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5. 왜놈이 강탈해간 경천사십층석탑, 찾아오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들어가면 넓은 공간 복도 끝에 우뚝 솟은 거대한 탑이 우리의 눈을 완전히 사로잡습니다. 이 탑은 높이 13.5m로 고려말에 쌓은 석탑인데 국보 제8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또 탑은 전체적으로 독특한 형태에 균형과 안정미를 갖추었고, 세부 조각들도 매우 섬세하여 나무랄 데 없는 명작이란 평가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 탑이 대한제국 때인 1907년 3월 당시 일본 궁내성 궁내대신인 다나카 마스아키가 결사적으로 막는 조선 백성과 군수를 고종황제가 허락했다는 거짓말과 총칼로 제압하고 이 경천사십층석탑을 강탈해갔습니다. 이에 영국 언론인 어네스트 베셀과 미국 선교사 호머 헐머트가 이를 언론을 통해 고발하고 우리 백성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11년 만에 심하게 훼손된 채로 다시 현해탄을 건너 돌아왔습니다. 이 탑은 두 번의 복원 끝에 지금 우리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고 : “수난의 문화재, 이를 지켜낸 인물 이야기”, 문화재청, 2008
1454. 강탈해간 문화재를 반환하지 않는 프랑스와 일본 최근 서울에서 열렸던 유네스코 산하 “문화재 반환촉진 정부간위원회(ICPRCP)” 30주년 기념 특별회의에서 한국 정부 대표단은 프랑스 소재 외규장각 도서와 일본 궁내청 보관 조선왕실 의궤 반환을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프랑스는 병인양요 때 많은 국보급 문화재를 약탈해갔는데 1993년 한국에 왔던 프랑스 대통령이 고속철도 테제베를 팔 욕심으로 반환을 약속했지만 아직도 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이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에 강탈해간 문화재는 엄청난 숫자입니다. 현재 일본과 프랑스를 비롯하여 국외로 약탈되거나 유출된 우리 문화재가 7만 5천여 점이라고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가 15만여 점인 것에 비추어보면 나라밖으로 빠져나간 문화재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환수된 문화재는 4,878점으로 6.4%에 불과합니다. 참고 : ≪수난의 문화재, 이를 지켜낸 인물이야기≫, 문화재청
1453. 겨울철을 잘 나게 하는 한방차 다가오는 추운 겨울을 잘 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 하나로 우리는 한방차를 추천합니다. 먼저 몸이 오들오들 춥고 콧물이 줄줄 흐르며, 어깨가 결리고 땀이 약간 나는 몸살감기는 생강차가 좋습니다. 생강차는 따뜻한 생강의 성질을 이용한 것입니다. 생강을 진하게 끓여 꿀을 타서 마시면 몸을 데워 주고 땀이 잘 나게 하여 몸살감기를 가볍게 합니다. 또 손발이 찬 수족냉증은 한약재 백출을 노릇노릇하게 볶아 차로 만들어 마시면 구수한 향과 맛도 좋지만 수족냉증을 완화해 준다고 합니다. 냉증의 또 다른 원인은 혈액순환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피가 몸 구석구석 돌지 않으면 손발은 물론 장까지 차갑게 한다고 하지요. 이때 당귀 특히 일당귀를 20분 정도 센 불에서 끓여 마시면 좋다고 합니다. 한방차로 올겨울 건강하게 나면 좋겠습니다. 참고 : 민족의학신문 제687호(겨울특집호), 이상재 티테라피한의원 원장
1452. 잘 익은 김치, 노화예방 효과 김치는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농촌진흥청은 잘 익은 김치를 먹으면 노화예방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정상세포에 노화를 유도하면 54%가 노화되는 반면 잘 익은 배추김치를 첨가하면 최저 25%의 노화만 유발돼 정상세포에 가깝게 유지됐다고 합니다. 특히 발효 초기나 시어졌을 때보다는 적당하게 익은 것이 더 효과가 좋다는 것도 밝혀냈습니다. 김치는 이밖에 김치를 담근 직후 비타민 B1∙B2∙C의 함량이 일시적으로 줄어들지만 이후 익어가면서 점점 증가해 3주가 지나면 2배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김치는 스트레스를 줄여 주고 피부노화 예방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고 연구진들은 확인합니다. 어른들이 늙지 않으려면 김치를 더 잘 먹어야 하는 것은 물론 부모들이 아이들을 진정 사랑한다면 아이들이 김치를 잘 먹을 수 있도록 겠습니다.
