되지 않는다고 말하나, 일본이 유구국에 청하여 보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일축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또 성종실록 158권, 14년에는 중국 사신에게 후추씨를 얻도록 하고, 190권, 17년에는 대마주 태수 종정국이 후추의 종자를 구하고 있다는 문서를 보내왔으며, 229권, 20년에는 종친 정2품과 의정부 등에 후추를 하사했다는 내용이 보입니다. 당시 후추는 조선에서 나지 않아 귀했고, 조정에서는 이를 구하려 애썼는가 봅니다.
1467. 도화서 화원들은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최근 조선시대 도화서 화원(畵員)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와 영화가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데 화원은 화공(畵工) 또는 화사(畵師)라고도 불렀습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도화서는 제조 1인, 별제 2인 외에 잡직으로 화원 20명이 있었고, 정조임금 때에 펴낸 ≪대전통편≫에는 화원의 수가 30명으로 늘었습니다. 화원들이 그린 그림에는 임금이나 정승들의 초상, 외교사절을 따라가 그린 외국의 풍물 그리고 지도도 있었습니다. 또 임금의 결혼식, 장례식, 궁중 잔치 등 나라의 주요행사 장면들을 그린 속 그림도 화원의 중요한 몫입니다. 화원들이 그린 지도는 마치 산수화를 보는듯한 착각이 들기도 하며, 의 하나인 임금의 결혼식을 그린 ≪가례도감의궤≫ 중 반차도에는 결혼식에 동원된 사람과 말의 모습, 옷과 깃발 등이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마치 현장을 보는듯한 느낌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