1451. 중요무형문화재 제100호 옥장 이야기 옥은 우리나라에서 금·은과 함께 쓰인 대표적인 보석으로 선사시대의 여러 문화유적에서 출토되는 곱은옥·관옥 등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신라시대의 여러 고분에서 금제품과 함께 발견되었지요. 또 조선시대에는 상의원(尙衣院)에 옥 가공을 전담하는 10명의 옥장이 있었습니다. 옥장은 대개 장식품을 비롯하여 화장품을 넣는 작은 용기나 연적·술잔 등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옥을 가공할 때는 원석을 캔 뒤, 자외선 등 때문에 금이 가는 것을 막으려고 황토를 넣은 가마니에 싸서 일정 온도로 열처리를 하고, 명주실로 된 실톱으로 자른 다음, 발틀이나 물레를 사용해 활비빔이란 과정으로 가공합니다. 그런 다음 양은이나 철에 슨 녹으로 광을 내어 마무리하지요.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100호인 옥장 기능보유자는 중국의 기술과 작품성을 능가한다는 평으로 '신장(神匠)'이라고 일컬어지는 장주원 선생입니다.
1450. 장승의 또 다른 이름 벅수·수살목·돌하르방·돌미륵 “퉁방울 같은 눈, 주먹만 한 코, 귀밑까지 찢어진 입, 들쑥날쑥 제멋대로인 이, 웃는 듯 화난 듯 알 수 없는 표정…” 이 글은 장승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쌍을 이루며, 남자 장승은 머리에 관모를 쓰고 앞에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상원대장군(上元大將軍)'이라 새겨 있으며, 여자 장승은 관이 없고 앞에 '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하원대장군(下元大將軍)' 등의 글이 새겨 있습니다. 그리고 장승은 지방에 따라 모양은 물론 이름도 다릅니다. 전라도·경상남도 해안에서는 장승·장성·벅수·벅시·법수·법시·당산할아버지, 충청도에서는 장승·장신·수살막이·수살이·수살목, 경기도에서는 장승, 함경도와 평안도에서는 당승·돌미륵, 제주도에서는 돌하루방·우석목·옹중석·거오기·거액, 함경도와 평안도에서는 당승·돌미륵 등으로 부릅니다.
1449. 노화방지를 위한 음식 우분죽을 아시나요? 1809년(순종 9) 빙허각(憑虛閣) 이씨(李氏)가 부녀자를 위하여 엮은 일종의 여성생활백과인 ≪규합총서(閨閤叢書)≫에 보면 “우분죽(藕粉粥)”이란 음식이 나옵니다. 우분죽은 연근 큰 것을 잘게 끊어 맷돌에 갈아 수건에 받히고 다시 또 갈아 고운 베로 받힌 다음 물 조금 쳐서 가라앉혀 칡뿌리 가루 곧 갈분을 넣고 죽을 쑤는 것입니다. 연근은 숙취해소와 위장에 좋고, 칡뿌리 가루는 설사와 갈증을 멈추게 하지요. 한방에서는 연근이 속을 보하고 정신을 안정시키며 피를 차게 하여 열을 내려주고 어혈을 풀고 진액을 생성하며 갈증을 없앤다고 합니다. ≪규합총서≫와 서유구가 쓴 ≪임원십육지≫에 이 우분죽을 먹으면 나이가 먹어도 늙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분죽은 조선시대 노화방지 음식이었던 셈입니다. 또 찹쌀과 우유로 끓여 만드는 타락죽과 함께 노인 공경을 위한 음식이었죠.
1448. 조선시대 화가 최북이 애꾸가 된 까닭 조선 후기 화가 애꾸눈 최북은 수각산수도(水閣山水圖), 한강조어도(寒江釣漁圖)등의 그림을 그렸는데 자신이 그리기 싫으면 어떤 압력을 받아도 그리지 않았던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어느 날 최북에게 권력이 있는 사람이 와서 산수화 하나를 그리라고 했는데 그는 물은 그리지 않고 산만 빡빡하게 그렸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그려달라고 한 이가 "아니 내가 산수화를 그려 달라고 했는데, 산만 그리고 왜 물은 없습니까?"라고 말하자 그림 바깥은 다 물인데 굳이 왜 물을 또 그려야 합니까?"라고 했다지요. 또 어떤 권력자가 와서 그림을 그려달라고 윽박지르자 자기 문갑 위의 필통에서 송곳을 꺼내 자기 눈을 찌르면서 차라리 나 자신을 자해할지언정 남에게 구속받아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는 애꾸가 되었고 그 뒤부터는 최북 곧 최칠칠이는 돋보기 안경을 사도 한 알만 샀다고 합니다.
1447. 새신랑, 남은 여생처럼 중복된 말을 쓰지 말아야 사람들은 처가, 외가, 역전처럼 써야 할 말을 처갓집, 와갓집, 역전앞처럼 중복된 표현의 말을 씁니다. 이는 잘못된 것으로 특히 토박이말과 한자말을 같이 써서 중복된 말을 많이 쓰는데 고목 나무, 남은 여생, 같은 동포, 넓은 광장, 폭음 소리, 높은 고온, 새신랑 등이 그것입니다. 고목에는 나무 목(木) 자가 이미 들어 있고, 여생에는 남을 여(餘) 자가 들어 있으며, 같은 동포에는 한가지 동(同) 자, 광장에는 넓을 광(廣) 자, 폭음에는 소리 음(音) 자, 고온에는 높을 고(高) 자, 신랑에는 새 신(新) 자가 이미 들어가 있지요. 우리는 이렇게 잘못된 말을 예사로 씁니다. 그러면서 영어는 조금만 잘못 써도 큰일이 난 듯 수치스럽게 여기고 죽자사자 공부합니다. 세계 최고의 글자 한글을 가진 우리가 이렇게 엉터리 말글생활을 해도 될까요? 특히 말보다 기록에 남는 글에는 더욱 조심하여야 하여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합니다. 참고 : “나만 모르는 우리말”, 조경숙∙김슬옹∙김형배, 모멘토
1446. 은장도, 사행원들이 뇌물로도 썼다 ‘은장도(銀粧刀)’는 주머니 속에 넣거나 옷고름에 늘 차고 다니는 칼집이 있는 작은 칼을 말합니다. 은장도를 차는 풍습은 고려가 원나라에 복속한 뒤부터 시작되어 조선시대에는 널리 퍼졌습니다. 보통은 여성들이 호신용으로 차고 다녔습니다만 원래는 남녀 구분없이 평복에 차는 노리개의 하나였지요. 특히 은장도는 중국에 사절단으로 가는 사행원들이 일종의 국경검문소인 책문(柵門)에서 통관 절차를 집행하는 봉성장군(鳳城將軍)과 그 아래 사람들에게 주는 뇌물로 많이 쓰였지요. 또 사행원과 직접 접촉하는 북경 숙소의 제독(提督)이나 예부(禮部)의 관리들이 사적으로 많이 요구하였답니다. 금과 은은 당시 존비귀천을 가리는 기준이 되었기에 누구나 욕심을 냈고 그래서 사행원들은 고마움을 표하는 예물이나 뇌물의 용도로 자주 썼다고 합니다.